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습작(Mr. Hopper’s Balcony)
나와 너무 닮아있어, 체계적인 계획에 의해 미리미리 보다는 즉흥적이고 그 순간에 일어나는 관심과 흥미, 기분에 따르는 “몰입”이 있어야 움직이는 이 성향이 난 너무 불안하면서도 이런 사람의 특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마구 고치거나 교정할 수가 없다. 살아보니 좋은 것들, 그걸 8세였던 아들에게 강요 말라는 “강펀치”를 난 이미 한방 세게 맞던 날을 기억한다.
아들은 맞벌이, 일하는 엄마를 둔 이유로 사립초에 다녔다. 물론 엄마의 선택이었고, 운 좋게 추첨에 합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 엄마가 7시 30분경 식사도 제대로 못한 아이를 셔틀버스 정류장이 우리 아파트 앞이 아니라서 차로 다른 아파트 단지 앞까지 데려다주는 일을 1년 이상 했었다. 그 여말로 아침은 전쟁이었다. 아이도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이 8세 아이에겐 힘든 일이었을 거다. 아침에 짜증스럽게, 힘겹게 일어나는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입안에 가득 맴돌았다. 어느 날 저녁이 돼서야 맘먹고, “아침에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하루를 좌우한다. 그리고 너의 그런 감정이 다른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하루 종일 같은 감정선을 가지게 되니 아침엔 밝게, 기분 좋게 일어나면 좋겠다”라고 말해 버렸다. “버렸다”인 이유는...
“엄마, 엄마는 30년 이상 살면서 경험하고 겪어보고 느낀 걸 저한테 말해 주시지만, 저는 이제 고작 8살이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하더라도, 아무리 이렇게 하면 좋다고 말씀하셔도 8세가 행동에 옮기고 모두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직접 느끼고 체험해서 그걸 알아가면서 바뀔 수 있고, 좋은 것도 8세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이다.
그 날부터 크게 잔소리하기가 뭔가 가슴에 찔리는 순간이 왔고, 최대한 이래라 저래라를 자제하게 되었다. 한 가지 가장 아쉬운 것은 우리 집 두 아이는 동네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인사 잘하는 아이들이었다.
항상 주변 이웃에게 내가 먼저 인사했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가진 큰 재산이 있다.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대부분 마음의 빗장(경계심)을 열고,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면 환한 미소로 화답한다. 어린아이가 갖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재산이라고 얘기해 주었고, 엘리베이터에 타는 이웃에겐 항상 밝게 인사하는 아이들이었다. 인사 하나만으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기쁘게 해 줄 수 있으니 어찌 중요한 능력 아니냐고? 강조했었다. 그때 중학교 친구들이 엘리베이터에 타면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물론 인사하는 이도 볼 수 없었다. 우리 아이는 안 그러길 바라는 나의 초고도의 계산된 노력이었으나, 지금 중학생이 된 아들은 무심한 듯, 어색한 듯 엘베에 타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음악을 듣는다. 실패한 걸까? 다시 그 밝은 초등 8세의 기운으로 인사하는 날이 올까?
얼마 전 학교에서 한 “자기 조절 학습검사” 결과지가 방에 꽂혀 있어서 꺼내 보았다. 학습 수준이나 방법은 보통 이상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학습 동기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었다. 솔직한 스타일이다. 있는 그대로 아직 “꿈”을 찾지 못했다고 어린 시절에도 학교에서 장래희망 그리기나 장래희망, 꿈을 쓰는 란은 항상 공란이어서 선생님께 연락을 받기도 했었다. 어려운 문제다.. 초등 졸업시기에 나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예중 쪽으로 벌써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간 친구들이 대단하기도 하고 부럽다고 했다. 자긴 아직 어떤 꿈을 좇아야 하는지 방향도 잡지 못했는데 말이다’라고.. 그래서 꿈을 찾고 싶으나 아직 못 찾은 것이라는 그 말에 난 더 이상 아이에게 꿈을 강요하거나 이런 게 좋다고 혹시나 선입견이 생길까 봐 말을 조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역시 부모의 역할을 일정 정도 방기한 건 아닌가? 항상 이게 어렵다. 자율적이라기엔 방관인가? 관심과 돌봄이라 하기엔 간섭과 강요인가?
나 역시 늦게, 아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그리고 어린 시절 꿈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 어떻게 보면 와 있다. 그래도 요즘에는 조금씩 “저작권”이나 뭔가 창작을 해서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리는 그 무엇인가면 어떻겠나?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아들의 특성상 몰입도 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만들어 내는 아이디어는 아직 닫히지 않은 장점이 있어 보인다. 특히 어릴 때는 미술을 참, 아니 그리기를 참 잘했었고, 청음 능력이 뛰어나서 요즘도 악기를 가리지 않고 듣기만으로 음을 맞추는 것은 곧잘 한다. 듣고 바로 피아노로 치는 것도 신기하기만 했었다.
이렇게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아이 었다. 자유분방함과 탄력성(융통성)이 떨어지는 것도 어찌 나를 꼭 닮았다.. 그래도 나와 다르게 이렇게 그림에서라도 맘껏 자신을 펼치는 아이가 나는 너무너무 멋져 보였고, 그래서 난 항상 시험지 모퉁이 그림조차도 너무 소중해서 모아 두고 찍어두고 했었다. 엄마는 너의 그림 1호 팬이야!! 이런 모토로~
이러던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창작하고 그림 그리는 걸 무지 즐겨하던 아이 었다.. 친구들에게도 참 많이 그림을 그려서 나눠줬었고, 뭔가 똑같이 따라 그리는 것은 따로 미술학원의 정규 과정을 배우지 않았지만 소질이 있어 보였는데.. 이젠 그림이라는 걸 거의 그리지 않는다. 못 본 지 오래되었다.
게임과 음악, 유튜브가 온통 점령해 버렸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엄마, 난 아직도 인쇄된 책을 사는 것에 너무 신나 하고 그런 책을 수집하는 것, 나만의 큐레이션 된 책장을 하나하나 채워나가는 엄마가 보는 그 세상은 한편으로 안타까움도 많다.
일하는 엄마, 회사에서 책임감을 다하기 위해 너무 열심히 살아야만 했다. 여유를 부리면서까지 내게 주어진 일을 내가 만족스럽게 할 수가 없었기에 시간은 항상 부족했고, 회사에 남는 일이 많았다. 직급이 올라가면서는 더더욱 책임지는 자리가 되고, 직원을 관리하는 관리자, 리더가 되면서는 더더욱 버거움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집에 오면 빨리 아이들의 상황을 체크하고 신속하게 성과를 내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 엄격한 엄마이기를 난 선택 했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인 것만 같았으나, 지금 돌아보면 아직도 그게 옳은 것이었는지 자신은 없다. 아이 아빠는 출퇴근을 멀리하기에 밤늦게 오고 아이들과 더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그냥 ‘파라다이스’로 남겨주고 싶었다. 아빠라는 존재는 항상 아이들과 엄격보다는 가까운 존재로 부모 중 누군가는 숨 쉴 구멍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젠 중학생이 되니, 엄마가 할 수 있는 범위가 여기까지인 거 같다. 원래도 수다스럽지 않았으나 더 말수가 줄었다. 이전에 엄격했던 나 때문인 건 아닐까? 항상 그런 부분에서 밝고 명랑한 중학생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난 그 부분에선 실패하고 만 것 같다. 아직 결론까지 내긴 이르지만 말이다.
자기 조절 학습검사에서 ‘시험불안’이 아주 높게 나왔고 동기유발이나 긍정 정서가 낮게 나왔다. 아이에게 내색은 안 했지만 인지력과 자원 활용은 아주 높게 나왔지만 정서적인 측면에서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되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 큰 숙제이자 학습에 대한 즐거움과 보람을 찾아주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일인 거 같다. ‘시험불안’이 마음에 걸려 아들 학원 마치고 데리고 오는 길에 조심스레 시험불안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그런데 뜻밖에 대답이, 너무 의젓한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 시험불안은 꼭 부정적인 기능만 하는 건 아니에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어요. 긴장감이 있어서 다양한 난이도의 공부까지 준비를 하게 되고, 막상 시험에서 쉽게 나오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긴장을 좀 많이 하는 편인 거 같긴 하지만 저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다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는 거다. 나에게 수치에 대해 걱정 너무 많이 하지 말라는 위로일까?
앗!! 8세의 그때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나보다 어른스러운 생각과 답이다.
시험은 항상 긴장되는 일이지만 시험을 못 볼까 봐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시험은 우리가 공부한 것을 알고 있나? 확인의 의미가 더 크고 시험을 못 보면 공부한 만큼 성적이 안 나오면 본인이 가장 속상한 것이니 너의 마음만 잘 조절하자고~
혹시라도 엄마, 아빠의 기대 이런 부분이 불안요소에 들어간다면 그건 좀 가볍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시험 결과는 아들을 사랑하고 응원하는데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부모에게는...
그렇게 우리는 성장해 간다. 엄마도 엄마로, 아들도 아들로..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