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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Mar 29. 2024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


오래되었지만 미래의 이야기들

듀나,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읻다, 2024)




구시대의 미래에 닿지도 못한

지금에서도 꿈꿀 수 있는 미래의 이야기


읻다 출판사에서 얼굴 없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 듀나의 30주년 데뷔 기념 초기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컴퓨터가 처음 대중에게 전파되었던 시절, 하이텔 과학소설 동호회에 짧은 단편을 올리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듀나의 작품을 드디어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미발표 데뷔작이자, 이 책의 표제작인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가 수록되었으며, 어떤 작품들은 단행본 최초로 공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양장으로 만들어졌으며 디자인에는 이지선 북디자이너가 참여했다. 표지에 이름을 뺀 파격적인 디자인과, 듀나의 아이덴티티인 토끼, 90년대부터 발표된 소설이라는 점을 강조한 뒤통수 큰 컴퓨터를 표지 디자인으로 내놓았다. 세네카도 각진 폰트를 사용했으며 책배나 위아래로 기념 단편집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디자인이 되어 있어 읽는 맛을 더한다. 그리고 내지는 소설 한 편 당 듀나의 설명이 더해져 독자의 독서에 재미를 더한다. 여러모로 과학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작품집이 될 것이다.


최근 마감한 책은 과학사 책이다. 과학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내가 과학에 입문하게 되면서 은근히 과학도 재밌는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을 여행하려면 알아야 하는 양자물리학이나 우주 탐험이 독일의 우주 여행 회원들의 욕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거나 하는 후일담을 들으면 과학도 문학처럼 재미가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왜 자꾸 과거나 미래로 가고 싶다거나 우주를 탐사하고 싶어 할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만, 무언가를 알려는 마음에서 비롯될 것이다. 지금도 이러한 것들에 과학적인 설명을 하려면 힘이 들겠지만, 컴퓨터가 상용화되기 시작했던 90년대에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뒷받침할 자료도 부족하니 사람들은 더 애썼을 것이다. 한국의 SF 소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시작된 듯하다. 타임 머신이나 외계인 등 지금은 한물 갔다고 할 수 있는 소재들이 당시에는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부족한 근거를 기쁘게 꿈꾸는 자유로 채운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주자가 바로 듀나다.

나는 듀나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앞에서도 밝혔듯 과학을 좋아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처음으로 읽은 과학 소설이 김초엽의 단편이었던 것 같다. 나의 SF는 2020년에 시작된 것이다. 나와 듀나 사이에는 30년의 간극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듀나라는 이름을 들어봤어도 무엇을 먼저 봐야 할지 모르는 내게 읻다에서 출간된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는 정말로 나비가 타임머신을 타고 내게 날아와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표제작에서는 과거로 날아가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는 타임머신에 붙어 있던 나비 한 마리가 과거에 남겨진 것을 꿈에도 몰랐다.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 중에서


(이번 서평에도 최대한 내용은 배제하겠다)듀나의 입문으로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는 기묘하다. 어딘가 과학사 요약 같기도 하고, 픽션이라는 점에서 소설이기도 하다. 듀나는 서구 철학사와 과학사를 섞어 썼다고 밝혔던 만큼 조금 지루하게 보이기도 한다. 복잡하지 않은 서사 구조에 이후의 단편 몇 개는 비슷하게 단순하다. 하지만 듀나의 초기 소설에서 재미를 찾으려면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 하이텔 시절 당시의 사람들이 꿈꾸거나 생각하던 미래가 이러한 모습이고 지금은 아주 많이 다르며 생각보다 크게 발전하지 않은 듯한 점이 나에게는 조금 재미로 다가왔다. 이러한 재미는 듀나의 해명 같은 설명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과학 소설이라고 해도 모두 같은 과학 소설이 아니듯이 「장례식」이나 「렉스」 같은 소설을 읽으면 또 느낌이 다르다. 몇 개는 취향이 아니고 몇 개는 취향이다. 취향인 몇 개에서 어쩌면 당신만의 듀나가 재탄생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1994년부터 2009년까지 썼던 단편 21개를 모은 만큼 책은 두껍고 독특하다. 시간에 따라 듀나가 자꾸만 달라진다. 더 구체적이고 독특한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좋은 편집과 디자인이 더해졌기에 처음 듀나에 입문하거나 나처럼 SF 문학에 초행길을 걷는 독자라면 충분히 읽을 만하다. 어차피 듀나 독자라면 다 읽었을 테니까, 듀나를 모른다면 이 책으로 듀나를 만나도 좋겠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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