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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씨 May 07. 2023

스무 살 동생에게 쓰는 첫 번째 편지

삶의 '본질'을 고민하며 살아가길.

안녕, 동생?


막상 운을 떼려니 매우 부끄럽네. 분명 내 눈엔 항상 꼬꼬마 아가였는데, 어느 덧 스무 살이 되었다는 너를 보니 새삼 깜짝 놀라워. 떨어져 산 지 10년은 족히 되어 언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음에도 또 언니라고 잘 따라주는 동생을 보면 고맙기도 하고 그래. 며칠 전, 이런 저런 고민을 하는 너를 보며 언니의 이야기를 조금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한편으로는 꼰대같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열 살 정도의 차이라면 너무 멀지 않으면서도 조금은 먼저 발을 떼본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적어보아.


맨 처음으로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하다가 든 생각은, 너가 품고자 하는 가치, 삶의 방식을 잘 고민하고 그것을 잘 가지고 가라는 거야. 난 상상의 나래를 정말 잘 펼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온갖 상상을 해보곤 해. 내가 만약 지금 아프다면? 내가 아주 오래오래 산다면? 내가 갑자기 직장에서 잘린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한다면? 갑자기 로또에 당첨이 된다면? 정말 별별 생각을 다한다, 그치. 그런데 이런 상상을 계속 하다보면 결국 마지막에 다다르는 결론이 하나 있더라. 지금, 여기에 내가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 사람은 참 강하고도 나약해서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그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거야. 지금 네가 매일매일 학교에 가고, 수업을 듣는 것이 정말 당연한 일일까? 아닐 수도 있어. 네가 지금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평생을 보장해줄까? 그것도 아닐 수 있지. 그러면 계속계속 파고들어서 결국 지켜야 할 본질을 찾아내어 그걸 지켜가야 한다고 생각해. 나머지는 중요하면서도 또 중요하지 않을 수 있어. 예를 들면, 직장은 정말 중요하지만 그 직장이 아니어도 너의 생계를 꾸려가고 너의 능력을 개발할 곳은 다른 곳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 


다시 돌아와서, 그럼 본질은 뭘까. 사실 이 부분은 나도 이것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하진 못할 것 같아. 나도 평균수명을 놓고 보면 아직 반도 안살았으니 내 대답이 언제 바뀔지 모르는 거고, 그러니 죽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지켜가려 노력하지 않을까 생각해.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나의 삶의 본질은 '살아간다'라고 생각해. 좀 어두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사람은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간다고 생각해. 삶이 행복하지 않게 느껴지더라도 살아야만 해.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삶의 본질은 '살아간다'야. 그리고 여기에 부가적인 걸 덧붙여보자면, 기왕 살아간다면 좀 더 의미있게 살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 아니겠어. 흔히들 인생을 '여행'에 많이 비유하는데, 새로운 곳에 가서 좋은 숙소에서 가만히 누워있는 여행도 좋은 여행일 수 있지만, 또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는 여행을 바라기도 하는 것과 비슷해서 여행에 많이 비유하는 것 같아. 본질을 잡고 '살아간다'에 초점을 맞추니 힘든 일이 있어도 '그래 꼭 좋기만 한 법은 없지'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 같아. 마인드 컨트롤이라고 할까.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지? 그래도 조금씩 잘해가고 있는 모습이 너무 대견해. 막상 내가 좀 더 나이먹고 이 편지를 내가 다시 보게 된다면 너무 부끄러울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지금의 너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랑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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