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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고양이 Jul 01. 2016

느리게 걷다, 듣다

- 브로컬리너마저 '천천히' 

아침 7시, 알람에 눈을 뜬다. 

이때부터 초단위로 시간을 세기 시작한다. 

20분내에 샤워를 끝내야 한다. 머리 말리는데는 딱 5분이 주어진다. 

어제 대충 머리속으로 그려놓은 옷을 입어 본다. 

내가 상상한 그림이 안나오면 그땐 끝이다. 분명 옷장 앞에서 10분은 더 쓸게 분명하고, 

그럼 아침을 포기하거나 10분 늦게 버스를 타야 한다.

다행히 크게 나쁘지 않았고, 옷을 입고, 스킨과 로션, 선크림을 바르는데 5분 정도를 더 쓴 후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 후다다닥 밥을 먹고 버스타러 나선다. 


꾸물꾸물 비가 올 것 같은 날씨. 

이런 날씨에는 산울림이 제격이다.

'내게 사랑은 너무 써', '추억'을 거쳐, '동화의성'까지 가사를 곱씹는다. 

이어폰을 꽂아 산울림을 들으며 걷자니, 걸음이 느려진다. 

그리고 되뇐다. 

"까짓것, 인생 뭐 있다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하나 제대로 못들어서야."


음악에 맞춰 걸음을 늦추며 걷자니 옆에 꽃도 보이고, 청소하는 경비아저씨도 보이며, 아파트를 나서 학교 앞을 지나갈땐 가볍게 목례만 나누던 학교지킴이 아저씨도 보인다.

버스앞 유리창에 붙어야만 탈 수 있는 만원 버스를 몇 대 보내고 버스에 올라 창밖을 본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음악만 듣는다.  


선곡이 바뀌어 브로컬리너마저의 '천천히'

갑작스레 눈물이 차올라 고개돌려 숨은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돌아가는 길은 너무 멀고

눈물이 차 오는 건 참 급해

서두르면 쏟아질 것 같아

천천히 걸었네


좋았었던 날은 너무 짧고

불행이 다가 오는 건 급해

서두르면 넘어질 것 같아


천천히 걸었네

천천히

눈물이 마를 때 까지

천천히 걸었네 


그래 한번쯤은 천천히, 느리게, 곱씹어 가사를 보고, 또 보고.

음악을 천천히 듣고 또 듣고.

안보이던게 보이고, 안들리던게 들리는.. 

천천히 살아보기. 느리게 살아보기. 


까짓 인생 뭐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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