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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r 24. 2017

싱가폴에서 한 달 동안 일하기

생산적인 도시 싱가폴에서 한달살기

어느덧 2017년 1월부터 3월까지의 여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며칠 째다.

싱가폴에서 일주일 즈음되었을 때 브런치에 글을 써볼까 했지만 그냥 싱가폴을 더 즐기고 천천히 쓰고 싶어져 게으름을 부리다 보니 오늘이 되었다.


매 해 겨울의 탈출은 생산성을 위한 거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한다. 사실이다.

추운 겨울엔 꼼짝도 하기 싫다. 특히 따끈한 전기장판과 이불속에서 둥지를 틀고 배달음식만 시켜 먹다 보면 자연스레 곰이 되어 일도 멀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익숙해져 버린 곳에서의 나태함을 떨쳐 버리려면 내가 있는 도시를 떠나 새로운 환경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체감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시에서의 적당한 긴장감과 새로움을 안고 생활하는 것. 설렘과 생산성 그리고 겨울 탈출 세 가지 장점을 안겨준다.


이번엔 싱가포르에 도전을 했다. 이유는 여름나라, 깔끔하고 치안이 좋은 것, 창업이 활발해 스타트업들의 교류가 많고 시설이 많다는 것이었다.


작년 초부터 론칭을 준비해왔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다른 신규 프로젝트에게 밀리고 밀려 여태껏 런칭시키지 못했었다. 12월부터 다시 'L프로젝트'를 활기차게 시작했고 싱가폴 여정을 마칠 때면 런칭과 함께 애플 Featured까지 시키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1월 보름즘 상해를 3일 정도 경유해 싱가폴에 도착했다.




1. 집

창밖 풍경을 내다볼 수 있어 좋았다.
침대 머리맡엔 상해에서 뽑아온 토토로와 내 작은 짐들을 올려두었다.
저녁이 되면 가로등이 켜져 도로와 도시가 밝혀져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우선 한 달을 지내고 싱가폴에 더 머물지, 혹시 모를 도시의 이동을 고려해 한 달만 집을 구했다.

AirBnb에서 구한 집은 생각한 것만큼 작았지만 운치 있고 아늑했다. 싱가폴의 야경이 보이는 테라스는 매일 밤 일하고 돌아와 음료나 커피를 한잔하며 피로를 풀기에 좋았다. 내가 묵었던 스튜디오는 Spottiswood Park에 있는 레지던스였는데 대부분 서양인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고층에는 자쿠지와 짐이 있어 운동을 할 수 있었고, 1층과 2층에는 큰 풀이 있어 언제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레지던스에서 매일 Robinson Road에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까지 걸어 다녔는데 30분 정도의 시간으로 적잖은 시간이 걸렸지만 가는 길목에 있는 맛있는 커피집을 들러 모닝커피를 마시며 아름다운 건물과 풍경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금방 도착하곤 했다. 차이나타운도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집은 꽤 괜찮았지만 그래도 퀸 침대가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방과 소파와 TV, 냉장고, 싱크가 전부였던 작은 집이 한 달에 500만 원 수준이라니. 비싸도 너무 비싸다.  

(그리고 레지던스에서의 에어비앤비 호스팅이 불법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호스트가 여러 번 거듭 강조하며 입단속을 시켰다.)


첫 집을 떠나 발리로 떠나기 전 이틀간 묵었던 Shop house.
외관과 달리 실내가 멋지다. 1층은 거실, 2층은 서재, 3층은 침실이다.
아침마다 기분좋게 마주하는 벽화






2. 코워킹 스페이스

떠나기 전 미리 알아본 코워킹 스페이스는 '워킹 캐피톨'이었다. 내가 묵는 곳에서 도보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붐비는 시간에 투어를 가서 그런지 자율석에 앉을 경우에 자칫하면 자리가 없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지정석은 가격 차이도 제법 났으며 자율석과 반대로 아주 조용한 분위기였다. 개인적으로 개방된 분위기에 창밖 풍경도 즐길 수 있는 자율석이 마음에 들었으나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실망을 하고 다른 곳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다음으로 가본 곳은 로빈슨 로드에 위치한 'Just Co'였다. 점심시간 즘 도착한 로빈슨 로드에는 직장인들의 분주한 모습으로 흡사 강남역의 점심시간과 비슷 하단 느낌을 받았다. 근처엔 음식점, 카페, 편의점도 많았다. 복잡했지만 활기찬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나까지도 같이 바삐 움직여야 할 것 같은 에너지가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Just Co'를 도착했을 때 여유로운 좌석과 높은 층고, 친절한 스태프들 등의 좋은 첫인상으로 등록을 했다.


(대부분 코워킹 스페이스 월 자율석은 40-50만원 정도, 지정석은 대략 70만원 선)


한 달 동안 매일 직장인들과 같이 출근을 했다. 알록달록한 싱가폴 특유의 건물들, 인조적이지만 잘 꾸며놓은 조경이 주는 녹색의 싱그러운 느낌을 매일같이 즐기며 걷다 보니 일하러 가는 길이 즐겁기도 했다.


오전 10시쯤 출근하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도 그들의 틈에 섞여 자리를 잡고 일을 하기 시작하면 시간이 언제 이렇게 빨리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집중하게 되었다. 코워킹 스페이스의 장점은 '다 같이 일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그 속에서 나도 집중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집에서 혹은 카페에서 일을 하다 간혹 일하기 싫은 날들도 있는데 적어도 코워킹 스페이스를 다니는 동안엔 하루 종일 농땡이를 부릴 날은 없는 것 같다. 최소한의 집중은 하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6시가 지나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퇴근하고 한두 명의 사람만 남는다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주말인 줄 모르고 출근했더니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자유롭게 일하는 코워킹 스페이스임에도 그들은 업무와 휴식의 구분이 칼로 자른 듯 확실했다. 그 시간엔 굳이 코워킹 스페이스까지 오지 않아도 가게문이 모두 닫혀버린 황량한 로빈슨 로드의 분위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아 오늘이 평일이 아니구나'라는 걸.


Just Co에서는 종종 행사가 열리는데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자율석에선 도통 일을 할 수가 없다. ㅠㅠ

너무 구분 지어지지 않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이다 보니 집중을 하기 어렵다. 나는 프로젝트를 마쳐야겠다는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를 하진 않았다. 오로지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겠다는 마음으로 진도를 쭉쭉 나갔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매일같이 초집중하는 생활을 1년 내내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간혹 내가 루즈하다고 느껴질 때, 바짝 긴장을 하고 일하고 싶을 때 다시 이런 환경을 찾아 돌아올 의향이 있다.

(다음번엔 워킹 캐피톨을 이용해 보고 싶다.)

명절을 즐겁게 맞이하는 코워커들







3. 음식

단돈 4천원이면 먹을 수 있었던 누들스토리. 너무 맛있어 자주 찾았다.

개인적으로 싱가폴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음식이었다.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는 나라인 만큼 한식도 물론이고 전 세계 음식 모두 맛볼 수 있다.


싱가포르에서 심심찮게 조깅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동네 번화가 할 것 없이 운동복 차림을 하고 귀에 음악을 들으며 뛰고 있었다. 마리나베이샌즈 앞에서도, 가든바이더베이 공원에서도, 로빈슨로드에서도, 내가 머물던 레지던스 앞에서도. 그리고 음식점에는 꼭 '글루텐 프리'라고 명시되어 있는 메뉴들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선 보기 힘든 '다양한 샐러드 가게'를 방문할 수 있었다. 샐러드 라면 맛있어도 풀이 기본이고, 매일매일 먹기엔 언젠간 한계가 올 거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었는데 싱가폴에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샐러드 가게와 다양한 메뉴가 있었다. 나는 코워킹 스페이스 옆에 있던 Salad Stop을 자주 갔는데 나중엔 일하는 분이 매일같이 기분 좋은 눈인사를 해주었다.


덕분에 싱가폴에 있는 동안 샐러드와 랩 메뉴를 주로 먹었다. 매일 1시간 이상씩 걷다 보니 몸이 가벼워지고 집중력도 향상됨을 느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매일 쌀과 밀가루를 먹던 때와는 너무 다른 컨디션이다.


싱가포르엔 여러 호커센터 (푸드코트)가 있는데 이 곳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한화 3-5000원으 로도 아주아주 훌륭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었다. 직장인들이 주로 이용한다. 단점은 오픈된 공간에 있고 사람들이 많은 점심시간, 저녁시간에만 운영해 덥기도 하고 줄도 길었다. 이 정도 음식 가격으로 매일 같이 생활한다면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 보다도 식비는 덜 들었을 것이다.




반면 마리나 베이 샌즈에서 분위기가 좋은 레스토랑을 찾았을 때였다. 물도 한병 시키고 파스타와 샐러드 그리고 와인 한잔도 마셨다. 살다 살다 물 한 병을 만원이나 주고 마신적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하루는 한식이 너무 그리워 탄종파가 근처에 있는 한식집을 찾아가 소고기, 김치전, 소주 한잔, 찌개 한 뚝배기를 맛나게 먹었다. 17만 원이 나왔다. 싱가폴의 물가는 상상 이상으로 천차만별이었다.


가격을 떠나 인생 맛집으로 꼽을만한 훌륭한 맛집도 많았다. 스페인 음식점 FOC는 엄지 척척 이었다. 싱가포르에 있는 동안 두 번밖에 못 간 것이 아쉽다. 그 외에도 싱가폴에 있는 음식점들은 전반적으로 맛의 퀄리티가 좋은 편이었다.  


길을 걷다 보면 오토바이나 자전거 배달원들이 많이 보인다. 우버잍, 딜리버루와 같은 배달음식도 있어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한번 우버잍에서 타코를 주문해 먹어 보았다. 대략 배달시간은 한 시간 정도, 배달비용이 차지되고 음식이 헝클어져 왔다. 맛은 있었지만.. 역시 배달음식은 우리나라가 최고인 것 같다.





4. 이동수단

처음엔 멀다고 생각되는 곳을 나갈 때면 주로 '우버'나 '그랩'과 MRT를 많이 이용했다. 지내다 보니 싱가폴이 생각보다 엄~청 작구나! 라는걸 깨닫고는 제법 멀다고 생각되는 거리도 걸어 다녔다. 구석구석 빼놓지 않고 구경하는 느낌이라 더 좋았다. 싱가폴의 크기는 경기도 화성의 크기와 비슷하다고 한다. 참 작지만 알찬 나라다.





5. 쇼핑의 메카

여자를 더 아름답게 꾸며주는 예쁜 옷이나 소품을 물론 좋아하지만 한국에선 쇼핑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싱가폴은 와.. 진짜 쇼핑의 메카라 불러도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나에게 싱가폴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지하도시'라고 말하고 싶다. 싱가폴의 지하도를 걷다 보면 끝도 없이 샵들이 나오는데 겹치는 것도 별로 없을뿐더러 종류가 무지무지무지 다양하다. 보세부터 로컬 브랜드 글로벌 브랜드 화장품 의류 명품 기타 등등..


싱가폴에서 가장 많이 본 문구가 있다면 'More Shops'다. 끝~이 없는 쇼핑몰들. 여자들이 살면 무지 행복해할 것 같은 도시다. 다니는 거리마다 소비욕을 마구 자극한다. 특히 오차드로드는 아침에 가면 차가 끊기고 나서 돌아와도 아쉬울 정도로 방대한 쇼핑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가장 넋을 놨던 곳은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가게였다. 왜 우리나라에선 이런 걸 찾아볼 수 없는 거냐고 혼잣말을 몇 번이나 했다 ㅎㅎ


직접 향을 조제하는 가게를 찾았다. 마음에 쏙 드는 향을 구입하곤 향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6. 인상 깊었던 점들


다양한 인종이 함께 모여 사는 싱가폴. 패션도 다양하고 개성도 제 각각이었다. 여자들은 수수하기보단 한껏 꾸미고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는 느낌이 강했다. 대부분 마른 몸매보다 운동으로 가꾸어진 몸매인 여성들이 더 많아 보였고 덕분에 나는 근육이 부족한 사람임이 상대적으로 부각되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모두가 날씬할 수 있느냐고 이 또한 싱가폴에 지내는 내내 외치며 스스로 자극받았다. 그래서 샐러드를 주식으로 먹기 시작한 이유도 있고. 이곳에 지내는 한 달 동안 불특정 다수의 그녀들 덕분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건강한 생활을 했던 것 같다.


국가의 엄격한 법과 처벌 덕분인지 나라가 질서 있고 깨끗한 분위기였다. 택시를 타도 돌아간다던가 바가지를 씌우는 등의 눈속임을 걱정할 염려가 없었다. 편의점에선 기계에 돈을 넣으면 거스름돈도 기계가 돌려주는 계산 시스템에 놀라웠다. 모든 것이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아시아를 여행할 때는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의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건강을 챙기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지만 흡연자들의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나라에서 흡연을 장려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흡연을 했다. 길거리 곳곳에 재떨이도 있고 푸드코트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 흡연에 대한 인식이 상반된 것 같아 신기할 정도였다.







7. 한 달을 지내고

싱가포르는 충분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나라였다. 동시에 생산적인 곳이기도 했다. 밤과 낮의 다른 면도 뚜렷했고 인조적이지만 이렇게 완전한 도시가 있을까 라고 생각될 정도로 멋진 곳이었다.


아쉬운 부분은 다양한 박물관, 전시회를 가보지 못했다는 거다. 가는 날이 장날인지 레드닷 뮤지엄을 방문 했을 땐 프라이빗 행사로 관람을 못했고, 싱가포르 아트뮤지엄은 내가 정보를 보고 갔던 전시와 달라서 아쉬움을 뒤로 했다.


한 달을 그렇게 열심히 지내고 결국 프로젝트는 론칭하지 못했다. 진행하며 기능들과 구성을 점점 디벨롭하다 보니 마무리를 못 짓게 되었다. '한 달 더 싱가폴에서 지낼까?'라는 고민을 한 주 동안 하다 결국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찾았던 '발리'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큰 이유는 없었다. 싱가포르에서 모든 생활이 만족스러웠지만 도시에서 온 나는 새로운 도시의 새로움에 익숙해진듯 했으나 한 달을 지내다 보니 조용한 곳으로 떠나고 싶어 졌다.


이미 익숙해졌지만 방문할 때마다 새로움을 주는 발리가 그리웠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동네에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에서 푹 쉬고 싶어 졌다. 싱가포르에서 쓸 수 있는 예산으로 발리에서 더 좋은 집을 구하기로 했다. 그리고 난 발리에서의 한 달 동안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다짐하며 또다시 싱가폴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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