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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서로에게 물들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배우 심은하의 매력에 흠뻑 빠지다 

    항상 궁금했다. 1993년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후 배우 스스로가 은퇴를 선언한 2001년까지 8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 심은하를 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순전히 배우 심은하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은 서로에게 시나브로 물들어 가는 춘희와 철수의 이야기처럼 배우 심은하의 매력에도 역시 시나브로 흠뻑 빠질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춘희의 집에 철수가 갑자기 들어온다


    작가를 꿈꾸며 결혼식 비디오 촬영기사 일을 하고 있는 춘희(심은하 분)의 집에 갑자기 생전 처음 보는 남자 철수(이성재 분)가 찾아온다. 무턱대고 춘희의 집에 쳐들어와 서슴없이 행동하는 철수. 알고 보니 철수는 춘희가 이사 오기 전 살았던 다혜(송선미 분)의 남자 친구였고 다혜는 철수가 군대에 간 사이 이사를 가고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지막 휴가를 다혜와 보낼 생각이었던 철수는 다혜의 배신에 큰 충격을 받지만 휴가 기간 동안 춘희의 집에서 다혜를 기다리기로 한다.  

    

공통점이라고는 1도 없는 춘희와 철수


    생판 모르는 데다 성격도 괴팍한 철수가 마뜩지 않은 춘희지만 급했던 자신의 원세를 철수가 대신 해결해주었기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그와의 불편한 동거를 받아들인다. 털털한 자신과 달리 깔끔하고 심지어 예민 플러스 무례하기까지 한 철수. 심지어 '미술관'을 좋아하는 춘희와 달리 그 옆에 위치한 '동물원'을 좋아하는 것까지 뭐 하나 비슷한 구석이 없기에 두 사람은 매일 상처가 되는 말을 서로 주고받는다. 

    특히 연애에 있어서도 두 사람은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데, 주말마다 자신이 일하는 예식장의 주례로 자주 오는 국회의원의 보좌관 인공(안성기 분)을 짝사랑하지만 말 한마디 제대로 못 붙이고 오랜 시간 가슴앓이 중인 춘희가 바보 같다 생각한 철수는 춘희가 사랑을 위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춘희는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는 철수가 사랑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글을 함께 완성하면서 춘희와 철수는 시나브로 서로에게 물든다


    로또 번호처럼 한 개도 제대로 맞는 게 없는 두 사람의 관계가 전환점을 맞는 지점은 공모전에 출품할 춘희의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글을 철수와 함께 준비하면 서이다. 물론 시작 역시 춘희의 글을 몰래 훔쳐본 철수의 '지적질'로 시작되었지만 춘희는 자신이 짝사랑 중인 '인공'을, 철수는 자신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다혜'를 상상하며 이야기를 완성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춘희는 철수가 그린 '다혜'를, 철수는 춘희가 그린 '인공'을 보며 서로가 꿈꾸는 사랑이 어떤 모습인지 알게 되고 나아가 조금도 이해할 수 없는 외계인과 같은 존재라 여겼던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 

    그 과정에서 이질적이며 전혀 어울리지 않기에 이해할 수 없는 곳으로 여겨졌던 '미술관 옆 동물원'이 어느 순간 서로가 좋아하는 공간이 나란히 있는, 그렇기에 자주 오가며 그가 혹은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보고 같이 느끼고 싶은 미지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자신의 생각 혹은 이상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조금은 하찮게 느껴졌던 서로에게 시나브로 물들며 춘희와 철수는 미숙했던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고 동시에 서로가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배우 심은하의 매력에 풍덩 빠지다

    조금은 엉뚱하고 답답해 보일 때도 있지만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춘희 특유의 맑음과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는 배우 심은하의 연기를 보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다리는지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자신의 공간에 침입한(?) 철수에게 주눅이 들지 않고 주체적으로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며 동시에 자신의 사랑과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 어느 누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몇 년 뒤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는 끔찍했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었을 때 담담할 수 있었던 건 나이를 한 살씩 먹어서인가 보다'라는 춘희의 담담한 고백처럼 아마 많은 관객들은 오랜 시간 그의 연기를 보며 그와 함께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다만,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까지 고민하고 있지만 '날마다 벡델 데이' 매거진에 '미술관 옆 동물원'은 올리지 않을 생각이다. 배우 심은하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영화 <집으로> <오늘> 등 이정향 감독 특유의 감각적이며 서정적인 연출이 돋보인 영화이며 지금보다 훨씬 더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보수적이고 편협했던 22년 전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분명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은 좋은 영화임은 맞으나 그럼에도 여성 혼자 살고 있는 공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 주인공이 갑자기 들어와 공간의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은 조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꼭 한번 봐보시면 좋겠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이 영화는 왓챠(Watcha)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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