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rA May 18. 2023

Home Not Sweet Home

방으로의 초대

지친 퇴근길, 쉼이 절실한 순간이지만 집이 가까워질수록 제 발걸음은 눈에 띄게 느려집니다.

들려야 할 곳은 없나, 사야 할 것은 없나, 만나야 할 사람은 없나...

이런저런 생각에 머릿속이 와글와글거립니다.


집 대문 앞에서 한동안 머뭇거립니다. 그러다 한숨을 크게 한번 내뱉고 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습니다.

다섯 감각의 예민함 정도가 일제히 최고치로 솟구치지만, 표정만큼은 무덤덤합니다.


한 방 안을 슬쩍 엿봅니다. 한쪽으로 포개 누운 작은 한 사람의 실루엣이 보입니다.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 사람의 호흡을 잠시 확인합니다. 한 번의 큰 들숨이 여러 번의 얕은 날숨으로 흩어집니다.


저는 제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습니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바깥일에 에너지를 죄다 쓰고 터덜터덜 돌아온 제게 항상 반달 눈웃음을 전했던 짝꿍의 아버지는 어느 시점에 이르자 시간의 중력에 짓눌려 빠른 속도로 사그라들었습니다. 총기와 생기 가득했던 눈은 허망함을 담았고, 위트를 담았던 입술은 하루종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넓은 세계 곳곳을 누볐던 그의 단단한 다리는 그를 일으켜 세우지도 못했으며, 짝꿍 아들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던 그의 손은 작은 떨림과 함께 하루 종일 포개져있었습니다.


존재의 무거움이, 삶의 허망함이, 늙음의 고단함이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와

성숙하지 못한 제 마음을 계속 때렸습니다.

짝꿍처럼 저는 단단하지도, 현명하지도, 의연하지도 못해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그 여정을 지혜롭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감정의 단절을 선택했습니다.

철저하게 저를 위한 이기적인 선택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방문을 꼭 닫고 들어가는 물리적 단절과 함께 마음을 말리려고 애썼습니다.

그 언젠가는 후회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면서요.


어느 날의 퇴근길이었습니다. 집에 거의 다 도착할 무렵 짝꿍에게 말했습니다.

"나한테는 말이야, 집이 home sweet home은 아닌 것 같아..."


매거진의 이전글 연결의 방: 이방인의 초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