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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Dec 30. 2022

2015년 결산

옮겨온 결산

15.06.10 - 상반기 결산


이번 학기는 다 듣고싶었던 수업이었고 수업도 다 기대 이상이어서 정말 만족스럽게 들었다. 시험과 방학과는 별개로 종강이 정말 아쉬울 정도로.


오늘 백승욱 교수님 <사회변동과 미래사회> 수업 종강이었는데 교수님이 한 학기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소회를 말하면서 ‘격동의 시대를 버티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다리를 어디에 딛고 설 것인지 이 변화는 긴지 짧은지 알아야 한다. 세계에 돌파구가 없는 게 아니다. 미리 많은 것을 포기하지 말고 위기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길 바란다. 수동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변하지않는 것 같아도 물결 속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다보면 많은 것이 보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또한 읽을 수 있다. 이 수업이 사회 변동의 시대를 살아가는데 작은 지침이 되길 바란다.’ 라고 하셨다. 교수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수가 터져나왔는데 이 순간에 내가 함께 하고 있다는게 감격이여서 눈물이 핑 돌았다.


백교수님의 담담한 말들은 내가 살아가는데 늘 화두로 던져지고 이후엔 중심으로 자리잡는 거 같다. 이번 학기는 나를 둘러싼 공간과 사회, 관계 속에서 온전히 나를 지키면서 (체력이나 가치관, 역할 등등) 살아가는게 어려웠고 애썼지만 아쉬운 점이 많았다. 되려 이전보다 어렵지않고 대수롭지 않은 순간들도 있었는데 그게 편안하면서도 동시에 위기감이 들기도 했다. 이 아쉬움들과 고민들은 오늘 수업 때 하신 말을 화두와 중심으로 잡고 성찰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 같다.




16.01.02 - 하반기 결산


작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나 싶어서 타임라인을 쭉 내려보니 거의 공유 게시물이다.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해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일이 여러모로 어색해졌다. 그나마 지난 학기를 보내면서 짧은 생각을 정리해둔 글이라도 있길래 이번 학기도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번 학기는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났다. 이번 학기 수업들도 흥미로운 사람을 만난 기분이 컸다. 한 선생님은 <경제사회학> 박찬종 선생님이다. 아침 9시 수업이었는데 첫 오리엔테이션에 10분 늦었다. ‘제가 10분 거리에 살고있는데요.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 늦는다더니, 제가 그랬네요.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라고 했다. 그 이후에 한 시간을 늦은 날에도 ‘이전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해놓고 늦었네요.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다. 수업 도중에 자기가 이 내용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쇼파에 앉아있다 잠들어 늦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사과를 하는 순간에는 늘 변명없이 정직했다. 담백한 사과에 늘 웃게 되었고 알 수 없는 위안을 받았다.


한 번은 중간고사 후 수업을 한 주 휴강하겠다는 그 선생님의 설명에 그 이유를 질문했다. 단순한 호기심과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싶어서였는데 ‘그냥 쉬어가자는’거라고 어떤 꾸밈도 없이 답해주셨다. 이후에 ‘서비스’를 요구하는 의미가 아니었고, 휴강 때 다른 방식으로도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내 메일에 존중이 담긴 답변이 오기도 했다.


여러 면에서 성실함과 멀어보이는 분이었는데 절대 허술한 사람이 아니구나, 싶었던건 수업이 끝나면 컴퓨터와 스크린, 자신은 쓰지도 않은 칠판의 판서까지 깔끔히 정리하고 강의실을 나서는 모습에서였다. 혼자 남아있는 나에게 ‘그럼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하고 머리 숙여 인사하고 나가셨다. 성적이 나오는 날에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 한 학기동안 배울 수 있는 자극을 주어 고맙다’고 학생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과에 훌륭한 선생님이 분에 넘치게 많으셔서 늘 감사하지만 이 분에게는 조금 다른 결의 울림을 받았다.


다른 선생님은 타과 전공 수업에서 만나 분이다. 서명수 선생님의 <프랑스영화미학> 수업이었는데 수업 후반 부에는 조별로 1960년대 언저리의 프랑스 영화를 보고 레포트를 써서 발표해야 했다. 선생님은 다섯 조 모두와 두 번씩의 피드백 면담을 잡았다. (부족한 조는 세 번 만났다.) 


토요일 오전 9시에 두 번 선생님 연구실에 갈 때마다 커피를 갈고 내려 주셨다.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라는 1시간 10분 남짓한 영화에 대해 두세시간씩 이야기했다. 영화에 재현되지 않은 장면에서 미셸과 패트리샤가 어떤 감정을 나눴을지 상상하기도 하고, 뛰어가는 패트리샤의 감정은 어땠을지, 거울의 역할은 실존적인지 허구적인지, 미셸과 패트리샤는 어떤 시간관을 살아가는 사람인지, 하는 주제로 열심히 이야기를 나눴다. 이전에 없던 경험이었고 다른 시공간에 머문듯한 영화같은 순간이었다. 품을 내는게 그 연배에 쉽지 않을 듯 한데 그 선생님의 모습에서 억지스럽거나 기꺼워하는 면이 보이지 않았다.


기말고사 시험 감독 중에는 노래를 흥얼 거리거나 멋진 풍경 사진을 학생들에게 힘내라며 보여주는 모습도 굉장히 당황스러울 정도로 새로웠다. 팀플로 만난 사람들도 다 매력적이고 재밌어서 첫 타과 전공 수업을 즐겁게 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난 건 <사람-책되 툴킷 워크숍>을 통해서다. 병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지말고 지금부터 해도 충분히 넌 훌륭하게 할 수 있다는 응원의 말, 너에게 바보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진짜 바보라고 사람은 사람을 평가할 수 없는 거고 정상/비정상 평가에 위축되지말라고 서로를 위로하던 정신건강센터 사람들. 

엄마가 아닌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이렇게 진심으로 응원해주니 정말 행복하다고 눈물 흘리고, 아픔을 드러내는 사람에게 그렇게 슬플 땐 참지말고 울라고 이런 시간도 필요하다고 다독이던, 함께 모여 그림책을 공부하는 주부들. 대기업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나니 남는게 병이었고 회복하고 나니 자신이 할 수 있는게 남아있지 않아 아들처럼 자신의 삶을 돌보며 일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후회가 남는다는 말, 기다리는게 늘 쉽지 않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지금 퇴직 후의 시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말을 덤덤하게, 혹은 어색하거나 과한 포장으로 말하던 퇴직한 장년들. 

듣고 나누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삶의 면면이었다. 이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많은 편견이나 거대한 언어로 그들의 삶을 판단해버렸을 거다.


2015년은 변화도 많았고 한계도 많이 느낀 해였다. 가장 가까이서 응원해주고 믿어준, 참 배울게 많고 고마운데 심지어 사랑스러운 연인과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밤마다 (그마저도 바빠서 어긴 적이 많지만) 내 화두와 고민을 정성스레 들어주고 조언해준 가족, 간헐적으로 출근해 정신없을텐데도 매주 금요일 혹은 화요일마다 반갑게 맞아주고 마음 써준 위즈돔 동료들. 참 많은 사람들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정말 왕 왕 감사하다.


지난 학기 큰 영감을 준 백승욱 선생님이 이번 <현대 중국사회의 이해> 말미에는 중국이든 다른 나라든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보다 나 역시 시대를 공유하고있는 시대의 일부라는 마음으로 더 풍성하게 접근해보라 권하셨다. 다른 나라까지 가지 않더라도 내 곁에 있는 사람, 내가 사는 공간에서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청년세대론에 여러 목소리가 더해지고 턱 턱 막히고 무기력해지는 순간들이 많아 무엇부터 먼저 해야할 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가 많아진다. 나와 구분짓고 편해진 순간도 많았다. 올해는 좀 더 다양한 사건과 담론 안에 놓인 나를 분명히 인정하고 시대의 일부로 살아가야 겠다. 또 지난 한 해는 늘 새로움을 마주하며 두려워하고 긴장하며 살았다면 올해는 더 편안하게 마음가는대로 따라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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