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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송 Aug 25. 2021

이두용의 <최후의 증인>(1980).

당신은 모를한국고전영화#4

 이두용 감독의 작품들은 한국적 색채와 장르적 요소가 굉장히 잘 어우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통문화와 오컬트를 섞은 <피막>, 그리고 이 글에서 이야기할 <최후의 증인>은 한국전쟁의 흉터에 추리극을 얹은 작품이다. <돌아이> 시리즈,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뽕> 등의 시대를 풍미한 작품들을 연출했던 이두용 감독은 <피막>으로 한국영화 최초로써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되며 그의 연출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그중에서도 <최후의 증인>은 김성종 작가의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의문의 살인사건에서 출발해 한국전쟁의 참상으로 점진하는 형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 김기영 감독의 <하녀>와 함께 한국고전영화의 명작으로 항상 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가려져 있던 한국사회의 이면을 가감 없이 파헤치는 오병호 형사를 따라 <최후의 증인>을 톺아보자.




 이두용 감독은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자신의 포부에 대해 이야기한다. 1980년을 여는 당시, 구악을 씻어내고 재질서를 확립하는 데 진실에 대해 토론하고 싶다 말하는 감독의 이야기는 <최후의 증인>이 영화 안팎에서 어떻게 읽혔으면 좋겠는지 그 방향에 대해 확신할 수 있게 해 준다. 어제의 진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영화는 그저 과거로만 그치지 않는다.

 경찰 조직 안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떠도는 형사, 오병호 앞으로 미제 사건이 놓인다. 양달수의 죽음, 그 뒤를 쫓아 한때 북한군의 잔당이었던 강만호를 알게 된다. 강만호와 손지혜, 그리고 황바우와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며 오병호는 살인사건들이 한국전쟁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다. 

 강만호의 과거는 북한과 남한, 빨치산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군의 딸이었던 손지혜와 머슴 황바우는 강만호와 함께 학교 밑으로 숨어들었지만, 잔당들로부터 능욕을 당한 손지혜를 뒤로 강만호는 죄책감과 함께 그들을 떠난다. 죄책감만으론 씻기지 않은 죄악은 30여 년이 지나, 강만호의 숨통을 조인다. 오병호는 진실과 함께 결국 강만호를 단죄하고야 만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미스터리는 깊어진다. 양달수를 죽인 인물은 누구일지, 오병호의 뒤를 쫓아 방해하는 의문의 세력, 진실에 다가갈수록 오병호는 갈증을 느낀다. 아내마저 죽고 형사로서의 삶을 방황하는 그에게 진실은 최후의 보루이자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손지혜에게 남겨진 유산을 탐낸 양달수와 김중엽은 한동주에게 협박을 통해 황바우를 살인혐의로 교도소에 넣는다. 이후 황바우는 무고로 교도소에서 20년을 살아야 했고, 한동주의 계략에 휘말린 태영은 황바우의 원수나 다름없는 김중엽과 양달수를 살해하게 된다. 태영은 결국 정신병동에 갇히고, 그런 태영을 위해 황바우와 손지혜는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야만 했다. 자신의 이기심으로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추악한 모습을 보인 한동주는 결국 오병호의 손에 의해 덜미를 잡힌다. 한동주의 체포는 이 영화에서 가장 장르적인 쾌감을 안겨주는 동시에 가장 처절하고 분노를 요구하는 장면으로 완성된다.

 한동주에게 납치됐던 오병호 형사의 활약으로 태영은 풀려났지만, 너무 늦은 나머지 자신을 자책한 황바우는 강가로 가서 스스로 숨을 거둔다. 이에 절망한 손지혜는 황바우의 장례를 치르던 중, 황바우를 따라간다. 끝까지 악의 손에 놀아난 태영의 가족들은 한국전쟁의 희생으로부터 시작된 고통에 결국 무릎을 꿇고, 오병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에 절망한다.

 한동주의 부하들을 죽인 혐의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오병호는 강에 황바우의 유골을 뿌리며 추모한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 장본인이자, 최후의 증인으로 남은 오병호는 많은 사람들의 신임을 얻지만 절망적인 현실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한국전쟁이 남긴 사람들의 고통을 온전히 보듬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한계, 그리고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악 앞에서 오병호는 증인의 자리를 관객에게 남기고 떠난다. 

 이두용 감독의 작품들은 도전과 조화가 돋보인다. 억압받던 당시의 한국사회에 던지는 이두용 감독의 포부와 질문은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이두용 감독이 그리는 작품들은 과거의 한국을 비춘 거울과 같다. 우리는 <최후의 증인>이 남긴 이야기의 새로운 증인이 되어, 다시 한국을 그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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