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病), 내게 너무 낯선 그 이름

1화 발견

by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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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한자로는 病(병병). 영어로는 disease(물론 다른 표현들이 수없이 많다). 내 몸에게는 익숙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한없이 낯선 단어이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기억한다(잊으려야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기에). 그것도 제법 선명한 화질로. 1년 전 그날이었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며 머리를 빗고 있었다. 이런 맙소사! 머리 한 쪽 부분이 심하게 푹 죽어있지 않은가! 푹 죽은 그 부분을 조심스레 손으로 어루만져 본다. 무슨 고대의 보물을 만지듯. 내 기나긴 소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 손이 닿은 그 부분은-정수리 바로 옆쪽 그 부분은-누군가 도끼로 탕! 찍은 듯 함몰되어있었다. 비극이었다. 그 어떤 것들보다도 더…….


발견은 한순간이었으나 사실은 영원하다. 나는 그 사실의 길을 걷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일반인이 아니라 환자라는 사실 말이다. 나는 내 머리가 함몰된 것을 발견하자 애써 태연한 척을 해댔다.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이 사실을 계속 숨겼었다. 왜였을까. 막연히 두려워서 그랬을까? 두려워서 그랬다면 대체 무엇이 두려웠을까? 내가 환자라는 사실이 두려웠을까? 아니면 가족들과 친구들 혹은 내 일상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것이 두려웠을까? 지금 천천히 생각해보면.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전부 틀린 것 같다. 나는 전혀 두려워하고 있지 않았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환자라는 사실. 그리고 어쩌면 이 병을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된다는 사실. 그 사실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나의 이런 수줍음은 오래가지 못하고 들통나고 말았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던 나의 뒷모습을-정확히는 풀이 죽은 그 머리 부분을 보시고는 내 머리를 어루만지셨다. 그에 대한 결과는 뻔했다. 아빠가 울었다. 엄마가 울었다. 형이 울었다. 친구들이 울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더니 그 말은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 모두가 나 때문에 밤을 하얗게 칠했다. 아아! 그냥 솔직하게 말해버릴걸. 그냥 아무렇지 않게 인정해버릴걸. 후회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때였다.


끔찍하다, 괴롭다, 부끄럽다, 창피하다……. 이 과거 앞에 무슨 표현이 어울릴까. 아무 다 어울리지 않을 듯하다. 아니, 정확히는 이 과거 앞에 쓸 표현은 없다. 그저 그 과거는 과거 일 뿐이다. 시간은 내 생각보다 빨리 흘러갔다. 산의 형상이 닳고 물의 흐름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나는 아프다. 나는 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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