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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써 봅니다

좋아하는 것.

Like it

by 리지사비

‘나'로 살아오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물음을 깊게 품어본 적이 있었던가.


다른 사람들의 취미와 취향을 관찰하면서

왜 저런 멋진 것을 소유하지 못했을까 라는

비교로만 나를 관철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내가 나를 무색무취로 가둬둔 것이 아닌지,

되려 관찰해 보려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관하여>


전후 관계, 상황, 이유도, 설명도 필요 없고

그냥 그 느낌 그대로, 그 생김새 그대로

설렘과 기분 좋음으로 다가오는 것들에 대해서

나는 흔히 '좋아한다'라고 말해왔었다.



#1

무언가를 처음 조우했을 때

요동치는 궁금증을 파헤치는 것을 좋아하고,

거기서 기반되는 설렘이나

떨림의 감정을 매우 좋아한다.

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도 적용이 된다.


집에서 가장 애끼는 애착 품 하나를 고르라 하면

단연코 하만카돈 블루투스 스피커를 고를 것이다

내 공간을 저음 베이스로 꽉 채워주는 고마운 존재.


바야흐로 몇 년 전, 이별로 가슴 아파하고 있을 때

우연히 톰미쉬의 movie라는 노래를 만났고,

기타 리프 소리로 가득 찬 전주가 방안을 꽉 채우자마자 노래가 나를 감싸 안아 준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었다.


그 이후 매번 시간이 비거나 공허할 때

새로운 노래를 찾아내기 위해

스피커 스위치를 켜고 셈 없는 시간을 보낸다.


보통은 노래 전주의 첫 느낌이나

첫 가사에서 '좋다'라는 느낌이 판명되는데

하루 종일 그 느낌을 받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여행 중 잘못 들어선 길에서 만난 예쁜 골목길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 만나는 음악들이 주는 묘미는 굉장하다.


ps. 필자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병에 걸렸기 때문에 살포시 추천한다.


- tom misch ‘movie’

: 재즈 베이스의 죽이는 기타 리프 소리를 듣고 싶다면,

저녁 조명 아래서 듣는 것을 추천드린다.


- ego apartment ‘Next 2 U’

: 리드미컬한 전주에 몰입하다 보면

제목 그 자체인 가사에 빠져 누군가가 계속 생각날 수 있음


- easy life ‘peanut butter’

: 좋아하는 사람에게 “너 보러 왔어!”같은 직설법이 아닌 “그냥.. 피넛버터 빌리러 온 거야. “라고 말을 건네는 귀여운 모먼트가 그려짐


모두 ‘첫 음’에서 반했던 노래들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 아껴 듣는 노래들


이렇듯

기존에 듣지 못했던 음을 형용해 내거나

잔잔한 울림을 주는 노래를 만나는 것은

아직도 좋다.


아직도 좋아한다.



# 2

방 안 곳곳을 둘러보니

책상, 선반, 벽, 창문 등...

빈 공간, 빈 면이 거의 없다.


책상 위에는

크로아티아의 건물 그대로를 형상화한

주황색 지붕의 미니 하우스 모형과

유후인의 감성을 담은 귀여운 고슴도치, 토끼가

오사카 출신 호빵맨과

홍대 소품샵에서 만난 다른 옷차림의 호빵맨이

두바이 여행 중 버스 출발하기 전 급하게 샀던

금장으로 칠해진 낙타 한 쌍이

포르투에서 건너온 전차 모형과

포르투 야경을 그대로 담아놓은 입체 카드가

친구들이 건네준 파리 에펠탑과

영국 국기가 그려진 전화 부스 티 박스,

그리고 지난 사랑이 담긴 인형들이


그 공간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창문에는

베트남 길거리에서 뭐에 홀린 듯 갑자기

눈에 들어온 두 쌍의 얼룩말 유화가

스페인 골목길의 형상을 입체적으로 담아놓은 액자가

발리라고 새겨진 자동차 번호판이 세워져 있다.


이러한 나를 보고

친구들은 '예쓸러'라고 부른다.

(예쁜 쓰레기를 수집하는 사람)



왜 이렇게 소품을 좋아하는 걸까?


먼지가 많이 쌓인 만큼

각각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있다.


그때의 그 시간,

그 공간으로 나를 잠시나마 데려가주고

그때 만난 사람들도 잠시나마 추억 속에서

만날 수 있기에 집안 곳곳에 놓여 있는 소품들은

내게 나만의 보물 상자다.


그때 그 순간으로

잠시나마 시간 여행을 하게 한다.


그렇기에

예쓸러라 불리는 것이

아직도 좋다.


아직도 좋아한다.




#

생각해 보니 특별하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늘 내방을 채우고 있었다.


앞으로 또 마주칠 좋아하게 될 것들

그리고 그것으로 가득 찰 내 공간을 기대하자니

오늘도 좋아함을 멈출 수 없다.


Lik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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