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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미셸 Michelle May 28. 2024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간다는 것

2024.05.28 - 우리를 위한 다정한 글 02

신명나게 다시 글을 써보자고, 글을 써놓고 무려 1년 반 만의 새 글이네요...

저와의+독자분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 면목이 없고, 

혹시나 제 글을 기다리신 분들이 계셨다면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래도 이해를 구하고자 간략히 서술하면,

솔직한 심정은 회사를 다니면서 글쓰기를 병행하는 일이 여러 방면에서 부담이 되었었습니다.


세상에 도움 되자고 써내려 가는 글들일 뿐인데 누군가에게는 시기와 질투가 될 수도 있고,

솔직한 심경 공유가 괜히 좋지 않게 이용될 수도 있는 지점을 생각하면,

정글 같은 사회 생활에서 글쓰기가 마냥 좋은 일이 아니더라구요.


(제가 어떤 좋은 의도를 갖고 있든, 의도와 상관 없이

누군가에게는 불필요한 먹잇감도 될 수 있는 게

저술 활동임을 뒤늦게야 깨달은 듯합니다 ^^ㅎㅎ...)



왜 많은 작가분들이 새로 이직하시고는 더 업데이트가 없으실까,

이직 전에는, 혹은 취준생 시기일 때는 저도 남모르게 서운한 마음을 갖기도 했었는데,

물론 저 또한 야근이 많아지고 절대적인 업무 양이 많아져서 몸도 마음도 지쳐,

비오는 창 밖을 바라보며 비야 더 내리라고~ 감성에 젖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에는 앞서 말한 이유도 있었다는 생각에 느낀 점도 간략하게 공유해 봅니다.


그럼에도, 제가 가장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던 때와 써나오면서 성장했던 때들의 초심들을 돌이켜보며,

또 제 나름대로 다른 이들에게 힘을 주고자 시작했던 글쓰기로,

개인적으로 더 감사한 관심을 받아 감동하고 치유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그간 마음 속에 새겨온 깨달음들을 공유해 봅니다.





1. 이 세상에 ‘절대적인 천국’은 없습니다.


제가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며 다니고 있는 지금의 기업도,
(물론 복지나 회사 근간이 되는 마인드, 배울 것들이 늘 많은 것 등)

좋아하는 면들이 있는 만큼, 다니면서 계속해서 고민해야 되는 지점들이 많습니다.


매일 업무 내외적으로 새로운 숙제들이 생겨나고,

매순간 다양한 높낮이의 고민과 선택의 기로들 앞에서 

그저 어떻게든 내 가치들을 지키고자 노력하며,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돈’이나 ‘자본’이 전부가 아님에도,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려면,

내가 생각할 때는 가장 떳떳하거나 만족스러운 지점까지는 충족시켜야

그와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이상적으로 건강한 사회나 사람들과의 관계나 생태계는 어떤 것들일까 고민도 합니다.


그저 바랄 뿐인 지점은, 내가 계속해서 배워나가는 사람이라는 개인적인 성장에 대한 기준을 놓치 않는 것,

내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인연들에게는 나 또한 계속 자극을 주고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이고자 노력하는 것,

지속해서 상처가 되거나 가치관이 너무 다른 이들과는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거나, 할 말은 하고,

나와 내가 아끼는 관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더 배우고, 더 강해질 수 있게 노력할 뿐인 것입니다.



2. ‘절대적인 행복’ 또한 없는 것 같습니다.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서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하는 것,

가고 싶은 외국계 기업에 가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일 하는 것,

내가 바라던 모습의 사람이 되는 것 등등 이루고 싶은 게 정말 많았고,

실제로 대다수는 운이 좋았지만, 몰두하는 시간 외에는 

다른 사람들은 즐기는 평범한 삶의 순간들을 포기도 많이 했기에

지금까지는 여럿 소망하던 바를 이루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여러 목표들이 절대 골인 지점이자 삶의 끝도 아니었고,

그것들을 이루기 위한 과정들이 늘 아름답거나 편안하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루어 낸 이후에는 계속해서 새로운 숙제들이 다시 펼쳐지는 걸 보면서 배운 건,

'목표'가 의미하는 건 결국 ‘새로운 차원의 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깨달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겁의 퀘스트들이 펼쳐지는 게임에서처럼,

우리는 기나긴 인생에서 무수한 차원의 문 앞에 서고,

다시 또 시험대 위에 오르고, 하나의 시험대가 끝나면,

다시 또 여러 허들들을 넘으며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차원을 깨어 나오면, 새로운 차원의 문들이 열릴 뿐,

‘더 편안해지고, 더 안락해지는 것' 그 자체를 목표로 잡는다면,

그거야 말로 사실 영원히 이루기 어려운 허황된 목표가 아닐지 싶었습니다.


물론 그 차원들을 열어 나오면서 각자 숙련되는 개인기 (쌓이는 역량,
차별화 되는 능력치, 전문 분야 등) 는 있겠지만, 
그 조차도 그물망 같이 엮여 있는 관계에 대한 고민이나 

지혜로운 삶을 위한 실천들에 비하면 비교적 쉬운 대상들이 아닌가 합니다.


노력만 하면 성장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건 어쩌면 큰 위안이에요.

노력하더라도 곧 바로 결과가 되지 않는 분야들이 세상에는 더 많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 부유해지는 대로 

순수한 관계에서 오는 교류들에 대한 신뢰가 옅어져 고민할 수 있고,

아직 원하는 것들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는 

갈망하는 것들이 쉽게 잡히지 않는 현실 자체에 좌절하며 

뜬 눈으로 지새우는 밤들에 고민할 수 있습니다.



3. 그래도 엷은 위안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사람은 고민하는 한 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무서우리만큼 빨리 발전하는 AI 기술들 앞에서,

무수히 늘어날 수 있는 잉여 시간들과,

새로운 고민을 계속 안겨주는 빈부 격차 앞에서도 

저는 그래도 ‘내면적 성장’의 편에 서고 싶습니다.


이런 내면적 성장들은 굳이 가시적인 결과 값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고,

경제적인 가치로 당장 치환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옹골차고 끊임 없이 담금질하는, 

개개인들의 노력과 고민들이 지속되는 것,


AI 프로그램이나 다른 자동화 기계들에 

아직 집어 넣지 않은 날것의 사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만의 포물선을 그리는 것.


내 안의 정답 찾기를 매일 포기하지 않는, 

나만의 노력을 이어나가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차원의 문들 앞에서 

우리는 좀 더 용기내어 나아가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게 절대적인 천국도, 

절대적인 행복도 없는 현실이라고 할지라도,


제가 제 스스로의 절대적인 성장 값과 

다른 이들의 절대적인 성장 폭을 

응원하고 지켜봐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은 이유인 것 같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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