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ve and Take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가족을 제외하고 세상사 대부분이 주고 받는 일이라는 걸. 내가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내 손에 무엇이 있는가로 내 가치가 매겨지는 거죠. 큰 회사에서 월급을 받을 때는, 그걸 느낄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안팎으로 적당한 대접을 받으니까요.
하지만 호랑이 등에서 내리고 나니, 사람들과의 관계가 훨씬 더 선명해졌습니다. 예전부터 알던 경우는 조금 덜한데.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은 거의 예외가 없어요. 서글퍼 할 일이 아닌 거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럴테니까. 누구도 대놓고 묻지 않는 질문. 허나 관계가 얼마나 빠르게, 깊이 진전될 것인가를 가르는 그 질문.
그래서. 당신은 나한테 뭘 줄 수 있는데?
기사 쓰고 월급 받을 때는 몰랐어요. 내가 뭘 가졌는지. 뭘 할 수 있는지. 사실 누구한테 솔직히 꺼내놓을 수 없는 공포이기도 했는데. 그게 두려움이라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내 손에 뭐가 없다'는 걸 의미하죠. 한동안은 '나는 전략가, 기획자 스타일이다. 큰 그림 그리는 일을 잘한다.'는 식의 택도없는 말을 했던 거 같은데.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이야기인지 깨닫는데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가설을 세우고, 밑그림 그리는 일은 사실 누구나 잘합니다. 영어 공부, 수학 공부를 잘해보겠다며 방학계획 세우는 거랑 똑같아요. 계획이 아니라 실행과 반복이 문제에요. 흥분하며 계획을 세우던 10명 중 7-8명은 실행 단계에 접어들자마자 나가떨어집니다. 우직하게 그걸 돌파하는 일이 그만큼 어려운 거겠죠.
남에게 무언가 줄 수 있는 <나만의 것>을 만드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게 독보적이고 유일무이한 것일수록, 더 오랜 시간이 걸리죠. 지금 내 손에 뭐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면,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그 시간을 잘 견디고 버텨야 합니다. 그리고 그게 만들어 지는 동안 '있는척' 하려는 유혹을 떨쳐야 해요. 사실 보는 사람들은 다 알거든요. 말을 안 해 그렇지. 포장이 중요한 순간은, 내용물이 만들어진 다음입니다.
방송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제가 반복하는 이 일들은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지만, 나만의 독보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물론 비록 지금은 보잘것 없고 볼품 없지만. 묵묵히 이 시간을 지내고 나면 제가 가진 것들도 '꽤 쓸만해질' 때가 오지 않을까요. 지난한 행보를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 참 다행입니다.
오늘도 힘을 내서 한 번 달려볼까요.
인생 뭐 있나요.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