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와의 이별
삶이 무르익을수록 익숙해져야겠지만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운이 좋게도 10대부터, 20대 30대까지
25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걸어온 친구들이 있다.
그때 당시에는 친구들 모임마다
각각의 필명을 정하곤 했는데 (LIKE 칠공주처럼)
우리 모임의 이름은 밝히기 부끄럽지만
‘구닥페이스'였다.
초, 중학교 때는 거친 워딩이 들어간
버디버디 아이디가 많이 상용되던 시기라..
그 트렌드에 탑승하여 '구린 얼굴 닥치고 공부해'
라는 굳은 학구열이 담긴 필명이었다.
친구들의 외모는 출중하지만.. ㅎㅎㅎ
원래 친구는 서로를 놀리기 마련이기 때문에
우리의 필명은 어느새 구닥페이스로 굳혀졌다..^^
구닥 페이스는 나 포함
세명의 친구로 구성되어 있는데
초등학교 시절 옆동에 살았던 한 친구는
성인이 되어 독립하고 우연히
2년 정도 같은 건물의 위아래층에 살았던 적이 있다.
코로나로 인해 만남이 제한되었을 때
둘이서 사람 없는 한강을 걸었던 적도 있고,
코로나에 걸렸을 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와 초콜릿만 골라서
문 앞에 살포시 두고 가주기도 했으며,
우울한 날에는 미러볼을 틀고
1시간가량 댄스파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 친구는 직장으로 인해
부산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었는데
덕분에 우리의 여름휴가는 매번 부산행이었다.
갈 때마다 흰 여울마을을 가자고
나름의 여행 계획을 세웠지만
친구 집에서 영화 보고 수다 떨고 배달음식 먹고
댄스파티 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우리였기에
항상 부산 투어 없는 부산 여행을 즐겨했었다.
이렇듯
자주 만나기도 하고, 때론 가끔 보기도 했지만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부터 집안 대소사까지
많은 것을 가식 없이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었다.
아마 편견 없이 나를 봐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더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서론이 매우 길었지만,
그중 부산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뉴런세포를 짜내어 그 친구와의
첫 만남을 돌이켜보면
중학생이면서 여자인데도 키가 170 후반이라
서로 눈높이가 맞지 않아서인지,
큰 관심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서로 친한 다른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 친구가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언제가 우리의 우정 시작이었는지
그 발단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서로에게 스며들었던 것 같다.
그 친구의 나른한 말투와 나른한 발걸음이
성격 급한 나에게는 급한 마음을
한번 더 다잡게 해주는 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서로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 알아채고,
오히려 그 부분을 놀리기도 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10대 때보다 20대,
그리고 30대에 더 친해지게 되었다.
-
이러한 나의 친한 친구가
5월 4일 미국으로 떠났다.
유학을 결심한 지 반개월이 되지 않았는데
그 모든 것을 해내더니
결국
5월 4일 미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유학 후 미국에서 취업을 하면
계속 살아갈 수도 있다고 했다.
안정적인 상황을 모두 접고,
큰 도전을 하는 친구에게
응원의 마음으로 송별회를 했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오랜 친구와의 이별이.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이 있듯이
같은 시간, 공간이 아니라면 서서히 멀어졌던 경험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함께 하다가
꿈을 향해 멀리 떠난 친구에게
어떤 마음이 들어야 할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어야
계속 끈끈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다.
문득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아침에 샤워를 하다가
수전에 나른하게 걸려있는 샤워타월이 보였다.
미국 떠나기 전 황금휴일에
우리 집에서 구닥페이스 친구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냈는데,
그 친구가 샤워 후 샤워타월을 3등분으로
곱게 접어서 나른하게 수전 위에 걸어두었던 것 같다.
기존에는 샤워타월을 아무 데나 늘어뜨려놨는데
가지런히 수전에 걸려있는
그 친구의 생활습관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남아있는 친구의 흔적인 이 타월의 형태를
계속 유지하면서 추억하려고 한다.
나른한 친구의 나른한 샤워타월, ㅎㅎㅎㅎ
소소한 행동, 습관들로 추억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잘 살고 있다 보면
또 어느 순간 빛나는 존재가 되어
만나는 순간이 있겠지.
요 근래 삶의 터전을 바꾸면서 헤어지게 되는
오랜 친구들이 생기고 있다.
기쁘게 응원하는 마음이 우선이 여야 하지만
아직은 친구를 보내는 아쉬운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삶이 무르익어갈수록
익숙해져야 하지만,
오랜 친구와의 이별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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