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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활여행자 Feb 02. 2016

가우디를 찾아 떠난 바르셀로나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와 함께 하는 바르셀로나 건축 여행


바르셀로나의 한 천재가 우리 곁을 떠났다. 
바르셀로나의 한 성자가 우리 곁을 떠났다.
돌마저도 그를 위해 울고 있다.


1926년 6월 7일 오후, 전차 사고로 74세의 생을 마감한 그를 애도하는 신문 기사이다. 사고를 당했을 당시, 그는 사람들이 부랑자라고 생각해 병원으로 후송되기 전까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길에 방치되었다고 한다. 초라한 행색의 그가 당대 최고의 건축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건축가이기 이전에 바르고 검소한 생활로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바르셀로나 곳곳을 수놓은 이, 그가 바로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 1852. 6. 25 ~ 1926. 6. 10)이다.



자연을 닮은 건축물, 까사 밀라

성 가족 성당에서 바라본 바르셀로나 시내


비를 가득 머금은 묵직한 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잿빛 하늘의 바르셀로나는 생경하다.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여행할 때는 전혀 반갑지 않은 비와 함께 가우디의 대표작 중 하나인 까사 밀라(Casa mila)에 가본다. 굽이진 길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유연한 곡선으로 이어진 이 건물의 외관은 한 번쯤 들어가보고 싶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비수기. 평일 저녁. 비.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까사 밀라는 사람들로 붐빈다.


가우디 전시실에 있는 까사 밀라 모형


잔잔한 호수의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천장이 아름다운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간다. 가우디의 상설 전시회가 열리는 곳으로 가우디의 인생과 그의 주요 건축물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자료가 풍부한 곳이다. 이 곳을 지나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가본다. 



어둠을 밝혀주는 조명 덕택에 가우디 작품들의 면면을 볼 수 있었다. 하늘로 솟아오른 굴뚝 하나, 환기탑 하나에도 그의 독특한 그만의 스타일이 느껴진다. 기이한 형상을 한 조각들은 낯설기는커녕 건물과 잘 어우러지는 하나의 설치 예술 같기도 하다. 

대체 그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던 걸까? 내 물음에 대한 가우디의 답은 바로 자연이었다.


항상 열려 있으며 힘써 읽기에 적절한 책은 자연이다. 그 밖의 책은 지나친 해석과 음미로 인해 이러한 특성을 잃어버렸다. 세상에는 두 가지의 진리가 있다. 하나는 ‘도덕’과 ‘종교’이며, 또 다른 하나는 사실에 의해 우리를 인도하는 ‘자연’이라는 위대한 책이다.


자연을 바라보는 그의 남다른 시각과 관찰력은 건강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 정도로 허약했던 가우디는 뛰어  놀기보다는 조용히 앉아 사물의 형태나 움직임 등을 관찰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하늘, 구름, 물, 바위, 나무, 동물이나 산. 그의 눈에 비친 고향의 자연은 그에게 강한 생명력을 보여 주었고, 무한한 상상력을 길러주었다. 


까사 밀라 옥상의 조각들은 ‘톱니 산’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1500여 개의 봉우리들이 잇닿아 있는 험준한 몬세라도(Montserrat) 산을 닮아 있다. 계곡의 물이 건물 전체를 감싸 흐르는 듯한 외관. 갓 건져 올린 미역을 널어놓은 듯한 베란다. 자연은 그에게 영원한 참고서이고, 그의 건축은 자연을 담아내는 예술이었을 것이다. 

까사 밀라는 어떠한 건축이나 예술품과도 비교될 수 없는 작품으로 인정되었고, 1984년 유네스코는 이 위대한 건축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고독한 수도자이자 완벽주의 건축가였던 가우디

성 가족 성당


성 가족 성당(La sagrada familia: 사그라다 파밀리아)은 산업 혁명 이후 확산되는 물질 만능주의로 인해 피폐해진 도시인들을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의 집’뿐이라는 한 출판업자의 신념에서 출발되었다. 이름에서 의미하는 것처럼 가족들이 모여 기도할 수 있는 곳으로 계획되어 성당의 주제 또한 예수, 마리아, 요셉 세 사람의 성스런 가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1883년부터 공사에 참여한 가우디는 1926년 사망하기 전까지 43년간 성 가족 성당 공사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특히 마지막 10년은 작업실을 현장 사무실로 옮겨 인부들과 함께 숙식하며 생활했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하루 종일 공사 현장에 머물면서 미사, 아침 묵상, 삼종기도, 산책, 고해성사로 이루어지는 반복적인 삶을 살았다. 시간 관리에 철저했던 철학자 칸트처럼 그의 하루도 정확한 시간과 순서를 매길 수 있을 정도였다.

자기 자신에게 엄격했던 가우디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행동파였다.


인간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언어의 인간과 행동의 인간이지요. 언어의 인간은 말하며, 행동의 인간은 실천합니다. 저는 두 번째 부류에 속합니다.


본인의 말처럼 그는 스케치와 메모만으로 끝내는 일이 없이 항상 실행으로 옮기는 실천적인 인물이었다. 또한 완벽을 추구하는 장인이었다. 성 가족 성당에 장식된 사람과 동물들은 실제 모델을 따라 만들어졌다고 한다. 가우디는 사진이나 그림만을 참고로 작업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그가 작업하던 지하실에는 죽은 새와 동물들의 시체가 가득했다고 한다. 사람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도하는 가난한 자의 모델을 구하기 위해 실제로 병원에 안치된 부랑자의 시체를 고르기도 했다는 일화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생명력이 느껴지는 완벽한 작품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은 천재 가우디. 그는 자신의 마지막 혼을 불태운 이 곳, 성 가족 성당의 지하 납골당에 묻혀 있다. 


안토니오 가우디 코르네트. 레우스 출신. 향년 74세.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으로 대 예술가이며 경이로운 본 교회의 건축가.
1926년 6월 10일, 바르셀로나에서 생을 마감하다. 
이 위대한 인간의 부활을 기다리며 편히 잠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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