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08 + 엄마 08
할아버지 07.
두 딸 집이 같은 아파트 단지인 덕분에 육아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 기본적으로 요일별로 한집에 모여 손주를 돌본다. 따라서 손주를 껴차고 양쪽 집을 오가는 게 다반사이다.
한때는 손주뿐 아니라 아이 짐보따리를 한 움큼 보태고도 '택배 배달' 임무(?)는 한걸음에 가볍게 클리어했는데. 얼마 전, 손주만 안았는데도 반도 못 가 숨이 탁 막히는 게 아닌가!
어? 나이 탓? 아니지, 겨울이라 나도 손주도 넘~ 껴입은 탓이겠지.
아니었다. 손주 녀석이 어느새 훌쩍 커버려서, 몸무게가 부썩 무거워진 것이다. 이렇게 불쑥 커버리는 두 손주를 바라보며, 기특하다란 느낌보다 왠지 애잔한 씁쓸함이 엄습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조부모님은 외할머니밖에 없었다. 더욱이 난 첫 손주였다. 그래서 태어나서부터 나는 무척이나 할머니 사랑을 독차지했었다는데... 나로선 그때 기억이 전혀 없다.
나의 할머니에 대한 첫 기억은 유치원 시절부터이다. 그때 미군 군납품 치즈를 몰래 챙겨주신 좋은 기억도 있지만, 유치원 보내는 할머니가 좋은 옷을 안 입혀준다고, 유치원 안 가겠다고 때를 쓴 기억이 더 생생하다. 어릴 적,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못 해내는 미안함. 그 미안함을 지금 내가 두 손주에게 베풀다고 위안하고 있다.
엄마 08.
'다행이다'
아빠의 글에서 '위안'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
아빠에게 글을 보내달라고 한지 두 달 정도 되었나. 여전히 아빠는 종종 카톡으로 장문의 글을 보내주신다. 워드도 메일도 아닌 카톡으로 그 긴 글을 또박또박.
월화수목금 함께 육아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들을 보며 같이 하하호호 웃어넘기는 일들이 많다. 분명 같이 웃고 넘겼는데 아빠는 며칠 후에 며칠간의 일기를 보내주신다. 너무 선명하게 보이는 그날의 일들. 처음에는 '아 이거 소재가 너무 겹치는데? 내가 한 발 늦었군' 히죽거리며 읽는데, 마지막에는 항상 코끝이 찡하다. 왜일까?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들을 너무 잘 알아서? 아니면 아빠가 진솔하게 써 내려간 글 속에 아이들을 향한 애정이 묻어나서? 브런치가 뭔지도 잘 모르시고,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쓰신 글이 아니라 포장도 과장도 없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재미없겠지만. 나는 아빠의 글을 통해 그날의 우리들이 보여서, 잊히지 않고 이렇게 추억으로 묶어놓을 수 있어서, 육아라는 섬에 외롭게 혼자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지난날들에 대한 위로가 되서인지 자꾸만 울컥한다. 그래도 내가 생각하기에도 눈물은 조금 오버인데... 아직 산후우울증이 남았나? 아무렴 어때. 아빠에게는 배꼽 잡고 웃는 이모티콘에 하트를 더해서 답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