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폴레옹>
1.
“미약한 지배자의 통치를 받는 것만큼 가공할 재앙은 없다. 황제로서 나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다. 바로 프랑스의 번영이다.” - 나폴레옹
영화의 오프닝은 단두대로 향하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지막 발걸음과 광기와 혐오감으로 가득 찬 파리의 군중들의 모습을 슬로모션으로 잡아낸다. 하지만 왕비의 목을 자른다고 현실이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혁명과 혼돈의 시대, 불온한 프랑스에는 질서와 안정, 그 무엇보다 힘이 필요했다.
2.
영화 전반부의 하이라이트는 나폴레옹의 대관식 장면이다. 프랑스가 원했던 질서와 안정을 힘으로 부여한 새로운 황제는 샤를 마뉴의 왕관을 자기 머리에 스스로 올리고, 사랑했던 여인 조제핀에게 황후의 관을 직접 씌운다. 프레임 한 구석에는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자기 증여의 대관식 광경을 빠르게 스케치하고 있다.
대관식에 이어지는 아우스터리츠 전투를 리들리 스콧 감독은 마치 다비드의 신고전주의 화풍과 같이 스크린에 그려낸다. 고지대에 매복한 나폴레옹은 무심하게 포격 지시를 내리며 함정에 빠진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연합군을 살육한다. 분명 처참한 지옥도이지만, 그 광경은 지적이고 엄정한 고전미를 풍긴다. 유럽의 정복자이자 군사 천재로서 나폴레옹의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3.
하지만 힘으로 세워진 제국은 무한히 팽창하려는 외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러시아의 겨울은 불패의 신화를 중단시켰고, 재기를 도모했던 워털루 전투에서 참패하면서 나폴레옹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나폴레옹 입장에서 본다면 워털루 전투는 단지 지독히 따르지 않았던 운과 우연 때문에 패배한 전투다. 영국군과 프로이센 군이 합류할 시간을 벌어준 장대비, 프로이센 군 본대를 찾아 헤매다 정작 워털루 전장에는 도착하지도 못한 그루시 Grouchy 원수의 프랑스군, 나폴레옹의 명령 없이 영국 보병의 밀집대형을 향해 돌격했다가 궤멸당한 네 Ney 원수의 기병대. 그 덕분에 영국-프로이센 연합군은 불리한 전세를 뒤집고 간신히 승리했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은 나폴레옹의 불운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워털루의 전장을 무심하게 스케치해 나간다. 우연 때문이든 실책 때문이든 결과는 패배다. 변명의 여지없이.
4.
영화의 종반부, 영국 전열함에서 있었던 강화 조약 전 나폴레옹은 적국임에도 자신을 우러러보는 영국의 사관생도들에게 일장 연설을 한다. 자신의 군사적 재능과 지식을 전달받을 사람이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위대한 나폴레옹의 군사적 성취를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나폴레옹의 성취가 역사 속에서 일어난 매우 이례적인 확률적 현상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첫 전투인 툴롱 공방전에서 나폴레옹을 향한 포탄을 그가 타고 있던 말이 대신 맞고 즉사하는 씬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나폴레옹은 혼돈의 시대가 벌인 도박장에서 이름 없는 군인들의 희생을 판돈으로 무모한 베팅을 계속하다가 결국 운이 다하고 쫓겨난 도박꾼은 아니었을까.
리들리 스콧은 엔딩 크레딧을 통해 매우 노골적으로, 나폴레옹이 벌인 전투로 인해 300만 명이 넘는 프랑스 군인들이 사망했음을 보여준다(참고로, 리들리 스콧은 영국인이다). 이름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희생자들의 숫자는 마리 앙투와네트를 처형하는 오프닝의 처연한 슬로 모션과 묘한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혁명의 광기는 단두대를 멈추지 않았고, 기어코 흥분에 휩싸인 군중의 피까지 요구했다. 그 단두대의 칼날은 수많은 프랑스인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위대한 신화로 남게 된 황제 나폴레옹이었다.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포착한 다비드의 균형 잡히고 잘 짜인 걸작의 프레임 밖 역사는 그렇게 흐르는 군중의 피로 덧칠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