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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배려

글로 쓰는 가족 앨범 <첫 번째 페이지>

by 리지사비

#프롤로그

어렸을 적, TV장 아래칸엔

늘 가족 앨범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그 앨범엔 내가 몰랐던 가족들의 과거 이야기와

흐릿하게나마 기억나는 옛 추억의 조각들이 켜켜이 담겨 있었다.


매번 가족들이 모일 때면

가족 앨범을 하나씩 꺼내서

그때를 회상하곤 했다.


이미 수십 번 들었던 이야기라도

사진 한 장을 매개로 새 조각이 덧붙여지고,

사진을 단서 삼아 기억의 틈새가 메워지곤 했다.


해져버린 가족 앨범 한 권 한 권이

아직도 진한 잔상으로 남아 있다는 건

그만큼 그 시간이 내겐

행복한 기억의 줄기여서가 아닐까.


하지만 순리에 따라가 보니

셔터 한 번에 온 마음을 담던 그 시대는

어느새 작은 손 안에서 수백 장의 사진을 넘겨보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우리의 가족 앨범은 먼지 속으로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부터나마 다시

가족 앨범을 꺼내보려 한다.


기쁨이 넘쳐날 때나

어둠이 짙어질 때나

언제든 꺼내서 볼 수 있도록


소중한 한 장면 한 장면을 꺼내어서

글로서. 써본다.


#글로 쓰는 #가족앨범



첫 장
#모르는 배려


이번 추석, 가족과 함께 다낭으로 여행을 갔다.

해외여행은 매번 친구들과 가거나

혼자서 자유롭게 가는 것을 더 즐겨하였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가는 해외여행은 설렘보다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의외였다.
불편함도, 다툼도 없이 그저 평화로웠다.


‘왜 이리 좋을 수 잇었을까’ 돌아보니,

그 답은 ‘몰랐던 배려’에 있었다.


가족이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던,

그리고

가족이기 때문에 드러내지 않았던,

#몰랐던 배려가 결국은 좋은 시간들을 겹겹이 만들어 준 것이라 생각했다.



관련한 짧은 에피소드를

기억의 조각으로 더해본다.



#딸의 기억


숙소 앞 긴 해안선을 따라

아침 러닝을 나섰다.

부모님도 함께 나오셨다.

나는 뛰고, 부모님은 천천히 걸으셨다.


3km 정도 뛰고 턴을 해서

부모님 계신 곳으로 다시 돌아왔고

리조트에 있는 그네를 타면서 잠깐 숨을 돌렸다.

한창 수다를 떨다가 엄마가 물으셨다.

"엇 너 모자 위에 걸어둔 선글라스 어디 있어?"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러닝 할 때 모자 위에 선글라스를 얹혀두고 뛰었는데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모자 위를 탈출해 버린 것이었다.


우리는 선글라스를 찾기 위해

다같이 모래사장으로 향했다.

.

.

.


한낮의 땡볕에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부드러운 모래에 발이 푹푹 잠기다 보니

금세 숨이 올라오고 다리는 무거워졌다.


그때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아빠가 저 먼치 앞서 가고 계셨다.


‘우리 아빠 보폭이 저렇게 넓었나?’

숨이 가쁘면서도 이상하게 그 뒷모습이 든든했다.


결국 선글라스는 찾지 못했지만

아빠의 성큼성큼 한

큰 걸음은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아빠의 기억


아침 운동을 마치고 조식을 먹으려고 들어가려는 찰나

딸내미가 운동하면서 선글라스를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의 선글라스이기도 하고,

딸내미가 무척 아쉬워하는 것 같아 바로 찾아 나섰다.

아마 모래사장에서 뛰면서 잃어버린 것 같았다.


왔던 길을 따라 샅샅이 보는데도

선글라스는 영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저 먼치 아내와 딸이 함께 웃으며 걸어오는 모습을 보니 괜히 더 빨리 찾아내고 싶었다.
“얼른 찾아내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지만 모래사장은 생각보다 깊고, 발은 자꾸 빠졌다.

무릎이 시큰거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딸이 “오! 찾았어요?!!!” 하고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

.

.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섰지만,

그날 햇살 아래 걷던 모래의 감촉은

이상하리만치 선명했다.



# 몰랐던 배려


작은 해프닝이 있고 난 다음날 아침

“아빠, 오늘도 같이 아침 운동 갈까요?”


잠시 웃더니 대답하셨다.
“아 오늘은 무릎이 조금 아파서 조금 쉴게.”



-

그제야 알아챘다.


어제 아빠의 큰 보폭을 보고

아빠는 다리가 하나도 안 아프신가,

대단하다 싶었는데


아빠의 넓디넓은 보폭은

괜찮아서가 아니라

아픈 걸 참고 걷던 걸음이었다는 걸.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속상해서 아빠에게 괜히 투덜거렸다.


"아.. 아빠 어제 모래사장에서 무리하셨구나..!

무릎도 안 좋은데 다음부터는 절대 무리하지 말아요!

그리고 아프면 꼭 말해줘요"



이날의 아빠의 배려는,

내 마음속 한 장의 사진으로 저장이 되어버렸다.


<그 와중에 아빠 엄마가 모래사장에 새긴 스케치>




가족의 연대는

아마도 이렇게 눈에 잘 띄지 않는

‘몰랐던 배려’들이

겹겹이 쌓여 단단해지는 게 아닐까.


그날의 햇살처럼
따뜻한 배려 한 장면을 마음속 앨범에 붙인다.


#몰랐던배려

#가족앨범

#첫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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