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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Feb 22. 2016

북위 38°선의 전쟁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격돌  

그리스를 파국으로 몰고가

적의 전쟁 의지를 꺾어놓되

명예로운 탈출 보장해줘야


 역사는 광대한 피륙이다. 무수히 많은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며 거대한 서사시를 엮어낸다. 신(神)은 사랑, 용기, 이성, 존경, 신뢰 등으로 씨실을 잣는 반면 증오, 감정, 비난, 의심, 배신 등으로 날실을 만든다. 씨실과 날실 가운데 어느 게 도드라지느냐에 따라 희극 또는 비극이 결정된다. 


희극과 비극을 가르는 경계는 희미하다. ‘아차’하는 사이에 희극이 비극으로 바뀔 수 있다.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급전직하의 드라마를 연출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전쟁이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발칸반도에서북위 38°선을 사이에두고 일어난 펠로폰네소스 전쟁도 그랬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너무나 달랐다. 부딪칠 수 밖에 없는 조합이었다. 아테네는 민주국가였다. 스파르타는 군주정과 과두정을 혼합한 정체(政體)를 유지했다. 아테네는 해상 교역을 주력 산업으로 삼았다. 스파르타는 농노를 이용한 농업에 치중했다. 교역에 부정적이었고, 국민들이 금과 은을 소유하는 것조차 금지했다. 그래서 철(鐵)을 화폐로이용할 정도였다.   


아테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새로운 헤게모니국가로 떠올랐다. 그리스는 아테네가 주도하는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가 이끄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으로 양분됐다.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자신의 헤게모니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헤게모니 이행기의 권력투쟁이 파국으로 이어졌다. 투키디데스는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성장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고, 아테네를 파괴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힘을 다하기로 결정했다”고 전쟁 배경을 설명했다. 


전쟁은 정말 우습게 시작됐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직접적인 격돌이 아니라 주변부의 돌출 행동이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속한 테베는 아테네의 동맹국 플라타이아를 손에 넣기 위해 야습을 감행했다. 300명의 테베 장병은 플라타이아 지도부만 교체하면 ‘게임은 끝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테베의 착각일 뿐이었다. 


날이 새자마자 테베 병사들은 플라타이아 민중의 역습에 지리멸렬하고 만다. 테베 주력군이 도착했지만 상황은 끝난 뒤였다. 플라타이아는살아남은 180명의 테베 병사를 볼모로 내세워 테베의 철군을 요구했다. 테베는 요구를 수용했다. 


플라타이아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포로를 모두 처형했다. 야습은 명예로운 전투 방식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포로를 죽이는것도 명예로운 짓은 아니었다. 이때부터 포로는 물론 사자(使者)까지 죽이는 일이 수시로 벌어졌다. 그리스는 야만의 늪으로 추락했다. 이성과 상식이 물러난 자리를 충동과 분노가 대신했다. 파국적 경로를 밟는 게 당연했다. 


그리스는 그 후 무려 27년간 전화(戰火)에 휘말렸다. 전쟁을 끝낼 기회가 몇 차례 있었지만 감정이 합리적 판단을 대체했다. 펠로폰네소스동맹은 결국 페르시아를 끌어들여 승리를 거뒀다. 


그리스는 만신창이로 전락했다. 곡창지대는 황무지로 변모했고, 에게해의 무역망도 상당 부분 붕괴됐다. 그리스 전역이 가난으로 신음했다. 많은 이들이 외국의 용병으로 참전해 생계를 꾸려갔다. 그리스는 곧 마케도니아에 의해 정복됐다. 도널드 케이건 전 예일대 교수는 “진보, 번영, 자신감, 희망의 시대는 끝나고, 더 어두운 시대가 시작됐다”라고 평가했다. 


2,500년이 흐른 지금, 한반도 북위 38°도 인근 지역은 또 다시 전운(戰雲)에 휩싸였다.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와 함께 한미 양국의 ‘키리졸브’ 훈련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을겨냥한 ‘핵 타격’까지 운운한다. 


거센 목소리로 적의를 표시하는 것은 ‘무서워 떨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북한은 핵 개발을 통해 비대칭 전력에서 우위를 확보했다. 하지만 미국과 일전을 불사할 정도로 군사력이 강화된 것은 아니다. 북한은 전면적인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전면전은 불가능하다. 


전쟁은 억지해야 한다.적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싸울 생각을 버리게 하는 게 효과적이다. 하지만 세련된 방법이 필요하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되 상대방에게 명예로운 탈출을 보장해야 한다. 서툰 접근은 파국을 몰고 올 수 있다. 


한반도 평화는 남북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역학관계까지고려해야 하는 2차 방정식이다. 중국은 북한이라는 완충지대없이 미국과 직접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여긴다. 따라서 우리가 균형을 잘 잡아야한다. 광해군의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이다.  


참고문헌

1)     Kahan, Alan. 2010. MIND vs. MONEY: The Warbetween Intellectuals and Capitalism. New Brunswick: TransactionPublishers.  

2)     이수훈. 2013. 헤게모니 퇴조와 동북아 지역정치. 한국국제정치학회 기획학술회의. 

3)     도널드 케이건 지음. 허승일, 박재욱 옮김. 2006.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까치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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