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장메이트 Sara Jan 19. 2023

내 이름 석 자로 충분하다는 것

책 리뷰인가 러브레터인가


누군가에게 아니 많은 사람에게 나는, 책값을 전혀 아끼지 않는 사람, 책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사람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나는 생각만큼 책을 잘 사는 사람은 아니다. 일단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고, 사다 나르는 만큼의 책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구매할 때는 소장할 가치가 있는지, 1 회독으로 끝나지 않고 재독을 해야만 하는 책인지 나에게 묻는다. 몇 번이고 아주 신중하게.



책의 제목, 커버, 목차, 프롤로그, 에필로그. 이것저것 따져본 뒤에야 비로소 구매 버튼을 누른다. 이런 과정을 거쳤음에도 읽다 보니 생각보다 별로였다든가, 1번만 읽어도 충분해서 굳이 소장할 필요는 없었다든가. 이런 일이 생기면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책을 구매하는데 더 신중해지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 석 자만으로도 신뢰감을 주는 작가가 있다. 책의 목차나 내용, 프롤로그, 에필로그. 이런 것 다 필요 없이 그 이름 석 자만으로도 충분한 사람. 나에게는 김신지 작가님이 그렇다. 작가님의 인스타에서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평소 같으면 다음에 살 책을 위해 아껴뒀을 적립금을 털어서 미공개 에세이가 수록된 노트도 구매했다. 그의 이름 석 자가 실린 책을 구매한다는 건 이런 것이다. 돈을 쓰고도 신나는 것. 도착한 책을 바로 펼쳐보지 않는 것. 빈 시간 틈틈이, 아무렇지 않게 읽어치우지 않는 것. 아끼고 아껴두었다가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찾아 설레는 마음으로 첫 장을 펼치는 것. 읽는 시간 내내 행복한 것.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호들갑 떨면서 이제는 몽당이 된 노란 색연필로 밑줄을 긋는 것. 그리고 핸드폰 카메라에 담은 그 문장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송하는 것. 이 모든 것을 얻는데 고작 만 오천 원 남짓의 돈이 필요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몇 번이라도 지불할 수 있다. 구매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알았다. 아직 책을 받아보지 못한 그 순간에도. 책을 받는 순간부터 난 이만큼 행복할 것이란 걸.



처음부터 그 이름 석 자가 충분했던 것은 아니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서 그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나서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작가님을 따라 기록을 시작했다. 지금은 잠시 미뤄두었지만 5년 다이어리도 한참 작성했고(생각난 김에 오늘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독서노트도 기록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하고 싶어서 노션을 배웠고, 햇수로 3년째 아주 잘 쓰고 있다. 책 한 권의 나비 날갯짓으로 나의 기록 세계는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다.



<평일도 인생이니까>는 또 어떤가. 어?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작가네? 밀리에서 우연히 발견했던가, 아니면 지인이 먼저 발견하고 읽던 걸 따라 했던가. 하이라이트 한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노션에 옮겨 적느라 한참을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좋은 문장들이,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옮겨도 옮겨도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 때문에.



이번에는 그 수고를 덜기 위해서 책을 구매했다. 옮기지 않을 작정이라서. 밑줄도 최소한으로 그어야지. 안 그랬다가는 온 페이지에 노란 물이 들 것만 같으니까. 그리고 읽으면서 치앙마이 항공권을 결제했다. 다가오는 남편의 장기 휴가. 아이 둘을 데리고 가는 해외여행이 두려워서 그냥 제주도나 가야지 먹었던 마음이 새로운 기대감으로 물든 것은 <여기 정말 좋다, 그런 말이 좋다>라는 제목의 글을 읽으면 서다.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쉬운 여행이, 집순이인 나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제주항공 어플만 수십 번을 들락거리며 다낭이나 치앙마이를 클릭했다 창 닫고 나오길 수십 번. 운명처럼 나타난 '치앙마이'라는 단어에 용기를 냈다. 그리고 그 후로 알게 된 건, 표지에 나오는 사진이 바로 치앙마이 카페라는 것. 아직도 먼 9월이지만, 이제 설레는 마음으로 그 시간을 기다린다.



내 이름 석 자만으로 충분하다는 것. 누군가에게 내 이름만으로도 믿음을 준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삶에 소소하지만 즐거운 영향을 끼친다는 것. 나도 언젠가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그 여정에서 나는 얼마만큼 왔으려나. 충분한 이름 석 자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