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에 지지마. 인생은 비현실이야"
소노 시온의 영화는 이번이 네 번째. <두더지>, <차가운 열대어>, <자살 클럽>을 봤고, 필모그래피의 정점이라고 다들 부르는 <러브 익스포저>는 너무 길어 잠이 듬. 김기덕 감독과 비슷한 지점이 많다. 저비용으로 퀄리티 높은 영화를 만드는 점. 비교적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영화를 풀어낸다는 점(물론 비유와 은유의 쓰임이 너무 사적인 영역에 머물거나 난해하여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까지도). 무엇보다 틀에 박히지 않으면서도 서정적인 영상미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김기덕 감독이 무거운 내용을 둔탁하게 풀어낸다면 소노 시온은 좀 더 가벽고, 유머러스하고, 잔혹하게 풀어낸다는 점이 매력.
물론 소노 시온의 메시지가 그다지 살갑게 다가오지는 않으나, 매번 혀를 내두르는 점이 있다면, 영상의 만듦새. 피칠갑 화면을 굉장히 창의적으로 만들고 연결시키는 장면은 감탄을 자아낸다. <리얼 술래잡기>를 예로 든다면 아래와 같은 장면. 수학여행 중인 여고생들의 버스가 두 동강이 나며(동시에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여고생과, 운전수가 두 동강 나면서 질주하는...) 주인공이 비현실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장면.
대략적으로 여성의 자아찾기(혹은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 혹은 남성에 의해 재단된 여성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영화. 그러나 대부분의 소노 시온 영화가 그렇듯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스토리를 풀기보다는 사적인 생각을 사변적이며 이미지적으로 풀어내기에 조각조각 난 것들을 나름대로 해석하는 것이 정답. 소노 시온은 부조리에 대한 생각을 방담의 형식으로 풀어낸 것이 매력. 여하튼 부조리한 현실(비현실)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갇힌 자아의 틀을 부수는(자살의 형식으로) 장면, 그 장면을 영상과 음악으로 풀어낸 점이 기억에 남을 듯.
시종일관 일본의 포스트록 밴드 MONO의 "Pure as Snow"과 흘러나온다. 백색 깃털, 순백의 겨울, 여고생의 하얀 셔츠 등의 이미지가 핏빛의 적색과 대조를 이루고, 서정적이면서도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때면 어김없이 흘러나온다. 영화와 음악의 싱크로율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