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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Jan 03. 2024

결혼 1

결국 이렇게 됐구나.







 왼발이 먼저. 태오는 예식장 직원이 일러준 지시사항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한번 더 입으로 되뇌었다. 이 문이 열리면 누구의 얼굴이 가장 먼저 보일까. 혼주석에 홀로 앉아 계신 어머니? 날짜를 잡았다고 이야기했을 때,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태오의 얼굴을 골똘히 들여다보셨다. 아마 놀랄 만큼 태오와 닮았다는 젊은 시절의 그 사람을 생각하셨을 테지. 태오가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을 무렵, 결혼 전 사귀던 여자와 도망을 간 아버지라는 사람.

  



 태오의 결혼 소식은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 친구들은 태오의 결혼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태오를 사랑꾼이라고 불렀다. 세연과 함께 있는 태오를 수식하는 데 적절한 단어였다. 태오의 눈은 해바라기가 태양을 좇는 것처럼 세연을 따라다니며 사랑을 표현했다. 세연 앞에서의 태오는 평생을 한 사람한테만 헌신할 것 같은 다정한 사람이었다. 세연의 부모님께서 서른을 넘은 그녀의 나이를 이유로 결혼 이야기를 꺼내셨을 때, 태오는 세연과 라면 이른 결혼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외모, 조건 어느 하나 부족한 곳 없는 세연이었다. 세연의 가정적이고 섬세한 면모가 좋았다. 자신과 함께 어머니 생신과 어버이날을 챙겨주는 사람. 5살이라는 나이 차에서 우러나오는 침착함과 배려는 태오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다만 그녀가 소설을 쓰기 위해 오랫동안 다니던 광고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말리지 못한 것을 내심 후회하고는 있다. 외벌이로는 힘든 서울 생활이다. 가구와 식기를 사고, 집처럼 꾸미는데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 태오의 원룸이었지만 세연과의 신혼집이 되기에는 너무 작았다. 지난번 연봉 협상이 만족스럽지 않은 차에 경제적 부담이 더해지는 것은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그날은 세연의 드레스 피팅이 있는 날이었다. 퇴근하는 대로 가겠다고 말을 했지만 태오는 내심 그전에 피팅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들 몇 가지만 정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결혼 준비는 예상보다 복잡하고 할 일이 많았다. 세연은 글쓰기는 아예 제쳐둔 채 가진 모든 시간을 결혼 준비에 쏟아부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발로 직접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태오에게도 해야 할 일들 리스트를 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유난스럽게 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태오씨 인사해, 여기는 앞으로 태오씨가 맡아서 가르칠 이가은 씨.”

 

샵에 도착했다는 세연의 문자를 확인하고 있던 태오는 선배 진혁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진혁의 옆에는 처음 보는 여직원이 있었다. 나이는 많아봤자 20대 중반. 그녀는 세연이 나이 들어 보인다고 싫어하는 베이지색의 투피스를 큰 키와 또렷한 이목구비로 깔끔하게 소화해 낸 눈에 띄는 미인이었다. 문득 진혁이 저번주에 인사이동으로 팀에 새로 들어오게 된 여직원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났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가은의 목소리는 그녀의 얼굴만큼이나 앳됬다. 태오도 인사를 하고 가은에게 악수를 청했다. 작고 보드라운 그녀의 손이 태오에게 닿았을 때 작은 정전기가 일어났다.





   

 가은은 먼저 말을 거는 친근한 성격인 것은 물론 일머리도 있었다. 태오가 간략하게 설명해 준 프로젝트의 개요를 빠르게 이해하고 자신이 맡아야 할 부분을 찾아 자료 조사부터 착수했다. 이따금 태오가 만들어 놓은 리포트에 대해 질문을 던질 때는 그녀의 경력을 의심할 만큼 노련하고 영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태오는 자신이 그녀의 사수라는 사실을 까먹고 그녀와 열정적으로 업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은이 시계를 쳐다보며 물었다.  


“선배, 저는 봐야 할 자료가 많아서 간단하게 저녁 먹고 다시 들어와야 할 거 같은 데, 혹시 같이 가실래요?”

    

태오가 핸드폰의 방해 금지 모드를 켜면서 대답했다.

 

“그래, 같이 가자.”  




 벌써 3주째 세연은 만날 때마다 종이에 그려온 드레스들에 대해 쉴 새 없이 설명했다. 어떤 드레스가 제일 나은 것 같냐는 질문에 태오는 ‘글쎄.. 자기 마음에 드는 게 중요하지...’ 라며 말끝을 흐렸다. 눈앞에 있는 세연은 언제나와 같이 밝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하지만 왠지 세연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태오는 이것이 흔히 말하는 결혼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이따금씩 떠오르는 가은 때문인지 혼란스러웠다. 매일 저녁 구내식당에서 나누는 가은과의 대화는 퇴근할 때까지 이어지곤 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더 많은 공통점을 발견했다. 전공과 현재 일하는 분야를 넘어 사회적인 관심사 그리고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보수적인 정치 성향까지. 모두 세연과는 달랐다. 기분이 이상했다. 가은은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이야기할 수 있는 동생 같기도 하면서 심장을 간지럽게 하는 이성적인 매력을 가진 여자였다. 취한 그녀를 부축하며 길을 걷던 날 그녀가 살며시 태오 손에 깍지를 꼈었다. 태오는 그것을 뿌리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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