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국소형 피부경화증 환자이다
사람들은 모두 비밀 하나씩은 지니고 있다고합니다.
그 비밀이 무슨 비밀이든지 말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비밀을 '홀로 소유하려 할 뿐', '누군가에게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더더욱 이런 일들이 빈번해지고 있는데요,
속 시원히 "나 ~때문에 ~해요"라 말하지 못하고 그저 돈 버는 일에만 급급한 현대인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허나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국가이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도 '사람'보다 '돈'이 우선시되니까요.
누군가에게 고민을 말하거나,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줄 시간에 돈을 벌어야하니까요.
돈을 벌어 먹고 살아야하니까요.
그러나 이런 세상을 한탄하고 비난하는 저는 고민이 없느냐?
이것 또한 아닙니다. 이렇게 고민을 말할 수도-털어놓을 수도 없는 이 세상을 한탄하고 비난하는 저 또한 비밀이 있습니다.
그렀습니다, 저도 비밀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내 자신에게조차도 인정하기 싫었던 비밀-
오늘부터 그 비밀을 대놓고 까발리고 조금 마음 편안하게 살려고합니다.
피부경화증.
처음 들어보신 분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간단히 말그대로 뜻풀이를 하자면, "피부가 딱딱히 굳는 병"입니다.
더 자세히는 "진피 내에 아교질의 과다한 축적으로 인해 피부의 일부분 혹은 전신의 피부가 딱딱해지고 두꺼워져 비정상적인 피부로 변해버리는 병"입니다.
이 피부경화증을 분류하자면,
1. 특정한 피부 일부분에만 피부경화증이 발생하는 국소 피부경화증.
2. 피부가 선상으로 길게 딱딱해지는 경우로 다리, 팔, 이마, 앞가슴의 순으로 잘 발생하며 특히 이마에 수직 선상으로 함몰되며 발생한 피부경화증을 '칼자국모양'이라고 칭하는 선국소형 피부경화증.
3. 온 몸(즉 내장기관까지)이 굳어버리는 전신경화증.
피부경화증은 현재 의료기술로는 치료하기 매우 힘든 희귀난치성질환이지만
3번-전신경화증을 제외한 국소 피부경화증은 생활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단지 외관상 문제가 일어날 뿐.).
저는 2번에 해당하는 선국소형 피부경화증을 앓고 있는데요, 특히 칼자국모양-머리의 일부분이 함몰되며 그 함몰된 자리에는 머리카락이 자라지않고 탈모 현상이 벌어지는 증상을 앓고 있습니다(현재 이런 증상이 일어나는 곳은 총 2군데. 정수리와 그 정수리의 바로 옆부분.).
남들은 다 둥근 두상을 가지고 있지만
저만 울퉁불퉁한 두상을 가지고 있다보니 가끔 놀림도 받고 가엾음도 받습니다.
물론, 제가 태어날 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태어날 때는 남들과 똑같이 둥근 두상과 건강한 몸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2년전 겨울부터 이런 증상이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요(이때가 한창 제가 살이 쪘을 때입니다.), 그 때부터 대학병원(현재 한양대학교병원을 다니고 있습니다.)을 꾸준히 다니며 치료를 받고는 있지만 영 진전은 없습니다. 그저 '진행만 멈춰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다니고 있는 것이지요.
일반인이 환자로 변하는 순간 주위의 모든 것들이 바뀝니다.
생활환경, 식습관, 보고 듣는 것, 심지어는 추석이나 설같은 명절 때 집안의 웃어르신분들께서 하시는 덕담까지(예전에는 덕담의 주제가 주로 학업이었다면 이제는 그냥 건강히 잘 지내라고하십니다.).
이런 '바뀐 일상'은 2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저는 잘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간식도 꿀떡이며 인절미며 갖가지 다채로운 떡과 기름진 음료수들을 즐겼던 제가,
이제는 딱딱한 고체 형태의 견과류와 잡다한 야채들과 과일들을 때려넣은 야채주스 그리고 유산균제를 간식으로 먹고있다니. 이 얼마나 미치고 팔짝 뛸 노릇입니까!
그러나, 무엇을 해도 얻는 것은 있다고 어느 어른이 이야기 하셨 듯
저도 이 병을 앓고 난 뒤 얻은 것은 꽤나 많습니다.
첫 째, '일상'과 '평범'의 소중함.
우리들은 간혹 자신들의 삶에 불만을 나타냅니다. 나는 왜 행복하지않을까! 나는 왜 불행할까! 이런 쓸 떼 없는 불평들을 장황히 늘어놓으며 말이죠! 그러나 이는 우리가 우리들의 평범한 삶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아무 문제없이 숨을 쉬고- 지금 아무 문제없이 저는 글을 쓰고- 지금 아무 문제없이 여러분들께서 제 글을 읽는 이 일상과 평범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요! 우리가 폐 질환 환자가 아니어서, 우리가 뇌 질환 환자가 아니어서, 우리가 시각 질환 환자가 아니라서 이 행복을 잘 못느끼는 것 일뿐 우리가 그런 극단적인 상태에 놓이게되면 그 때가서 분명 우리는 일상과 평범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게 될 것 입니다. 저 또한 그러고 있습니다. 맛있는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먹는, 혹은 모자를 쓰지않아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가 제 앓고있는 병보다 심각한 병인 전신경화증이 아니라는 것이지겠지요, 그래서 전 늘 이런 제 삶을 불행하다라 말하지 않고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둘 째, 건강의 소중함.
단지 내 삶에서 일부분만을 차지한다고 생각해왔던 건강. 그 건강의 소중함은 제 생각, 그 이상의 이상이었습니다. 건강이 무너지면 몸이 망가지고, 몸이 망가지면 뒤이어 일상이 와르르 깨집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상과 평범이 사라지고 '낯선 생활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께서도 혹여나 건강을 하찮게 생각하시지는 않으신지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어보는 것이 어떠실런지요? 제 충고아닌 충고입니다.
셋 째, 도전 의식의 부활.
외국 영화 중에 <<버킷리스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저는 보지 않아 상세한 영화 내용은 모르나, 대충 줄거리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노인들의 마지막 여정기(자신이 평생 원했던 것을 점차점차 이루어가며)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어쩌다보니 그 노인들과 똑같은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전 시한부도-당장 죽지도 않지만 요즈음따라 하루하루가 소중히 느껴집니다. 그래서 일까요? 저도 하루하루를 그냥 헛으로 보내기보다는 그 영화의 노인들처럼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를 뽑자면 글쓰기와 캘리그라피, 사진 찍기를 뽑을 수 있겠군요(그래서 제가 이 다음 브런치를 하는 것은, 제 소원을 이루는 일이요-제 새로운 도전같은 것 입니다!).
허나 확실한 것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저는 병을 앓고 있고-
아직도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다는 행복하지만 비참한 현실입니다.
프롤로그가 본문인 마냥 너무나 길어졌습니다.
허나 이렇게 제가 홀로 끙끙 짊어지고 있었던 짐 하나를 훌훌 버리니 마음은 가뿐합니다.
이제 매주 일요일마다 제 투병기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제 투병기는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들만 쓸 예정입니다.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 드리면서 글의 종지부를 찍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