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려면 어때

[인생 복습 ⑧] 소수자 -Minority

by 이창우


사회적 소수자는 세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더라. 신체적 소수자인 장애인과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 성전환자이다. 그런데 이게 공부를 하려 들면 치밀하게 해야 할 텐데 나란 인간이 내 필요한 것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자동으로 멈추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거지.


LGBT는 성 소수자를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의 총칭이다. LGBT에서 LGBT QIA라는 용어도 사용되고 있는데 queer는 성 소수자에 대한 총칭이다. inter sexual은 남녀 한 몸, asexual은 무성의, 무성생식, 성별이 없는 소수자까지 포함한다.


세 번째 그룹으로 문화적 소수자를 말한다. 소수민족, 외국인, 탈북자, 전과자, 특정 종교의 교도, 항구적인 소수자는 아니지만, 소수자의 취향을 가진 자, 생산 중지된 낡은 모델의 전자제품 사용자, 자동차 등을 고집스럽게 사용하는 사람들, 1960~70년대의 영국 록 음악만 좋아하는 사람들 등이다.


이 그룹에 속하지 않을 개인은 없을 것 같은데 결국, 각 개인은 ‘소수자’ 아닌가. 다만 ‘소수자’에 전제되는 부정적 뉘앙스를 뛰어넘는가 아닌가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소수자는 다수자와 동등한 권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소수라는 이유로 여러 가지 차별과 불이익을 당한다.


더 큰 문제는 다수와 소수를 구분하는 근거가 전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적이고 자의적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인류의 역사가 진보하면서 숫자의 부족으로 ‘아웃사이더’로 또는 ‘이방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것 또한 다수의 횡포이지만. 아니다. 나로선 그렇게 불리는 것도 별 의미가 없다.


그래, 확실히 나는 소수자 -Minority이다.


자의식을 갖게 된 그때부터 다르게 살아왔다. 타인이 기울이는 관심과 다른 것들에 시선을 두고 ‘다름’에서 ‘존재’를 느낄 수 있도록 스스로 어느 정도는 격리했던 것 같다. 복습하는 중이니 과거형으로 쓰이지만 그 과거형의 내가 현재형으로도 소수자로 살아 있는 것은 틀림 없다.


이런 생각을 뜻밖에 하게 되면서부터 ‘인생 복습’을 시작하고자 했으니 과거의 시제와 현재, 다시 미래로 오고 가겠지. 이 시작은 한 편의 영화 뒤끝이니 다시 이누도 잇신의 <시니바나>로 기억을 되돌려야 한다.





이 영화에서 소수의 노인을 만난다. 노인이 되어 누구나 갈 수 없는 곳에서 살아가게 되는 노인들의 천국으로 설정되었다. 보증금과 월 생활비가 장난이 아니니 일단 돈이 없으면 쳐다보지도 못할 곳이다. 그 안에 속할 소수 노인이 아닌 다수에 속할 나의 미래를 떠올렸다. 전혀 불편하지 않은 마음으로 그들의 안락함이 결코 근사해 보이거나 부러워지기는커녕 노후의 시간까지 돈으로 해결하는 모습 정도로 다가 온다랄까. 그렇다고 그들의 선택을 폄훼할 의도도 없다. 그건 그들 삶의 마지막 여정이니.


마지막 남겨진 시간까지 자신을 위해 가진 돈을 끌어안고 저길 들어가느니 그 돈으로 다른 일에 쓰면 이 땅을 떠나는데 얼마나 가벼울까. 어차피 떠날 때는 빈손일 텐데. 나도 노인이 되면 그런 결정을 할지도 모르지. 뭐, 감독의 의도야 노인이든 젊은이든 삶의 열정이나 의미 부여를 위한 배경이겠지만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 못 가진 자의 넋두리로 들린다면 그것 또한 글을 읽는 당신 마음이기는 하다.


하지만 열정을 찾기 위한 노인들의 행동에는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저렇게는 될 수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을 하는 거지. 자기 미화인가? 하하. 그러면 좀 어떤가.


여기에서 한 편의 소수자에 속할 노인의 이야기가 무척 마음에 와 닿았던 영화가 있다. 사회 문화적 차이겠지만 이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은 인터넷 시대에 맞게 노인들을 유혹하는 낚시성 홍보물도 한몫을 했다.

존 매든 감독의 영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이다. 웹사이트에 소개된 끝내주는 비주얼 대신 인도의 이국적인 낡은 호텔에서 인도 청년 소니가 그들을 반기긴 한다.




영국에서의 삶에 지친 황혼기에 접어든 일곱 명의 노인들이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인도를 찾는다. 낯선 장소에서 마주하는 개인들의 삶은 얼마나 다양하던가. 노인이 된다는 것은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운 거다. 신체적인 쇠락과 정신적 정체도 자연스러운 일이겠지. 나도 익숙함에 평안을 느끼는 삶을 지나왔지만, 그것에 안주하는 시간은 아니었다 해도 그때가 되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들이 바라던 모습의 호텔은 아니지만, 그곳에 도착 후 그들이 선택하는 시간은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슬그머니 드러낸다. 호텔이 중요한 노인이 있기도 하고 이국적인 곳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기도 추억을 완성하며 떠나는 노인도 있다. 마무리해야 했던 자신의 능력을 토대로 새로운 도전에 몸을 일으키는 노인도 있다.


음, 나를 돌아보니 일상이 충분히 익숙해지면 신기하게도 좋든 싫든 늘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곤 했던 것 같다. 그 시간 앞에서 새로운 선택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아 왔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홀로 걸어온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같다. 그래서 미래 그 어느 날에도 나는 역시 소수 노인이 되어 있겠지. 나처럼 어디에선가 복습 인생을 살고 있는 이가 있을 것이고 누군가가 미래 어느 날 내 곁에 있게 될지도 모르지.


그때에도 나는 지금처럼 여전히 내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소수자의 모습으로 있을 테니. 부디 마지막까지도 다수에 속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소수자로 살아가는 것만은 인생에서 복습이 아닌 여전히 학습 중이군. 소수 중 가장 아름다운 수라 생각하는 ’ 11’로. 거의 모든 일은 자기 삶의 만족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이전 07화함께 나누던 시간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