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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ㅇ May 04. 2022

다정의 성분과 출처를 의심하는 일

사치 코울 <어차피 우린 죽고 이딴 거 다 의미 없겠지만>  


가장 마음이 쓰였던 것은 그가 언젠가 트위터에서 사이버 불링을 당했다는 것이다. 곧장 그의 트위터 계정부터 찾아보았다. 이름에 묵음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았는데도 스펠링을 잘못 입력해서 단 번에 계정을 찾는 데에는 실패했다. ‘Scaachi’에서 ‘c’가 묵음이라서 ‘스카치’가 아니라 ‘사치’로 읽어야 하는 그의 가장 최신 트윗은 아버지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그대로 캡쳐해서 올린 것이었다. 애정전선과 전통전선의 얽히고설킨 문제로 몇 개월 동안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는 책 속의 그 아버지 말이다. 어쩌면 당신은 그런 시시콜콜한 다툼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진짜 궁금한 건, 동시대를 살고 있는 밀레니얼 페미니스트 작가가 지향하고 있는 삶의 요건이 내가 힘을 실어줄 수 있을만큼 설득력을 가졌는지가 아니겠느냐고.

 

인도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자라 현재 뉴욕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글을 읽을 때에, 뒤에 있는 두 가지 지명의 순서는 얼마든지 바뀌어도 무방하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그의 출신만큼은 잊어버릴 수가 없다. 사치는 말한다. “당신이 얼마나 인도의 ‘색감'을 사랑하는지 어필하지 마시길.” 한편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직관적인 색감 묘사에 기대는 아이러니함을 보인다. 펑퍼짐하면서도 적당히 갈색인 코의 생김새에 대해 듣고 있자면 그는 확실히 인도 사람이다. 초콜릿색과 붉은색이 완벽하게 섞여 든 머리카락에 자부심을 느끼는 그도 분명히 인도 사람이다. 인도식 결혼식을 내빈석에서 직관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썅-서로울 나의 결혼식' 챕터에 다다르면, 결혼식의 주인공인 사촌을 향해 사치는 조용히 속삭인다. “어차피 우린 죽고 이딴 거 다 의미 없겠지만.”

 

일주일 내내 치러질 정도로 러닝타임이 길다는 그 나라의 전통 혼인을 나는 이제껏 한국에서 하객으로 곁들여졌던 한 시간 반짜리 예식들과 겨우 비교해 볼 뿐이다. 직계 가족만 앉혀도 충분하지 않은 공간에 온 마을 사람이 모여들고 신부는 온갖가지의 꾸밈 노동을 당하다가 옷핀에 찔린 정수리가 따가워서 눈물을 흘린다. 사치는 결혼에 대한 태도를 정하지 못했지만 이런 식의 결혼이라면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런 속박은 벗어버리라며 사촌의 손을 붙잡고 식장을 뛰어나오는 할리우드적 서사는 없다. 신부가 몸에 이고 지고 있던 장신구가 모두 헐거워지면서 공중으로 떠올라 분해 되더니 인생의 진리를 논하는 가사를 그곳에 있던 모두가 입맞춰 부르는 무대로 화면이 전환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삶은 발리우드물 또한 아니기 때문이다. 사치는 그저 눈 앞의 결혼식을 보며 옅은 하늘색의 아름다운 눈과 빛나도록 하얀 피부를 가진 조카를 떠올린다. 그는 조카라면 혈통과 출신이 “인생의 제목이 아닌 각주”인 세상에 살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다. 물론 멋대로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각주라는 건 대개 한두 줄로 끝나지만 필요에 따라 엄청나게 길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이 마치 사치의 연인인 햄군처럼 “다정하고 소중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다정의 성분과 출처를 의심한다. 그렇게 다정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의 일상부터 크고 작은 경조사까지 어느 것 하나 사소하게 넘겨버릴 수 없을 때면 사치 코울의 이야기를 읽는다. 비로소, 우리가 의심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잘못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다시 사치 코울의 트위터 계정에 들러보니, 그는 “팬데믹 중 30대가 되어버린 것에 관한 리뷰(나쁘다)”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자신의 아티클에 대한 독자들의 감상평을 열렬히 리트윗하고 있다.* 자신의 일상을 글로 엮고 그 결과물을 성실하게 바이럴 시키는 존재. 이는 그가 “내가 놓친 게 무엇인지, 내가 뭘 말아먹었는지, 다음번에 내가 뭘 더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또 한 명의 지식노동자인 탓이다. 그의 트위터 최초 가입시기는 나와 아주 비슷한 데 누적 트윗 수가 내 것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어차피 이딴 비교 다 의미 없겠지만.

 

*A Review Of Turning 30 During The Pandemic (It's Bad) (Buzzfeed, 2021.11.24)


사치 코울 에세이 <어차피 우린 죽고 이딴 거 다 의미 없겠지만>(2021, 문학과 지성사, 작은 미미/박원희 옮김)



이 글은 2021년 12월 문학과 지성사의 뉴스레터 <문지레터>​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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