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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 Jun 14. 2021

불편한 이야기

 월요일입니다. 일주일의 시작은 활기차게 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늘 제법 쓸쓸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지난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간 자리에서 하고 싶던 이야기를 다 쏟아내지 못했던 여파가 이제야 몰려오는 모양입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데, 불편한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합류하는 바람에 제 이야기를 끝마치지 못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후유증이 꽤 큰 것 같습니다. 마음속이 허한 것을 보면요.


 사람들은 불편한 이야기를 싫어합니다. 예를 들자면, 힘들었던 이야기나 힘든 감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같은 것들이요. 위로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특히 이런 이야기를 싫어하는 경향이 더 강합니다. 하지만 불편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힘들어한다고 해서 본인이 그 이야기를 뱉는 것을 힘들어하지는 않더군요. 자신이 가진 불편한 이야기는 잘 꺼내는 편입니다. 단지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것뿐이지요.


 험담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개인의 성향 차이일 테니까요. 하지만 가끔 이렇게 마음이 묵직한 날에는 그들이 조금 미워지기는 합니다. 우리의 관계를 친구로 설정하면서 왜 나는 '친구'에게 위로 한 마디 듣지 못하는지. 왜 나는 친구의 푸념을 듣기만 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에 속을 끓이게 돼요. 그러면서 제 이야기는 저 깊숙한 곳에 파묻어 버립니다.


 친구들에게 제 이야기를 감춘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불편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들도 제 힘듦을 외면해버릴까 두려워 미리 꽁꽁 숨기게 되는 것이지요. 이럴 때면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지 회의감이 들고는 합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사랑하려고 노력했는데, 정작 내가 힘들어하는 시기에 돌아오는 것은 외면일 때, 그 기분을 당신께서는 알고 계신가요? 당신께 이렇게 홀로 편지를 보내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외면당할까 두려워 어딘가에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가 없으니 아무 흰 지면을 빌려 이야기를 풀어놓고 돛단배에 편지를 띄우는 것입니다. 


 가벼운 이야기가 좋지만, 인생이 늘 가볍게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입니다. 고민과 걱정이 생기고, 그것들을 의논해야 할 일이 생겨요. 하지만 이런 것들을 의논할 친구가 없다는 것은 제법 많이 쓸쓸한 일입니다. 타인의 불편한 이야기를 기꺼이 들을 수 있으려면 타인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우정은 사랑까지 미치지 못하는 관계이기에, 굳건한 선이 있는 명백한 타인이기에 불편한 이야기를 꺼려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쓸쓸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기대를 조금 버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타인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대로 타인에게 베풀라'는 글귀를 인상 깊게 본 적이 있어요. 그 후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렇게 쓸쓸한 것은 타인에게 기대를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보상심리의 일종이겠지요. 이런 보상심리가 없어야 스스로도 강해지고, 우정에게 부담도 주지 않을 것 같아요. 


 오늘은 희망과 용기보다는 체념으로 편지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사람의 관계에서 정답은 없는 것을 알지만, 오늘은 아주 쓸쓸한 날이에요. 맛있는 것을 먹어도 풀리지 않을 법한 쓸쓸함입니다. 정신과에 가는 날이라 더 축 처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내일이면 조금 나아질까요? 오늘은 푹 쉬며 하루를 보내야겠습니다. 우울을 담은 사람의 편지를 매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은 조금 더 힘찬 마음으로 안부를 여쭈러 오겠습니다. 그럼 남은 하루 즐겁게 보내시길 바라며.


21. 06. 14. 달.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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