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편 관람
좀 많이 늦었지만, 2월에 본 영화들 후기... 라기 보단 내 취향에 대한 단상에 가까운 기록.
2월에는 신작들 보다는 좀 예전 영화들 위주로 보았고, 특히 어떤 세 감독에 꽂혀 이들 영화 위주로 보았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스페인), 아키 카우리스마키(핀란드), 그리고 잉마르 베리만(스웨덴).
1. 먼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들.
하이힐 (1991)
내 어머니의 모든 것 (1999)
나쁜 버릇 (1983)
나쁜 교육 (2004)
패러렐 마더스 (2022; 3월 관람)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가족 간의 관계(특히 모성애)를 다루는 게 꽤 많다. 그런데 의외로 심각하지 않고 블랙코미디가 많은데, 대사들이 좀 뻘하게 웃겨서 종종 피식되게 된다. 게다가 단순히 웃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관적으로 뼈 때리거나(?) 본질을 꿰뚫는 대사들이 많아서 특히 보는 맛이 있다.
감독이 붉은색을 좋아하는지 영화마다 주인공들이 붉은색 의상을 많이 입고 나오기도 하고, 대체적으로 영화의 색감과 인물들의 감정 표현 같은 것들이 강렬하고 격정적인 때가 많다. (역시나 스페인 사람들이라 그런가?) 그래서 여러모로 보는 재미가 있다. 감독이 음악에도 일가견이 있는지, 영화에 꼭 어느 바나 식당에서 어느 가수가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곤 하는데, 주인공의 인생에 대한, 또는 위로를 해주는 듯한 가사에 음악도 꽤나 훌륭하다. 물론 삽입되는 배경음악들도 상당히 좋은 것들이 많고. 그중 최근에 가장 좋았던 것을 하나 아래 넣는다.
그나저나 이건 나 자신의 문제인 것 같은데(망할 기억력...?), 뭔가 이렇게 묘하게 비슷비슷한 테마로 다작을 한 감독들의 영화들을 한꺼번에 보다 보면, 나중에는 뭐가 무슨 내용이었는지 좀 뒤죽박죽 되어 정확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분명 볼 때는 매우 재밌게 봤는데 불구하고 말이지...
2.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들
성냥공장 소녀 (2001)
황혼의 빛 (2006)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2001)
최근에 "사랑의 낙엽을 타고"라는 영화에 대한 호평에 가까운 후기를 두어 개 봤었는데, 이 감독이 예전에 본 "얼굴 없는 사나이" 영화의 감독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름 나쁘지 않게 봤던 영화인데, 시간이 좀 지나 디테일한 게 또 기억이 안 나네...) 이 감독 영화들을 몇 가지 정주행 했다. 아, 그런데 이 감독 영화들 완. 전. 내 취향이다.
"성냥공장 소녀"는 1시간 조금 넘는 상당히 짧은 영화인데, 나름 기승전결이 탄탄하게 구성된 영화이다. 굉장히 간결하게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맺은 느낌? 기본적으로 이 감독은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좀 최소한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으니 경제적이라고 해야 할까. "황혼의 빛"에서도 그렇고, 인물들이 시종일관 무표정이며(알모도바르의 격정적인 인물들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북유럽 특유의 차가운 감성인지? 근데 난 이 무표정한 인물들이 오히려 너무 웃기다) 감정도 잘 드러내지도 않고, 생략된 장면들도 굉장히 많다. 생략은 했으나, 관객으로 하여금 무슨 상황이 일어났는지는 충분히 유추하고도 남을 상황이라 뭐 난해하거나 그런 건 전혀 없고, 오히려 되게 깔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영화에서는 잘 보지 못한 연출이라, 신선했다. 이런 게 여백의 미인가?) 게다가 "황혼의 빛"은 보는 내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표정으로 혼자 앉아있는 주인공, 그 장면의 구도, 색감, 전체적으로 굉장히 고독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호퍼의 그림을 떠오르게 한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는 진짜, 진~~짜!!! 웃기다(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이다). 핀란드에서 활동하는 정~말 구린 한 밴드가 (영어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권유에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고자 무작정 미국으로 떠나면서 벌어지는 내용인데, 완전 B급 코미디 그 자체. 이 영화를 왜 이제야 봤을까? 아니, 이제라도 봤으니 다행이다. 보는 내내 정말 뻘하게 웃겼다. 위 두 영화의 쓸쓸한 분위기와는 완전 다른 영화이다.
3. 마지막,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들
마리오네트의 생 (1980)
페르소나 (1966)
처녀의 샘 (1960; 3월 관람)
겨울 빛 (1963; 3월 관람)
안타깝게도 정작 굉장히 궁금했던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들("결혼의 풍경" 등)은 볼 수 있는 플랫폼이 없어 그 외의 영화들을 보았다. 전반적으로 상당히 철학적(?)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들은 좀 유쾌하게 툭툭 던지는 대사가 많다면,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들은 인물들이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주로 본인 인생에 대해) 굉장히 심오하고 길게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씬들이 꽤 많은데, 알게 모르게 공감도 되면서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그나저나 이 중 ”처녀의 샘”은 나머지 영화들보다 오히려 스토리 자체는 꽤 심플한 것 같은데,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서인지 무슨 메시지를 가져가야 할지 개인적으로 좀 난해했다... 딱히 재밌지도 않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