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방? 지역?
1. 지선이 끝나고, 한동안 고학력 빨갱이 룸펜 한량 사회(나도 뭐..) 내에서 지역과 하방이 화두였던거 같다. 원래 이거와 관해 엄청 길고 장구한 글을 쓰다 지웠다. 써서 뭐하나라는 일종의 자학적 정서, 자기 무력적 정서가 큰 이유다. 아 아니 더 큰 이유는 게으르다. 그럼에도 다소간의 코멘트는 남겼으면 하는데, 마침 잠이 안오는구만!
2. 난 2013년인가에 통진당을 탈당함으로서 진보정당과의 6년 남짓한 시간을 끝냈다. 20대의 제일 중요한 시간에 "뭐 결과적으로 별거 아닐지라도" 나름 열심히 했었다. 어쨌거나 떠나고, 약간의 부채, 약간의 미움, 약간의 사랑, 약간의 기대, 약간의 불신이 섞인 마음으로 있었고. 우스개 소리로 언젠가는 반성문 쓰고 돌아가야 할수도 있는/돌아가고 싶은데 그렇지 않을거 같은 고향이라고도 했다.
3. 언젠가 부터 낯선 말을 하나 듣기 시작했다. 마포적 경향성. 처음에는 그다지 중요하게 듣지 않았다. 예전부터 문화정치에 대한 불신 같은게 있었고, 적어도 내가 경험하던 기간의 선배들은 그런 류의 운동적 경향-특히 여성, 소수자, 생태 등등-을 주변적 운동, 부수적 운동이라 하며 계급운동 내지 통일운동과 같은 전선운동의 하위 운동이라 여겼고, 그런 의식을 받침하는 조직적 토대가 강하기도 했다. 당시 지금은 볼드모트가 된 dr.카펜터 등등이 이런 이야길 했던거 같다.
그런데 진보정당의 분열과 노동, 농민대중운동과 진보정당의 분리(난 민노당의 성공이 운동 세력 내부의 연합 구축과 전농이나 민주노총이 각기 UR와 노동법 날치기 투쟁을 하며 얻은 대중적 조직적 성과가 중요한 동인이라 봤었다.) 속에서 이런 마포적 경향성은 강해져갔다. 이른바 여성주의의 리부트와 맞춰 말 그대로 거대한 연대의 정치에서 그 내부 조각조각들의 연결, 공통성에 의한 연대가 아니라 무수한 차이를 딛고 하는 연대의 정치로 이행하고 있었다. 물론 그 내적 동력의 성숙도 있지만 정의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의 탈각과 분리들 속에서 새로운 활력의 주체로 이게 부각되었다는게 더 적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정의당의 그런 경험과 별개로, 68과 신자유주의 이후 전통적인 남성-노동계급 중심의 “공통성에 의한”-경제 투쟁-물질 관계에 관한 연대는 도시 여성노동의 주류화와 문화 투쟁, 정체성과 성원권 관계에 대한 투쟁으로 전화 되었다.(아마 얼핏 기억 나기로는흠애하는 콜린 크라우치가 서구 사민주의 정당의 변화를 분석하며 이런 이야길 했던거 같다. 원문을 확인 해봐야할 듯)
그런 의미에서 이런 문화 투쟁-정체성과 성원권 중심의 새로운 경향을 그 자체만으로 폄훼하긴 쉽지 않다. 단지 그 파급력과 확산력의 문제, 유효한 투표와 정당 조직 성장의 유인이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 평가가 필요한 것이겠지.
4. 오히려 민주, 정의 공통으로 우려되는건 지역의 문제, 특히 원외 지역 활동의 문제이다.
다들 당위로 지역(여기서 지역은 여의도, 중앙 정치에 대치되는 개념일수도 있고 더 나아가 서울수도권 제국의 바깥일수도 있으며, 문화 투쟁이 아닌 경제 투쟁 중심의 공간-낙후된 것으로 여겨지는-에 대한 직시일수도 있다.)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다지 녹록치 않다.
구체적인 현실을 검토해보자.
한국 정당 제도는 너무나도 큰 자원분배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는 크게는 정당이 처한 구체적인 법과 제도의 문제로 원내와 원외 간의 자원 분배의 불균등 문제다. 아래는 21세기 초반의 정치개혁특위에서 이뤄진 현재의 정당체계가 서 있는 법적 토대를 만든 주요한 정당법, 선거법 개정 사항이다.
2000년 정개특위 – 지구당 유급사무원 폐지, 중앙당 사무원 150명, 시도지부당 5명
2004년 정개특위 – 지구당 폐지 및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 중앙당 사무원 100명, 시도 5명 이내. 중앙당 및 시도당별 후원회 폐지 후 의원 개인 후원회 설치. 기업 후원 일체 금지.
2010년 정개특위(맞나? 기억이..) - 현행 정당법 30조, 중앙 100명 광역시도당 100명 유급사무원 규정.
사실상 21세기 초 한국 정치의 이른바 개혁 방향이란 것은 저비용 고효율이란 명목 하에 정당이 행사하고 분배 할 수 있는 자원들을 철저히 봉쇄하고 억압하는데 있었다. 대표적으로 음성적으로 ‘내려오던’ 정치자금을 통한 조직 체계를 무너트렸고, 지구당을 부패와 돈선거의 온상이라고 폐지 시켜 버렸다. 그 뿐인가, 정당의 유급 사무원을 200명 수준으로 봉쇄해버렸다. 스스로 베버가 말했던, 정치로써 살아가고자 하는 자에게 정치를 통해 살아갈 수 있게 해야한다는 그 언명이 과거의 개혁 방향은 철저히 위배되었다. 돈 안드는 정치에 대한 강박은 ‘돈 없어도 정치를 할 수 있게’ 하는게 아니라 ‘돈 없으면 정치를 꿈도 못꾸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고, 원외 지역구의 배고픔이란 것은, 그리고 그나마 좀 낫나는 원내 지역구에서도 헌신과 노력에 대해 분배 가능한 자원이란게 턱 없이 부족한게 현재 정당의 현실이다.
그뿐인가, 현재의 정의당 같은 비례 중심 정당은 지속 되기 위해 지선과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들이 지속적으로 나와주어야 하는데, 이들과 이들을 뒷받침하는 이들에 대한 지속 가능한 보상 체계라는게 사실상 부재하다. 일부 대구의 몇몇 선배들처럼 중앙당 당직자로 올라가는 것 정도 외에는 그들이 당 전체의 성과를 위해 부담한 경제적, 물질적, 정신적 노고에 대한 헌신을 당이 보상 할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다 봐야한다.
5. 지역으로 가자. 좋은 말이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지역으로 가서 생활 정치 하자는 말이 그저 예쁜 당위가 아니라 구체적 실현 가능한 미래가 되려면 만들어야 하는 법제도적 조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 가운데 돈(조직)과 자리(생계)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만큼 중요한 문제가 없다.
적어도, 다양한 형태의 지구당 제도(사무실과 1명의 사무원 정도라도)의 부활이나 의원 정수 확대를 바탕으로 한 권역별 비례대표제(연동형은.....) 같은 것들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저 서울의 한낱 고학력 한량들의 담론을 욕하는것도 중요한데, 그것과 다른 길을 가기 위한 조건들을 살펴보는 일은 더 중요하다. 그런데 다들 뭐 하방, 지역....어떤 면에선 낭만적으로 말하고 당위적으로 말하지만, 현실은 녹록치가 않다. 적어도 각 당의 원외 지역에서 헌신하는 이들이 아사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ㅋㅋㅋㅋㅋ(여기서 아사는 상징과 은유가 아니다....).(덧. 이 지점에서 나오는 한국형 엽관주의 문제를 언급하면...아침이겠지)
6. 결국 장치에 대한 대중의 의도된 오인과 자의적이고 편향적 인상과 정치 개혁의 실질적 방향이 너무 다르며, 이 문제에 있어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양반이 안 보인다. 청문회나 대통령제 등등. 아마 다 공감 할
탠데...
덧.
이와 엮어서, 최근 민주당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전 대선 주자께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를 구별치 말고 합치자 이런 이야길 하신 모양인데, 대의원 마저 없으면 원외 지역구 특히 대구경북강원 같이 당원수가 적은 지역은 N분의 1 대접도 못받는다. 대의원이라는 지역 균등 대표제라도 있으니 당대표 후보나 최고위원 후보들이 와서 뭐 듣는 시늉이라도 하지.
이상 변방 잡놈의 동네 직업으로의 정치론...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