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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는 게 너무 걱정돼서 잠이 안 와

역이민을 준비하며 #3

by HANA



컴퓨터 화면 속 시간이 11시 59분에서 12시로 넘어가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금요일은 정오가 되면 일이 끝나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 최고의 복지, 여름 금요일 하프데이(Half Day) 덕분이다. 업무 분야 특징상 매년 2월, 4월, 6월이 바쁜 우리 회사는 7월부터 상대적으로 한가하다. 그래서 7, 8월 두 달 동안 금요일 업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2시까지, 모두가 집에서 근무한다. 일주일에 2-3번 주어지는 자택근무 날짜에 추가로 하루가 더 생기는 것이다. 나는 주로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가서, 주말에는 앉을자리가 없는 핫한 카페들을 간다. 남자친구가 일을 일찍 마치는 날에는 상대적으로 예약이 쉬운 오후 티타임을 잡아 골프를 치러 가기도 한다. 이걸 어떻게 버릴 수 있을지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역이민을 생각하면 역시 제일 먼저 걱정되는 것은 한국에서 무엇을 하고 먹고살 것인가이다. 지금 하는 일은 한국에서 지속할 수 없는 데다, 예전에 한국에서 하던 일도 8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할 수 없다. 게다가 이미 9-5에 익숙해진 나는 4시만 지나도 퇴근을 준비하는데 어떻게 한국 회사에서 6시까지 일할 수 있을까.





쉽지 않게 취업한 로컬 회사다. 캐나다의 구직 시장은 한국만큼 어렵다. 좋은 대학교를 나와서도 나보다 적은 연봉으로 나와 같은 직군의 일을 하는 로컬들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현지에서 학교를 다니지도 않고, 관련 공부를 하지도 않은 나는 더 열악한 조건을 가지고 구직을 했었다. 다행히 지금 다니는 회사를 6개월 계약직으로 시작을 했고, 정규직 전환 후 매년 10%의 연봉 인상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 게다가 회사도 집에서 가까워서 아침 8시 반에 출발하면 지하철 다섯 정거장을 가 넉넉히 9시 전에 오피스에 도착한다. 누구 하나 모난 사람이 없는 회사에서는 모두가 친절하며 과도한 업무량을 기대하지 않는다. 바쁜 달에는 야근과 주말 업무가 요구되지만 평소에는 5시면 칼퇴근이 당연하다. 추가 근무 시간 외에도 별도의 야근수당과 혜택이 있다. 출산 휴가는 최대 18개월이고, 남자들의 육아휴직도 자연스럽다. 사회 필수적인 분야의 회사이기에 해고의 위험이 거의 0에 가깝다. 우리 회사의 리셉션니스트는 1997년에 입사한 여성분인데 한 번도 이직을 하지 않고 지금까지 정정하게 일을 하신다. 한국인 직원을 처음 경험한 회사 파트너들은 나의 책임감을 좋게 봐주어 시간이 갈수록 더 다양한 일을 주고 나도 거기서 성장함을 느낀다. 하는 일은 시스템에 기반한 프로세싱이기에 더 이상 창의력과 기획력을 쓰지 않는다. 영어가 모국어인 다른 직원들보다 문서 독해력은 현저히 느리지만 그렇기에 더 디테일에 신경 쓰고, 가이드라인에 있는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는다. 이제 나는 부당한 업무를 수용할 수 없고, 상사의 괴롭힘을 참을 수 없으며, 한국어로 업무 이메일을 쓸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연봉이 1억이 안되는데 세금을 매달 100만 원 이상 내지 않을 것이며, 매매와 월세사이 전세라는 제도가 있을 것이며, 주위 사람들이 사는 집값이 30억이지는 않겠지. 회사 근처에는 원하는 모든 한국 음식이 점심 선택지로 있고, 여름에는 꿈에서나 그리는 평양냉면을 먹을 수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지금처럼 자유롭게 옷을 입지는 못하겠지만 한국옷들은 예쁘니까 문제없다. 퇴근 후 집에만 있는 대신 할 수 있는 것들이 다양하니까 삶이 더 다채롭지 않을까. 친구들과 술 한잔에 회사 스트레스도 털어버리고, 주말에는 서점에 가서 새로 나온 한국 책들을 마음껏 읽고, 가족들과 근교로 놀러 갈 수도 있으니 된 게 아닐까. 무엇이 더 행복한 삶일까. 행복은 비교값이 아니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그보다 한국에서 돈을 버는 일을 할 수는 있을까. 이민을 원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어렵게 얻은 영주권을 포기해도 될까.



오늘도 잠은 못 자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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