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쓰는 가족앨범 <네번째 페이지>
<엄마의 우쿨렐레, 그 넉넉한 쉼표>
오랜만에 본가 현관문을 열면, 나무 냄새 섞인 공기보다 먼저 나를 반기는 것이 있다.
집안 곳곳, 발길 닿는 곳마다 놓여 있는 우쿨렐레.
아침에 눈을 뜨면 어디선가 우쿨렐레 소리가 들려온다
또한 특별한 날에 가면 그 공간을 우쿨렐레 음악이 채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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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우쿨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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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연주는 솔직하게 말하면 정석과는 거리가 있다
악보에 적힌 박자와 리듬을 넘나드는 엄마만의 그루브
하지만 그 연주 속에는 그 어떤 명연주자도 흉내 낼 수 없는 '즐거움'이 담겨 있다.
처음 우쿠렐레를 잡으셨을 땐
그저 스쳐 지나가는 취미이실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작은 악기와 동항하고 계신다.
다시 생각해 봤다
엄마는 언제 우쿨렐레를 연주하셨는지
'언제나'
였다.
가족의 아침울 깨우는 모닝콜로,
누군가의 생일날 축하공연으로,
때론 지친 하루를 달래는 응원가로,
디저트타임 소화 기념곡으로,
때론 즉흥 연주로,
엄마의 손 끝에서 피어나는 소리는
우리 가족의 일상의 틈새로 스며들어,
뾰족했던 마음을 둥그스름하게 다듬어 준다
엄마는 우쿨렐레의 음표를 통해
우리 가족에게 '쉼'을 선물하고 싶으셨던 거 아닐까.
그런 의미로 엄마의 음표는
� 페르마타 와 같다
악보의 음을 충분히 늘리고
쉼을 주며 연주하라는 기호, 페르마타
가만히 들여다보며 웃는 엄마의 눈매와 꼭 닮아있는 그 음표처럼,
우리 삶의 템포를 잠시 늦추고
쉬어갈 여유를 만들어주시고 계셨다.
<오빠의 첼로, 사랑을 잇는>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다가 흠칫 놀랄 때가 있다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오빠의 바디 프로필 사진이 예고도 없이 튀어나올 때 이다
오동통 라인의 동행자였던 오빠는 어느 순간 운동에 빠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주기적으로 바디 프로필을 올린다
처음에는 가족들한테 미리 알렸지만 너무 무리한다는 잔소리를 들은 뒤로는 예고도 없이 사진이 올라온다
마치 어두운 길을 운전하다 갑자기 고라니를 만나는 것처럼 피드에서 친오빠의 근육질 사진을 마주치는 일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
그 사진들 속에서 유독 내 시선을 붙잡는 피사체가 있다 바로 오빠의 품에 안긴 커다란 '첼로'이다.
근육질의 몸과 우아한 첼로. 묘한 이질감이 들 법도 하지만, 그 모습에서 오빠의 지난 시간들을 읽는다.
첫째라는 무게감,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묵묵하게 책상 앞을 지켜야 했던 시절
동생인 내가 자유롭게 진로 고민을 할 때,
오빠는 늘 책임감이라는 단어 뒤에 자신의 꿈을 숨겨야 했을 것이다.
그랬던 오빠가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걷게 되고, 그때 운명처럼 만난 것이 첼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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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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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성가대에 들어가고 싶다던 말은 첼로를 만난 뒤 현실이 되었고 미사곡을 연주하는 오빠를 보게 됐다. 생각보다 근사했다.
그리고 그 묵직한 현의 울림은 사랑까지 이어주었다.
연애 시절, 이른 아침 여자친구(지금의 새언니)를 위해 회사 회의실 어딘가에서 모닝 첼로 연주를 감행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나라면 부끄러움에 도망쳤을지도 모르지만, 언니에겐 그 진심이 깊은 울림으로 닿았던 것 같다.
자신의 꿈을 찾고, 사랑을 쟁취한 오빠. 오빠의 음표는 두 개의 8분음표(♫)와 같다.
혼자일 때보다 둘이 되어 연결되었을 때 더 경쾌하고 힘찬 리듬을 만들어내는, 짧지만 강렬한 사랑의 박자처럼.
<아빠의 전축, 모든 음악의 바탕>
어린 시절,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커다란 전축을 기억한다. 쉴 새 없이 음악이 흘러나오던 그 기계가 어린 마음에는 그저 시끄러운 소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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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전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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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늘 "나는 다를 줄 아는 악기가 하나도 없어서 아쉬워."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이 각자의 악기를 품고 자신만의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건 그 덕분이었다.
아빠의 전축에서 흘러나온 수많은 음악들이 우리 귀를 열어주었고,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일궈주었다.
화려한 기교는 없어도 묵묵히 음악의 뼈대를 잡아주는
4분음표(♩)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가장 기본적이고 든든한 박자였다.
----------♩---------------아빠의 음표
----♫---------------------오빠의 음표
---------------♪-----------나의 음표
------------------------�--엄마의 음표
서로 다른 높낮이와 길이를 가진 음표들이 모여 하나의 화음을 이룬다.든든한 박자 위에, 리듬을 타고, 쉼표가 되어 머물게 된다.
그렇게 각자의 음표로 서로를 안아주는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고 있다.
#가족축가
#행사뛰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