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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vin Sep 17. 2023

바람의 노래가 없어도

가벼우면 춤 출 수 있다.


언젠가, 어느 시점이 되면 가슴속에서 불길이 끓어오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속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의 노래로 인해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막연하게 미뤄온 지난 날들의 나는, 몇 년짜리 블랙아웃처럼 시간만 잡아먹었다.


2017년 겨울, 제주도는 따듯하겠지라는 기대와 함께, 제주공항 착륙 시 보였던 잔디를 보았을 때,

봄을 찾아왔구나라고 느꼈고, 혼자 하는 여행 내내 펼쳐지곤 했던 무지개는 찬란한 나와 우리 가족의 미래를 엿보는 것만 같아 설레었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브런치 작가로 등록한 이후, 단 한 편의 글도 포스팅할 수 없었고, 오늘은 2023년 9월이다. 올 해 마저도

 전 세계가 불덩이라는 뜨거웠던 여름이 끝나가고 추석이 다가온다. 그러면 곧 2023년 또한 지난 과거가 될 뿐이다.


춤을 추게 되는 상황은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지는 일이 아닌 것 같다. 판타지 같은, 책이나 영화에서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인 것 같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어나고, 굳은 햄스트링과 좁아진 5번 6번 디스크에 삐걱거리고, 12년 전에 수술한 무릎이 시큰거려도.  돌덩이 같이 얼었던 빵을 토스트기로 돌리면 빵 가운데는 아직 차갑고 단단한 것이 내 몸뚱이 같지만, 와이프가 썰어준 과일과 야채와 함께 아침을 먹고, 나보다 먼저 식탁에서 자리 잡아먹고 싶은 달달한 과일만 골라먹고, 빵도 잼을 싹싹 발라 꽤나 먹고선 간식을 더 달라는 살이 보기 좋게 오른 딸아이의 손을 잡고 거실로 끌어내어, 아무 음악이나 틀어본다.


스펀지밥 OST 중 ' Ocean man',


스펀지밥 극장판을 본 적이 없어, 처음 듣지만 이 포크송이 딸아이의 몸을 흔들게 한다. 똑같이 따라 했다.

이젠 자연스럽게 예측되는 박자에 맞추어 말도 안 되는 춤을 둘이 똑같이 흔들면서 집안을 돌아다녔다.


어떻게든 잘 살아보고 싶었고,

남들과는 다른 삶을 꿈꾸었고,

그것만 바라보면 누군가와 싸우고,

다투고, 속고, 속이고.


의미 없는 관계들은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고,

소중한 사람들만 남았다.


나는 그 어느 때 보다 가볍고, 기쁘다.

 아침엔 춤을 추고, 밤에 글을 쓴다.


바람의 노래를 만들어본다.




#리스타트 #바람의노래 #스폰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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