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의 10년
지난주 4일 동안 열렸던 브런치 10주년 팝업 전시 ‘작가의 꿈’에 다녀왔다. 9월 귀국 후 매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터라 전시가 시작된 목요일이 돼서야 부랴부랴 카톡으로 온 메시지를 통해 예약을 했다. 이미 주말 예약은 다 찬 상태였기 때문에 직장에 다니는 다른 작가 친구에게는 같이 가자는 말 한마디 꺼내보지 못하고 금요일 2시경에 남아있던 한 타임을 간신히 잡았다. 지도를 통해 위치를 검색해 보니 서촌 대림미술관 뒤쪽 은행나무길 한가운데 위치해 있었다. 팝업이라고 해서 성수를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완벽한 장소선정이었다. 가을과 브런치의 조합이라니.
30분도 채 보지 못할걸 알면서도 꼭 가고 싶은 전시였다. 이번 전시를 위한 글을 모집하는 이벤트를 봤을 때도 부끄러운 마음에 참여하지 못했고, 아직 출판은 나와는 너무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브런치를 사랑하는 마음은 굉장히 오랫동안 간직했으니까. 브런치가 론칭된 게 2015년, 내가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린 것이 2016년이니 브런치의 10년에 얼추 나의 10년이 들어있다. 그때의 나는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을 그만두며 글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고, 감성이 가득했던 내 글은 네이버 블로그의 가볍고 밝은 분위기와는 결이 달랐다. 작가 신청이 한 번에 통과되고 ‘다시 시작할 힘’이라는 첫 글이 올렸을 때는 지금까지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을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었다. 그 당시에는 대기업에서 오픈했다가 몇 년 못 버티고 사라지는 서비스가 많았었다.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브런치 서비스 기획 자료의 일부를 보며 기획을 했던 사람으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런 고민으로 미션을 정했고, 그 초심을 10년 동안 지켜서 이제는 성공적인 플랫폼이 된 걸 보니 역시 사람들에게 닿는 서비스는 명확한 니즈충족이 필요하다.
나를 브런치로 불러들인 것은 친한 친구 혹은 연인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나의 진심을 표출하고 싶은 마음이었고, 그렇게 마음을 나의 밖으로 꺼내야만 살아지는 날들이었다. 연인과 헤어진 날에는 방에서 우는 걸로는 그 감정을 어떻게도 처리할 수 없어서 노트북을 켰었고, 카페에 앉아있으면 밀려드는 생각들에 내가 무너져버릴 것 같아서 핸드폰으로 브런치 앱을 열었다. 이제 10년이 지나 상황과 마음이 달라졌음에도 예전에 쓴 글들을 읽는 순간 그 시절로 돌아간다. 그날들을 버텨서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내일을 이겨낼 힘이 난다. 캐나다로 이민을 하고 삶이 바빠졌다는 핑계로, 한국어 능력이 퇴화됐다는 이유로 작가의 서랍에 글들을 저장만 해두고 발행을 하지 못한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브런치는 여전히 나만의 온전한 공간이고 거기에 내 글을 공감해 주시는 독자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언제든 다시 돌아와서 글을 올릴 수 있었다. 아마 나라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정제된 형식으로 그 시절의 나를 기록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 출판이라는 최종 목표와 관계없이 말이다.
전시회에 오신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면서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분들이 쓰신 책들, 그분들의 책상 위 물건들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시는지 알고 싶어졌다. 어떤 주제가 인기가 있나 둘러보고, 다음 글은 어떤 내용으로 써볼까 계획도 하는 시간이었다. 모두가 그 옛날부터 걱정했던 출판 시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증명되고 있다. 유튜브와 SNS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이지만 글을 읽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이니까. 그리고 읽는 사람들은 결국 쓰게 되어있다. 시기와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 지난 10년 동안 나를 잃어버리려고 할 때마다 브런치에 왔다. 퇴사, 이민, 이별, 여행, 취업, 역이민이 거쳐갔다. 2025년 10월, 나는 여전히 읽고 쓰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