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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택 Mar 03. 2022

그래도 퇴원의 날은 온다

남편이 바라본 자궁경부 무력증 일지

자궁경부 무력증으로 더블맥 수술을 하게 되면 퇴원의 기준이 있다. 자궁 수축은 없는지? 염증 수치는 몇인지? 경부 강도는 몇인지? 철분 수치는 몇인지? 등 다양한 퇴원을 할 수 있는 데드라인이 있는데, 가장 우리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자궁경부의 길이다.


자궁 경부의 길이가 중요한 이유는 임신의 과정 동안 아이를 품고 있는 입구기 때문이다. 이 길이가 짧아진다는 의미는 아이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아무래도 두 아이를 품고 있는 아내는 자궁에 가해지는 압력이 일반 아이보다 2배일 것이고, 이미 자궁경부 무력증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주수가 짧은 시기에 자궁 경부 길이가 짧아지는 것은 그대로 조기 출산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부분은 괜찮다가도 마지막 자궁 길이 때문에 퇴원이 연기가 되었다.


어느덧 장기 입원으로 각이 잡히면서 동탄 병원 생활도 적응 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가게와 위치들을 다 파악하기 시작했고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하고 주변에 세탁실에 가서 세탁도 하곤 했다. 점점 퇴원을 하자 라기 보단 안전하게 있을 수 있을 때 병원에서 최대한 치료에 전념 하자라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밑에 계시는 부모님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어쩌겠어?


병원에서 설을 맞이 했다. 할머니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병원 진료 때문에 못 내려간다고 말씀드렸다. 그저 병원 생활로 끝날 수 있는 설도 용인에서 일하고 있는 나의 고등학교 친구가 방문해서 설음식을 좀 가져다주었다. 이런 가볍고 소소한 베풂에도 굉장히 힘이 났다. 그리고 친구 친적 할 것 없이 주변에서 많은 응원을 보내주었다. 먹으면서 병간호해라고 여러 가지 기프티콘도 보내주고 안부 연락을 많이 보내 주었다.


하지만 우리도 헤어짐의 순간이 생겼다. 연차를 6개를 사용하고 설 연휴가 겹쳐 다행히 2주 넘게 함께 있어 줄 순 있었지만 이제 나도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내를 두고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서로 내색하지 않기로 했지만 내가 떠날 때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보니까 너무 가슴이 아팠다. 본업을 하고 금요일 퇴근해서 다시 올라오는 일종의 주말 부부와 같이 보내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내는 점점 짧아지는 경부 길이 때문에 교수님께 재 수술 권유를 받았다. 그리고 내가 내려가고 1주 뒤 다시 아내는 더블맥 수술을 받게 되었다. 출산도 아닌데 벌써 수술대에 3번째 오르게 되자 힘이 들었다. 수술하고 며칠은 보호자가 필요한데 내가 평일에 오래 있어주지 못하니 드디어 장모님이 출격하셨다. 그래도 한번 해봤다고 씩씩하게 이겨내는 아내.


3차 수술 후 매일매일 외래 진료를 보다가 항상 전화로 상태를 알려주었는데 생각보다 기적적으로 경부 길이가 길어지지 않아 아내가 속이 상해했다. 게다가 유보파를 너무 오래 달고 있기도 했고 유보파를 달아도 경부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하니까 이제는 과장님이 트랙토실을 권유하셨다. 트랙토실은 유토파와 다르게 보험 적용이 안된다. 대신 유보파와 다르게 부작용도 적고 효과는 크다고 하지만 가장 문제는 사악한 가격이다.


1사이클에 50~60만 원 정도를 하는 가격이다. 게다가 1사이클이 4팩이고 하루 조금 넘는 사용량이기 때문에 며칠만 달아도 수백만 원이 깨지게 되는 약이다. 실제 입원하고 있을 때 같은 방을 썼던 장기 환자는 트랙토실을 오랫동안 달고 있어서 병원이 비 3,000만 원이 넘게 나오는 걸 보았다. 어쩌겠누? 돈이야 벌면 되니까 버티고 존버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트랙토실을 이틀 맞고 외래를 보는데 벌어짐도 없고 길이도 3센티가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부터 약을 서서히 줄이고 상황을 보자 하셨는데 웬걸? 수축이 생각보다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금요일 갑작스러운 퇴원 조치를 받았다. 근무 중에 당장 가기에 참 짜증 나게 일이 너무 바빠서 하루만 더 자고 토요일 태우러 간다고 했는데 다행히도 장모님이 올라가서 태우고 온다 했다. 집에 온 아내애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묻자 짜장면이랬다 우리는 이렇게 만찬을 즐겼다. 크리스마스부터 입원해서 2월 말에 퇴원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느낀 점이 있다면


1. 쌍둥이(다태아)에 대한 사각지대를 느끼다.


실제 쌍둥이를 가지게 되면 앞에 서술한 것과 같이 조기 통증, 자궁경부 무력증과 같은 고위험 산모 질병에 노출 되게 된다. 아무래도 이러한 이벤트가 많다 보니 태아보험을 들 때 산모 특약으로 가입이 불가능하다. 일반 단태아의 경우에는 태아 보험 시 산모 특약을 넣어 이러한 수술에도 지원을 받기도 했지만 쌍둥이는 특약이 불가하기 때문에 이 수많은 수술과 진료 비를 다 쌩으로 내야 한다.


2. 실비 지원은 되지 않는다.


산모 관련 코드인 'O'를 받게 되면 보험사에서 실비 처리를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제왕절개를 해도 실비 혜택이 없는 것과 동일한 내용이다.


3. 고위험 산모 지원금은 부족하다.


산모 관련 혜택을 찾던 중 중앙 정부에서 지원하는 고위험 산모 지원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진료비의 90프로를 지원해준다고 하니 병원비에 별다른 걱정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비급여 항목에 대한 부분만 지원이라는 약관이 있었다. 게다가 한도도 300만 원,... 실제 경상대에서 일주일 입원 기간 동안 병원비가 128만 원 정도가 나왔는데 이 중에 비급여 항목은 20만 원 정도였다. 고로 이 20만 원의 90프로를 지원해주는 정책인 셈이다.



4. 믿을 것은 회사 단체 보험


아내가 빠르게 병가를 낼 수밖에 없었는데, 병가를 처리하기 위해선 의사 소견서와 진료 세부내역서 등이 필요했다. 회사에는 사원을 대상으로 단체 상해 보험이 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종업원이 수술을 하게 되면 지원금이 있다. 정말 정말 다행히도 제법 많이 나온 우리의 진료비를 아내의 회사에서 자기 부담금 10만 원 정도를 제외하고 모두 다 지원을 해주었다.



5. 부모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단순히 임신을 해서 아이를 만삭 때까지 품으면 끝인 줄만 알았던 나를 반성하게 했다. 실제 여자가 아이를 품는 순간 수많은 고통과 이벤트들이 생긴다. 그것을 옆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남편은 정말 스스로가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내를 정신적으로 케어하는 일, 그리고 정말 노예가 되어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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