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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빛 Jan 02. 2024

시간과 우주: 궁극적 질문에 대한 해답

책 <시간의 기원: 스티븐 호킹이 남긴 마지막 이론>


1. 우주에 대한 질문


우리 우주는 왜 이런 모습으로 존재할까? 생명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 우주의 법칙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보다 근본적으로, 왜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있게 되었을까? 


2. 책에 대한 소개


<시간의 기원>은 스티븐 호킹의 제자이자, 20년 넘게 호킹과 함께 우주의 기원을 탐구한 벨기에 루뱅가톨릭대학교 이론물리학과 교수 토마스 헤르토흐가 호킹이 2018년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우주론을 정리한 책이다. 


3. 결론부터


결론부터 얘기하면, <종의 기원>을 패러디한 책의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호킹은 뉴턴과 다윈을 통합했다. 물리학이 찾아 헤매던 ‘모든 것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궁극적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에서 생명이 진화한 것처럼, 우주도 진화했다. 절대 불변의 진리로 보이는 물리법칙도, 시간도 변화하고 사라질 수 있다.   


4. 과학 대중서의 난점


1) 일반 독자(=수학적 도구를 사용할 줄 모르는 대부분의 호모 사피엔스들)를 대상으로 한 물리학 대중서가 첫 번째로 마주한 장벽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수학을 안 쓰고 어떻게 설명하는가’이다. 이는 마치, 어떻게 하면 더 부드러운 스크램블에그를 만들 수 있을까에 비유할 수 있다. 이 책으로 예로 들면, 상대성 이론의 핵심 개념인 광원뿔 light cone을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저자가 고심해서 찾아낸 스크램블 레시피가 되겠다. 


상대성 이론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과거와 미래가 단순히 “현재를 기점으로 서로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특수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이 드넓은 시공간에서 과거와 미래가 맞닿은 곳은 오직 당신(관측자)이 존재하는 위치뿐이다.(2장 어제 없는 오늘) 


2) 상대성 이론을 넘어가면 양자 역학이 기다리고 있다. 한층 더 어렵다. 아니 설명이 거의 불가능하다. 마치 처음 야구 배트를 잡아본 사람이 ‘오늘은 오타니의 스위퍼를 한 번 쳐볼까’ 하고 나서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도 과학대중서의 저자들은 독자들이 양자 역학에 일단 헛스윙이라도 할 엄두를 낼 수 있게 이러저러한 자연어들을 활용한 격려를 한다. 이 책을 통해서는 다음 문장을 통해 리처드 파인먼 경로합 이론 sum-over-histories과 고전 역학과 양자 역학의 관계에 대해 조금이나마 접근하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양심상 이해했다고는 못 하겠다). 


파인먼식 접근법을 수용하면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를 구별할 필요가 없다. 다만 거시적 물체에서는 미시적 요동이 서로 상쇄된 후 끝까지 살아남은 단 하나의 경로가 고전적인 경로와 일치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미시 세계로 가면 극적인 상쇄가 일어나지 않아서 많은 경로가 최종 결과에 기여하게 된다.(3장 우주기원론)


3) 스크램블, 스위퍼 같은 조악한 비유를 써봤다. 수학이라는 우주의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도구를 활용하지 못하는 인간이 불완전한 자신의 지각을 기반으로 한 자연어에 의존해서 우주를 이해하려 시도는 별 의미 없는 몸부림이긴 하다. 하지만 오로지 실용적인 행위만 했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진작에 멸종했을 것이다. 그저 호기심으로, 역사상 가장 영민했던 호모 사피엔스 중 하나인 호킹의 마지막 우주론을 더 훑어본다.   


5. 호킹의 마지막 우주론


1) 호킹은 (이제는 MCU, 웹툰 등등 때문에 대중문화의 상식이 된) 다중우주론과 관측자인 인간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비로소 우주도 존재한다는 인류 원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주를 관찰하는 생명체가 탄생한 원인을 ‘수없이 많은 우주 중에서 운 좋게 생명이 태어난 우주 하나’로 보거나, ‘인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우주의 모든 초기 조건이 딱 알맞게 세팅되었다’ 같은 설명은 도무지 과학적 태도라고 할 수 없다는 것.


2) 이에 호킹은 양자역학적 관점을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하고, 우주론과 관찰자를 하나로 묶어서 물리학을 넘어선 영역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우주에 대해 질문하는 관찰자 / 물리법칙이 탄생한 우주의 기원 / 파인먼의 경로합과 다윈이 조합된 진화론을 삼위일체 교리처럼 합쳐진 트립티크 triptych(세 개의 패널로 이루어진 교회 제단화) 모형이 나타난다. 새롭게 나타난 호킹의 양자우주에서는 과거(우주와 시간의 기원)는 관찰자의 관측 행위와 연결되어 있다. 우연하고 맹목적인 진화의 과정을 통해서 인간을 비롯한 지구의 생명체가 진화한 것처럼 우주도 일정한 진화의 계통수를 이루고 있다. “우주가 우리를 창조했듯이, 우리도 우주를 창조”하고 있다. 관찰과 진화를 통해서. 


3) 그리고 현재에서 과거를 추적하는 것처럼, 미래도 트립티크를 통해 예측할 수 있다. 이미 증명된 바와 같이 우리 우주는 탄생과 동시에 팽창하고 있다. 팽창하는 우주가 도달할 미래는 ‘시간 없는 시간’이다. 시간이 사라진 우주의 경계(끝)에는 얽힌 큐비트 (양자 정보의 단위)가 이루어진 홀로그램 우주가 있다. 


4) 우주의 끝에는 우주의 시작인 빅뱅 이후 온 우주의 물질과 거쳐간 생명들이 생성해 낸 모든 정보가 압축되어 영원히 넘실거리고 있을 것이다(이 문장은 책에서 차용한 것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결론이다. 곧, 진실과 거리가 있는 부정확한 문장이다).


6. 인류의 집은 지구


1) 책은 매우 인본주의적이자 겸손한 과학자의 태도로 마무리된다. 초기 우주는 방대한 복잡성의 스펙트럼에서 생명이 탄생 가능한 특별한 조합 하나가 구현된 세상이다. 저자는 이제 현대 과학은 “무엇인가?” 보다,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자연과 정보, 지능의 구성 요소와 그 진화 과정을 과학의 힘을 빌어 규명하였다. 이제 느린 다윈식 진화는 끝나고, 인간이 진화 그 자체를 제어하고 현실을 창조하는 시나리오가 열릴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표현으로 바꾸면, “호모 데우스”의 탄생이다. 


2) 그렇기 때문에 말년의 호킹은  지적 생명체의 진화 과정에서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2016년 11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호킹은 자신의 새로운 우주론을 발표하면서 인류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우주에서 우리의 유일한 안식처인 지구를 보호해야 한다는 데 격하게 동의하였다. 그리고 그의 작별 메시지에는 다가올 미래를 위해 국적과 인종을 떠나 분열되지 않은 ‘하나의 인류’로 거듭나야 한다는 당부가 담겨있다. 


7. 마치며



DALL-E에게 책의 주제와 함께 호킹의 우주론을 구현한 이미지를 요청했다. 우주의 탄생(과거), 인플레이션 우주(현재), 우주의 창발적 구조와 홀로그램(미래)까지. 장대한 우주 역사의 수많은 정보가 압축적으로 담겨 있는 새로운 정보 하나가 생성됐다. 


인공지능이 생성한 이미지를 보니 인간 스티븐 호킹의 정신은 어떤 이미지들로 가득했을지 궁금해진다. 육체의 고통과 유한한 인간 존재의 한계 속에서도 생의 마지막까지 끝없이 우주의 신비를 탐구한 그의 꿈이 담긴 유작과도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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