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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레이 Dec 28. 2017

01. 한국을 나가면

인도네시아 1년 생활기

시절


 군대는 어차피 사람 사는 인생은 다 똑같이 지루하고, 남들도 다 그렇게 견디며 사는데 굳이 나대면서 어린 티를 내는 건 옳지 않다고 교육했다. 당시 내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나중에 어렴풋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세상은 조직이 요구하는 대로 성숙해 보이는 인재가 되길 원하지 개인이 행복한 삶을 살며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제대를 앞둔 내게 꿈은 대기업, 공무원, 공기업, 전문직에서만 고를 수밖에 없는 객관식 선택지처럼 보였고, 이 선택지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사람은 관심병사나 다름없는 루저였다.

 내 꿈은 번듯한 직장이었지,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었다. 달을 보지 않고 그것을 가리키는 고승의 손가락 만을 보는 것처럼 꿈과 직장을 혼동했다. 


 그렇게 난 무지하고 속물근성으로 가득 찬 평범한 꼰대로 살 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 올라온 공고를 보았다.   


인도네시아 다르마시스와 정부초청장학생 모집  

 

 인도네시아 외무부가 주관하며, 자신이 선택한 대학교에서 1년 간 인도네시아어와 문화과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월 20만 원 상당의 지원금까지.  




인도네시아로 떠난 이유


 언론이나 블로그 등이 인도네시아를 다루는 단어는 몇 가지 정해져 있다. <휴양지>, <화산폭발>, <기회의 땅>, <한류열풍> 등. 저걸 해석하면 '놀러 가거나 돈 벌러 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게 인도네시아에 가고 싶은 이유였다.

 발리나 롬복 같은 휴양지에서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싶었고, 어떤 산업이 떠오르는지 보고 돌아와서 썰을 풀고 싶었고, 한류의 기운을 받아 오빠 소리도 들으며 어깨 좀 펴고 다니고 싶었다. 화산폭발만 빼고 모든 걸 경험하고 싶었다.


그리고 화산폭발은 보지 못했지만 멋진 화산에 올라가 봤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렇게 큰 결심을 했다는 걸 주위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풀어 말해 칭찬을 듣고 싶었다.


 너도 이제 어른이 되었구나


 당시 내게 칭찬이 중요했던 이유는 주위 사람의 평가가 내 행복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다.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큰 인물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러니까 행복은 비교를 통해 우월감을 맛보는 데에서 나오며, 불행은 타인과 비교할 때 보이는 자신의 열등함에서 나온다고 착각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경험은 나를 더 우월하게 만들어줄 기회였다.


 하지만 지난 1년 간의 경험은 초기에 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를 바꾸어 놓았다. 지원한 동기는 순전히 물질만능주의에서 비롯되었지만, 인도네시아는 내게 물질주의의 추악한 본질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하는 필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이 매거진에서는 인도네시아 내 어떤 산업이 지고 떠오르는지를 잠깐잠깐 쓸 수는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당시 25살이었던 내가 겪었던 몇몇 경험과 그것을 통해 내 가치관이 변화하는 과정의 흐름을 담고 싶다.

 그리고 언론이 잘 알려주지 않는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커피, 음식, 지식인, 각 종족과 정체성, 열대우림과 오랑우탄 등 내가 친구들에게서 듣고 배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들도 함께 소개하려고 한다.




세마랑? 스마랑? 하여튼 거기가 어디죠?

 

 면접은 2월에 봤지만 합격통보는 4월에서 5월로, 5월에서 6월로 계속 늦춰졌다. 나중에 깨닫지만 그건 인도네시아에서 수도 없이 겪어야 할 시간과의 싸움을 알리는 전초전이었다. 마침내 합격통보를 받고 출국, 인도네시아에 도착했다. 나는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자카르타나 발리가 아닌 스마랑이라는 도시로 가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어에서 조금 헷갈리는 철자가 'e'인데, 이 e가 'ㅡ' 또는 'ㅔ'로 발음되는데 철자로는 구별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듣고 익숙해져야 되는데 그래서 처음엔 거의 모든 외국인들이 세마랑세마랑 그러다가 나중에 스마랑인걸 알게 된다.  



 이미지에서 보이듯이, 국제공항이라고 써져있지만 아직은 작은 규모의 공항이다. 아직 사이즈도 작아보이고 개발이 덜 된 도시이지만,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인에게 스마랑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인구 약 3500만 명의 중부 자바의 주의 거점도시 스마랑은 이제 막 빠르게 도로, 통신, 쇼핑 인프라가 깔리고 있으며 자동차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스마랑은 자카르타와 수라바야 사이에 끼어있다.

 5년 전만 하더라도 교통체증이 없었고 쇼핑몰이 1개였는데 이제는 매번 도로가 막히고 쇼핑몰이 5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다른 주에 비해서 인도네시아는 주마다 최저임금이 다른데,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적용되는 최저임금이 각기 다르다고 보면 된다. 그중 중부 자바는 32개 주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을 선정하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공장을 자카르타 근교에서 스마랑 근처로 옮겼다.

 투자와 경제성장의 과실이 집중되는 스마랑은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처럼 모든 것들을 허겁지겁 빨아들이는 듯한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탐욕을 조장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급속도로 발전하는 이 곳에서 경제성장의 빛과 그늘이 동시에 존재했지만, 인도네시아 생활 초반 한 달 동안은 나는 경제 발전이 가져다 줄 찬란한 미래에만 집중해서 보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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