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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송 Apr 05. 2021

구로사와 기요시의 <스파이의 아내>(2020).

지금 주목해야 할 영화들 #1

  왜 이 감독이 봉준호 감독이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인 것인지 이해했다. 결론 먼저 말하자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이런 영화에도 자신의 개성을 담을 수 있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대표작인 <큐어>를 본 나로서는 그가 일제강점기를 어떻게 그려낼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그런 이유 밖에도, 코로나 19로 개봉이 연기된 기대작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이웃나라 거장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분명 좋은 경험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일제의 만행을 멈추려 했던, 그리고 정의와 행복 중 하나를 택해야만 했던 일본인의 고찰이 주제에 얽혀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선택한 방법에 대해 한 가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왜 이 작품은 일제가 숨기려 했던 실체를 국제사회에 알리려 했던 유사쿠가 주인공이 아니라, 그의 아내인 사토코를 주인공으로 설정했을까? 유사쿠를 주인공으로 했다면 그를 따라 만주에서 벌어진 참상이 영화 속에 담겼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좀 더 역동적이고 주체적인 영화로 만드려고 했다면, 유사쿠의 이야기가 더 적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방법을 따르지도 않았고, 애초에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유사쿠와 후미오는 사업차 갔던 만주에서 731부대의 생체 실험을 목도하게 된다. 그곳에서 군의관인 남편과 함께 목숨을 잃을 위기에 있었던 히로코를 구해낸 뒤, 국제사회에 이 사실을 알려서 일제의 비인륜적인 만행을 멈추고자 다짐한다. 그 과정에서 유사쿠는 그 다짐을 아내인 사토코에게 공유하지 않는다. 아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군의관의 아내였던 히로코처럼 함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나오는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책임을 지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제사회에 직접 증인을 자처하려 했던 히로코를 비롯해 유사쿠를 따라서 미국으로 가려던 사토코까지, 이 작품의 여성들은 남성들이 배려했던 책임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그 허망함과 맞닥뜨린다.

  사코토는 작 중에서 남편인 유사쿠에게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은 언제나 나보다 멀리 보고 있어요." 그런 사코토의 말처럼, 일본인으로서 그런 만행들을 눈 감고 넘어간다면, 아내와의 행복한 일상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사쿠는 눈 앞에 보이는 행복보다 멀리 있는,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정의를 택한다. 이 부부는 감정을 나눌 때마다 포옹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포옹은 서로의 심장을 가장 가까이하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두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교차하며 다른 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사쿠와 사토코가 나누는 포옹은 유사쿠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매개체가 된다. 항구에서 사토코와 포옹하며 히로코와 후미오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줬던 유사쿠의 모습에서도 그런 이중성을 발견할 수 있다.

  유사쿠에게 부탁받은 필름이 가짜였다는 것을 알게 된 사코토는 절규한다. 그 절규에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허망함이 기저를 이루고 있다. 그 뒤로 남편의 행방마저 찾을 수 없었던 사토코는 5년 뒤, 정신병원에서 일본의 패망을 겪게 된다. 이 영화는 멈출 수 없던 만행을 씻지 못할 패전의 흉터로 맺을 수밖에 없었던 일본 사회에 대한 냉소와 고찰을 담고 있다.

  파도치는 바다에 허망함을 토로한 사토코는 위조된 유사쿠의 사망보고서를 따라 미국으로 향한다. 아직 남은 희망을 붙잡으려는 사토코의 뒷이야기는 작중에서 다뤄지지 않고 막을 내리지만, 여지를 남기고 떠나는 작품은 그에 대한 대답을 이미 한 듯하다.



  

  이 글이 작성된 날짜를 기준으로, <스파이의 아내>의 국내 관객의 수가 1만에 가까워지고 있다. 좀 더 특별한 영화를 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영화가 좋은 경험을 선사해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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