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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용담 Dec 16. 2024

내가 지키려는 '내 선수'는 누구인가?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중






지금 생각해도 엄마에게 서운해서 화가 나는 일이 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세대인 내게 6학년 졸업식 때 학교에서 주던 '우등상'은 아주 큰 의미였다.

우리 반에 얼굴이 희어 멀겋고 덩치가 좋아 어린 우리가 보기에도 '잘 생겼다'라는 생각이 드는 남자애가 있었는데 그 애 엄마는 가수 '옥희'씨를 연상케 하는, 당시 엄마들과 사뭇 다른 이미지의 멋쟁이 었고 학교를 자주 드나들었다.


어느 날, 키가 작아 앞에서 두 번째 앉던 내가 물을 마시러 교실 뒤편 황금빛 양은 주전자를 향해 걸어가는데, 주전자 바로 앞, 맨 뒷자리에 앉았던 그 녀석과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하시던 선생님이 손사래를 치며 이쪽으로 오지 말라며 역정을 내셨다.


나는 그때 분명 보았다... 

선생님이 그 녀석과 이미 채점된 시험지를 고치고 계셨던 것을!


졸업식날이 되었다.

좀처럼 학교에 오지 않던 우리 엄마도 오고, '옥희'같이 생긴 아줌마도 와 계셨다.

우등상장도 받고, 꽃다발도 안은 채 졸업식을 마치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는데 문득 엄마가 그러신다.


"ㅇㅇ이 엄마가 너 우등상 받은 거 모르는지, 울반에 공부 잘하는 애들이 많아서 이번에 우등상 받기가 어려웠나 보다고... 너 속상하겠다고 하시더라!"


"뭐??? 그래서 엄마 뭐라고 했어??? 우리 아이는 받았다고 했어야지!!!"


"에이~ ㅇㅇ이는 못 받았던데, 걔네 엄마 더 속상하라고 뭣하러 그래~ 그냥 아무 말 안 했어."


"아!!!!! 짜증 나!! 엄마! 걔 우등상 받으려고 시험지까지 고쳤다고!!"


쓰다 보니 살짝 열이 받네? 삼십 년이 넘은 이야기인데도... 




지금은 성인이 된 내 딸이 유치원 다니던 시절의 어느 날 그 큰 눈에 힘을 빡 주고 말한다.

"엄마! 엄마는 왜 나를 위해 싸워주지 않아? 

내 친구 엄마는 놀이터에서 자기 딸 괴롭힌 애네 엄마랑 막 싸웠어!! 걔도 혼내주고!!"


"너도 엄마가 놀이터에서 싸우면 좋겠어?


"나를 위해 엄마가 싸워줘야 하는 거 아냐? 우리 엄마니까!"


"에이~ 뭣하러 그래~ 그냥 너는 걔랑 놀지 말고 다른 애랑 놀아~ (사실... 난 잘 못 싸우겠어...)"   


우리 엄마는 내가 받은 우등상장을 옥희 닮은 아줌마 면전에 흔들어야 했다, 내 명예를 위해!

나는 놀이터에서 대가리라도 뜯으며 걸지게 한 판 떠야 했다, 내 딸을 위하여!


쌈박질은커녕, 누가 나를 향해 눈만 부라려도 사지가 떨리고 눈물이 오토매틱으로 줄줄 나오는 

쫄보 찌질이 같은 나일지라도, 바둥대며 지키고 싶은 '내 선수'는 두 말도 필요 없을 '내 자식'이다.


내 자식이 유달리 소중하고 내 목숨보다 지키고 싶은 이유는 무얼까?


나보다 네 살 많은 사촌언니가, 나보다 여섯 달 먼저 아기를 낳고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세상에... 내가 '사람'을 낳았다! 

신기하지 않냐? 내 몸에서 사람이 나오다니ᆢ낄낄낄.."


그래! 내가 만든 '사람'이 내 자식이다.

내 몸 안에서 뼈가 자라고, 살이 붙고, 피가 돌고, 나를 닮은 오감이 장착되어 세상에 나온다.

내 젖을 먹고, 내 사랑을 먹고, 내 헌신과 배려와 양보를 먹고 자라난 '내 자식'안에는 

부정할 수 없는 '내'가 들어 있다.


'내 자식'은 곧 '내'가 된다. 

그러므로 내게 무엇과도 환산가치를 매길 수 없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내가 평생 나를 바쳐 지키고 싶은 '내 선수'.. 그 선수는 결국 자식 안에 들어앉은  '나' 자신인 셈이다.

나는 사실 '나'를 지키고 싶어 '내 자식'을 지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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