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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여 Dec 21. 2023

Connecting dots

올해 한 해 진한 점 하나를 찍었다.

마지막 글이 2022년 7월이었네. 그해 11월, 내 생일 이틀 전에 정리 해고를 통보받았다. 매주 있던 회사 전체 미팅의 끝자락에 분위기가 갑자기 무거워지더니 인원감축 계획을 발표한다. 미팅이 끝나고 서로 바쁘게 슬랙 메시지를 주고받던 차 HR이 개별 미팅을 요청해 온다. 아 내가 걸렸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먹고 미팅에 참여하니 아니나 다를까 기나긴 변명과 함께 알리는 정말로 너무 일방적인 해고 통보. 와 이건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분노, 실망, 한편으로 잘 되었다 싶었던 일종의 안도감이었다.


Up in the Air (2009) firing scene 과 같았던 그 순간. HR 둘다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회사가 가진 문제는 처음부터 너무 명확히 보였다. 프로젝트의 순환 속도에 비해 인원을 충당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고 뉴욕 오피스, 리스본 오피스니 몸집을 불리는 데에 너무 초점을 맞췄다고 느껴졌는데 심지어는 그렇게 채워진 인원의 리소싱조차 제대로 이루어지고 않았다.


거기에 더해 경제 불황으로 프로젝트의 순환이 예상보다 훨씬 느렸고 그만큼 돈도 제대로 안 돌고. 그 문제를 뚫고 나아가려니 인원감축을 피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간 거다.


그 끝맺음을 내 의지로 맺은 게 아니라는 것에 화가 나는 거지 어찌 보면 나는 일 년 반쯤 후에 있을 거라 예상한 자리에 이미 서있는 상황이 된 거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순간부터 이미 여긴 오래 있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곧 다른 곳으로 간다고 생각해 왔으니 느꼈던 차라리 잘됐네 싶었던 이상한 안도감.


그렇게 작년 11월 나는 갑작스럽게 닥친 변화 속에 재 정비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할 일은 너무 많았다. 프로덕트 디자인 분야의 구직활동은 처음이었기에 일 지원에 앞서 프로덕트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새로 구축해야 했다. 포트폴리오가 준비되자 그에 따른 피드백을 얻으려 여기저기 보여주고 조언을 많이 구했다. 매 대화의 끝에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너무 잘 보였고 어떻게 나아갈지도 잘 알았다.


사실 제일 힘든 것은 자꾸 바닥으로 가라앉는 나의 정신 상태를 제대로 붙잡는 것이었다. 산산조각 나버린 자신감과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다시 끼워 맞추는 일. 지금의 나까지 오는 여정을 모두 부정적으로 보게 하고 오늘 하루를 나아가게 하는 정신력조차 저 멀리 차버리는 못된 것.


하나를 잃고 많은 것을 얻었다. 힘든 상황에서 기꺼이 내게 시간을 써준 고마운 사람들은 곁에 남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떠났다. 포트폴리오 정비와 인터뷰 준비를 하며 앞으로의 방향이 훨씬 명확해졌고, 1월부터 본격적으로 줄기차게 지원한 일들. 답장조차 없는 곳이 다반사였지만 결국 1월 말 최종 인터뷰까지 갔던 세 곳에서 잡 오퍼를 받았다. 그 세 곳 모두 나의 이전 경력, 가치를 높게 쳐 주었고 나 자신이 보지 못한 내 가치까지 알아주는 곳이었다.


난 칭찬을 먹고 자라거든

그중에 내가 그리는 방향에 제일 잘 맞는, 많이 성장할 수 있겠구나 싶은 곳의 오퍼를 수락했고 일 년간 정말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아직도 계속 익숙해지는 중이고 배움에는 끝이 없지만 그 속에서 계속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참 복이지 싶어. 지난 한 해 참 열심히 했다. 수고 많았어 나 자신.

매거진의 이전글 첫 글로부터 약 3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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