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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May 31. 2021

우리는 거절이 어렵다

글의궤도 3기

관객의취향에서는 매일매일 글쓰는 모임 '글의궤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의궤도 멤버들의 매일 쓴 글 중 한편을 골라 일주일에 한번씩 소개합니다. 아래의 글은 매일 쓴 글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거절이 어렵다. 거절의 의사를 보였을 때, 상대방의 반응을 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거절로 인해 상대방이 힘들어하면, 마치 내가 나쁜 일이라도 저지른 듯 한 마음에 힘이 들고, 상대가 나의 거절에 발톱을 세우면 그건 그것대로 나를 힘들게 한다. 이 같은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면, 우리는 각자의 인류애적 소양과는 관계없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를 만들게 된다.




그 시작은 '어떻게 하면 거절을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다. 거절의 다양한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스스로를 지키는데 꽤나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 내가 거절할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상대에게 시간과 공을 들여서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완곡하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충분한 설명이 없는 거절이 관계에 이로운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잘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런 상황이 가져오는 반작용이 나를 괴롭힐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거절의 이유에 대해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설명하는 것이 결론적으로 나에게 이롭다. 혹은, 내가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에는 어렵지만, 이런 방식을 고려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나름대로 상대의 고민을 함께 해결해보려는 성의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의 경우, 내 제안으로 인해 문제가 생겼을 경우, 상대가 그 문제의 해결책까지 나에게 기대할 수도 있다는 함정이 있다. 제안을 받아들인 상대, 즉 결정자가 책임소재를 제안자에게 전가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빈번하다. 보라는 달은 보지 못하고 가리키는 손가락만 뚫어져라 쳐다본 격이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머리를 맞댄다면, 이상적인 결과가 나오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서로 간의 관계는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목적은 문제의 해결이지, 또 다른 문제의 시발(점)이 아니니까.




사실, 거절도 연습이 필요하다.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고 옹알이를 배우듯이, 우리가 처음으로 낯선 나라의 말을 배우며 더듬더듬 의사를 표현하듯이, 거절하는 방법을 익히는데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학습된 거절의 능력은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다. 나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나의 안위를 위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아가 내 주변의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감당 못할(혹은 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경질을 내거나, 예민하게 구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면, 그 문제는 떠안지 않는 편이 옳다. 그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거절은 꼭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관계에 있어서 대립과 조율은 불가피하며, 그 과정에 있어 동의하고 거절하는 순간 또한 수 없이 반복된다. 다툼이 없었기 때문에 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다툼이 없었다는 건, 그만큼 관계의 진전을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내야 할 문제들을 덮어 놓은 채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으며, 대립이 없었기 때문에 조율할 필요도 없었던 것뿐이지, 그 관계에 원만하기 때문에 다툼이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툼이 아주 없는 관계보다는 필요에 의해 대립하고 함께 고민하며, 서로가 서로의 설 자리를 돌보아주는 관계가 이상적인 것 같다.




착한 사람이 손해 본다. 는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와 '이런 방법을 고려해보는 건 어떨까요?'를 말할 수 있는 용기를 키운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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