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프롷 Jan 23. 2018

울다웃다

그것만이 내 세상

영화를 보면 볼수록 갸우뚱 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냐?" 영화를 두고 평하는 사람마다 나름의 기준이 있을텐데, 저는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개봉작을 매주 한 편 이상씩 본 지 2년이 다되어 가는데도요. 영화를 많이 보면 볼수록, 영화를 둘러싼 내용을 많이 알면 알수록, 칭찬의 기준이 높아지고 까다로워지는 것 같아요. 그게 바람직한 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제 나름의 기준을 정해야겠죠. 제가 영화평론을 업으로 할 건 아니니까. 저는 어디까지나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일 뿐. 다른 사람의 영화를 요리삼아 인기를 끌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영화 팟캐스트를 만들고 있으니, 이런 제 의도와 상관없이 이미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기준이 중요합니다.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각자 반응하는 지점은 다 다르잖아요. 

영화를 볼 때 제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소는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잘 짜여진 이야기인가. 2시간 남짓 영화를 보는 동안 얼마나 궁금한가. 배우들의 연기에 얼마나 빠져드는가. 이야기가 촘촘하지 않아도 스타일과 느낌, 분위기로 압도하는 영화가 있긴 하죠. 하지만 그건 적어도 제 스타일은 아닙니다. 저는 꽉 찬 이야기가 좋아요. 제가 정의하는 <영화는 곧 이야기>라서.


그 기준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절반 쯤 성공한 것 같아요. 한물 간 전직 복서가 오래전 헤어졌던 엄마와, 장애를 가진 동생을 만나서 한단계 성장한다는. 이야기의 전체적인 설정 자체는 좋았습니다. 잔잔한 감동과 깨알같은 유머가 담겨있겠구나 싶어 기대도 했고요. 무엇보다 예고편 느낌이 너무 좋았거든요. 간만에 빵빵 터질 준비를 하고 극장을 찾았습니다. 어땠냐고요? 뭐. 늘 그렇듯. 기대가 크면. 쩝.

멀리는 레인맨이나 말아톤부터, 가깝게는 형이나 부라더까지. 낯설지 않은 소재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병헌과 박정민, 윤여정의 연기는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윤여정의 사투리가 조금 어색한 것이 걸릴수도 있겠으나, 그마저도 '와 정말 엄청나게 연습 했겠구나' 싶어요. 그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배우들 연기만큼 능수능란하진 않습니다. 호날두와 메시가 풋살장에서 뛰는 듯한.


큰 줄기의 사건을 따라 가면서 인물들이 우여곡적을 겪는다기 보다는,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각각의 인물이 간신히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연기가 허술했다면 구멍으로 느낄만한 부분이 없지 않은데,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이를 메워줍니다. 끈 떨어진 백수 복서 이병헌의 연기는 내부자들의 백수 건달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죠. 속깊은 진지함과 선량함이 묻어나거든요. 정말 훌륭한 배우 같아요. 이병헌은.  

박정민의 피아노 연주 또한 볼만합니다. 정말 열심히 연습했대요. 피아노를 칠 줄 모르던 친구나 속성 연습으로 만들어 낸 실력이라 하니, 사전에 그 내용을 알고 보시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네요. 반가운 얼굴들도 여럿 나옵니다. 문숙, 조관우, 김성령, 한지민... 영화 보는 내내 관객석을 유심히 살폈는데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지점에서 웃다가 울다가 그러더군요. 특히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은 더더욱. 


2017년~2018년 겨울 극장가의 키워드는 아무래도 '엄마'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소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다른 영화들과는 또 다른 지점을 공략합니다. 그게 얼마나 유효할 지는, 각자 가지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좌우하겠죠. 잔잔하고 소소하게 웃고 우는 영화를 찾는 분들께 권해 드립니다. 울었냐고요? 저는 안 울었어요. 후후. 


p.s. 죽기 전에 꼭. 이병헌과 영화를 찍고야 말겠어요. ㅋ



매거진의 이전글 능수.능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