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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Dec 31. 2022

2022년 결산

아우 됐어 증말

2022년도 다 갔다. 정말 길게 느껴질 정도로 최선을 다한 해였다. 별 미련이 없어서 그런지 새해가 온다는 느낌보다는 월요일이 온다는 기분에 더 가깝다.

밀도가 높았던 만큼 부유하는 언어가 많아서 가지런해지지 않는다. 멀쑥하게 정리하기보다 미래의 나에게 남기는 메모로 정리해 본다.


1. 모든 건 다 과정이다.

일을 시작하고 나는 어떤 과정을 만들지가 늘 중요했다. 과정의 방식이 결과의 내용을 바꾸니까. 일을 하면서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이유기도 했다. 올해는 지금의 결과도 그다음으로 넘어가면 과정이 될 뿐이라는 생각을 하니 시간이 내 편으로 느껴져서 힘을 빼며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의 임팩트는 과정을 축소하거나 생략한다고 해서 커지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의 관성을 완전히 바꾸고 새롭게 만들어야 커질 수 있다. 기대하는 결과가 무엇인지 분명히 했다면 과정을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야 한다.


2. 실험에서 세계로 이전

초기 단계 기업과 창업가를 돕는 일을 할 때 나는 창업가를 ‘기업의 방식으로 자신이 믿는 세계를 구축해보는 사람’이라고 정의했고 나도 언젠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일해보고 싶었다.

첫 직장 동료 완두가 5년 뒤 열어보자고 2016년에 찍어준 영상. 코로나로 올해 열어 봤다. 뭐? 너 그렇게 말하다가 진짜 한다?


올해는 실험에서 세계로 이전된 해였다. 상반기에는 작년부터 이어진 실험을 끝까지 해냈고 하반기에는 우리가 믿는 세계를 세우고 구체적인 전략을 정리한 시간이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공을 들였던 건 두 가지였다. 1) 먼저 우리가 믿고 만들어갈 수 있는 세계는 어떤 모습인지, 그 세계가 현실적으로 구현되려면 우리는 어느 즈음에 놓여 있는지, 무엇을 가장 믿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찾아갔다. 지금도 그 과정 중이지만 개인으로 연결된 우리들, 시민의 가능성을 깊이 믿는 쪽인 거 같다.

2) 그다음 그걸 해낼 수 있는 조직은 어떤 형태를 갖추고 어떻게 일하고, 어떤 원칙과 우선순위를 가져야 하는지 고민했다. 이 고민이 동료들이 수단이 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과 결코 분리되지 않게 만들고 싶었다. 2023년에 더 공들일 일이다.


동시에 세계를 구성하려는 조직이 갖춰야 하는 책임에 대해 고민했다. 이렇게 해보면 어떻게 되나 한 번 해볼게요, 가 아니라 우리는 이런 미래로 갈 수 있고 이렇게 가야 해요, 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언어, 결정, 태도 안에 어떤 것을 인정하고 어떤 것은 폐기하는지, 어떤 합의와 약속이 작동되는지가 담겨 있으니까. 혹여 우리가 어떤 방향이 있다고 해도 단기간에 증명할 수 없고 하나씩 하나씩 해나갈 시간이 필요한데 찰나로 쉽게 흩어질 수도 있는 아주 어려운 몫이다.


내가 그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잘 해낼 수 있을까, 내가 더 커지지 못해서 한계가 되면 어쩌지 하는 마음도 든다. 현장에서 온몸을 변화를 막거나 만드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지금 내가 안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무언가 해내고 있다는 효능감이 괘씸하기도 한다.

외면하기보다는 이런 감정들을 반기는 편을 선택했다. 때로는 시선을 좁혀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많은 걸 단순하게 만들고 있는데 맹목적이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의심하는 마음이 꼭 필요하니까.


앞으로도 자기 의심도 들 테고 자기 확신의 재료로 다른 세계를 가벼이하는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나도 나의 한계 안에서 시작했고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나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되 나의 가능성이 세계의 가능성이 될 수 있도록 치열하고 견고해져야 한다. 복잡하게 썼지만 결국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3. 그러니 결심하되 갱신하자.

올해는 결심할 일이 많았다. 그리고 자주 갱신했다. 마음이 빈곤해지거나 지치면 어떤 태도를 가지고 더 해보자고 결심했고, 그 결심이 지나친 확신이 되어서 아둔해지지 않으려고 했다. 해보니 달랐다면 그리고 이다음으로 넘어갈 때가 되었다면 그 결심은 다시 갱신했다.

결심에 힘을 많이 주지 않으려고 했다. 힘이 꽉 들어가서 온몸이 딱딱해진 적도 많았지만 그럴 때면 “아우 됐어, 증말.” 라고 속으로 말했다. 이러면 조급하거나 불안한 마음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나이 듦은 스스로에게 편안한 동료가 되어가는 과정인 거 같다. 나를 괴롭히지 않고 문제를 마주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나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틈틈이 채워갈 줄 알게 되었다. 내가 늘 나의 편이라는 게 위안이다. 올해 나에게 가장 고마운 건 이런 면이다.

29살의 나에게 본인이 내린 선택을 확신을 가지고 즐겁게 지라고 말하는 24살 박혜민. 그려 ~


4. 혼자서도 좋은 시간

동리씨가 속초로 이주하면서 함께 지내던 방을 내가 원하는 대로 채울 수 있게 되었다. 한 번도 내 방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처음 해본 경험이었다.

오래전부터 서재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서 책상과 의자, 조명을 사고 카페트 위에 암 체어와 함께 두었다. 침대 매트리스를 바꾸고 침대 프레임도 함께 장만했다. (올해 큰 소비가 많았다.)


주말에 어디 나가고 싶지는 않고 생각을 정리하거나 일해야 할 때마다 책상 앞에 앉았다. 토요일에는 침대에, 일요일에는 책상에 앉는 날들이 쉬어갈 수 있게 했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만나는 김박천국 가족들, 자랑스러워하며 궁금해하는 엄빠, 늘 멋지다고 잘하고 있다고 못해도 상관없다고 이야기하는 동리씨,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관계없는 친구들과의 시간이 없었다면 혼자 보내는 시간이 좋았을 리가 없다. 이 관계에 좀 더 정성을 들여야지.


내년에는 독립하게 되었다. 방에서 집으로, 혼자 사는 건 처음이다. 미루지 않고 단정하게 가꾸는 시간을 잘 만들고 싶다.


5. 주말은 주말!

평일에 진을 빼고 주말이면 회복하거나 그다음 평일을 준비하다 보면 주말이 다 가고는 했다. 밖에 나가서 에너지를 쓰지 않고 나를 보상하는 쉬운 방법으로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에 혼자 술을 많이 마셨다.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계속 그러고 싶진 않다. 뇌가 저려.


내년에는 주말에 밥도 해먹고 책도 많이 읽고 싶다. 종이 책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을 때, 딴 생각 없이 책에 깊이 몰입될 때 쉰다는 기분이 든다. 일 말고 공부를 위해 책상 앞에 많이 앉고 싶고, 침대를 벗어날 체력을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싶다. 밖으로 나가서 계절을 느끼며 산책도 하고. 내년에는 속초에 더 자주 가고 동리씨와 바다도 보고 불도 떼우고 영랑호도 많이 걸어야지.


2023년은 중요한 성장의 시기고 정말 잘하고 싶고 재밌게 잘 해내겠지만 나를 뒤로 미룰 만큼 중요한 건 없다. 아우 됐어, 증말.


(+) 2022년 연말 결산을 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문장은 올해 걸그룹 덕분에 정말 많은 에너지를 받았다는 거였다. 소녀시대, 블랙핑크, 카라가 컴백했고 뉴진스, 르세라핌, 아이브, 아이들 등 멋진 무대를 볼 기회가 많았다. 늦은 퇴근길에 자주 무대 영상을 찾아 봤다. K-POP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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