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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in Chung Apr 05. 2023

성장이란 무엇일까

성장하고 싶어요. 에 대한 반문

강박에 가깝게 '성장'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입니다. 지난 10년간 사업과 그 전 10년의 직장생활, 그리고 전반적인 삶을 돌이켜 봤을 때, 저는 성장이라는 것은 한 개인이 살면서 접하는 다양한 변화 중 한 가지 종류에 해당할 ’뿐이다‘라고 생각이 됩니다.


진화의 한 부분입니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좋거나 힘들었던 새로운 경험을 통해, 환경의 변화에 의해, 다양한 종류와 강도의 외부 충격이나 내적 갈등을 통해,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나의 정신적, 육체적인 면이 계속 변하겠죠. 내가 특정 부분을 바꾸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일부러 나를 특정 환경에 노출시키거나 무언가를 시도하는 경우가 있고,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주변 환경을 따라 살다보니 자연스레 발생한 변화도 있을 겁니다.


‘성장’은, 이러한 변화들 중에서 무언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를 바꿔주는 변화를 표현하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이 ‘더 나은 방향’도 판단하기 나름입니다.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전문가? 더 지혜로운 사람? 더 끈기있는 사람? 더 나은 체력?. 누구는 맨날 싸우던 동생과 안 싸우는 법을 터득한걸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겠고요, 영화 속 킬러의 세계라면 머뭇거림 없이 Kill 할 수 있는 마인드를 터득하면 '너 킬러답게 성장했구나'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때론 지금 겪는 게 성장과 무관한 거 같은데 나중에 이게 필요한 순간이 되어보니 성장한거였네 라고 느끼는 경우도 있고, 지금 겪는게 성장과 연결되어 있다 확인해서 열심히 했는데 지나고보니 쓸모없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장의 정의는 어렵습니다.


누군가 ‘저 성장하고 싶어요’라고 할 때, 그게 정말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 물어보면 막연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면접과 면담의 단골 키워드도 성장인데, 대부분 ‘나도 뭔진 모르겠지만 여튼 성장하고 싶고 성장시켜주세요’인 경우가 많았어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성공’이라는 두루뭉실한 큰 틀 안에 나를 대충 끼워 맞추고, 이걸 향해 가는게 성장이라고 막연하게 바라는 건지도 모릅니다. 


내가 원하는 성장이 무엇인지 이해가 중요한 이유는, 그냥 자연스럽게 내버려 두었을 때보다 빠르게 성장을 하려면 성장통이라는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데, 내가 이 성장통을 왜 겪어야 하는지를 납득하지 못하면 그냥 무의미한 고생으로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매 고통을 성장이랑 연결 지어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인생에서의 성장은 웨이트트레이닝처럼 딱 한 부위만 정해서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Connecting the dots’이라는 표현처럼, 살면서 겪은 많은 것들(Dots)이 인생 중간중간에 연결(Connecting)되면서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엇이 나중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어요. 시간이 지난 후에 역으로 꿰어 맞추면 특정 경험이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라고 합리화 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성공한 사람/회사들의 자서전이 그럴싸 해 보이고 가슴뛰게 하는 반면, 나에게 주는 실질적 변화는 별로 없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걸 두리뭉실하게 이해하면 ‘이 길은 아닌 것 같아’라고 하면서 중도 포기하고 자꾸 새로운 걸 찾아 옮겨다니게 되고, 남과 환경 탓을 하게 됩니다. 직업인으로서의 성장만 놓고 본다면, 그나마 히스토리가 쌓여있고 다수의 워너비 인재들을 배출해 낸 기업에 들어가고 그 안에서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대략 이런 인재가 되는 거겠구나를 기대하고 버틸 수 있겠지만(반대로, 아 여기 계속 있다간 저 분처럼 되겠구나라는 안 좋은 결과가 확인 가능하면 나가야겠지만), 업력 짧은 스타트업들의 경우 그 회사 안에서 시작되고 결실을 맺은 성장 결과물의 샘플이 사내에 부족하기 때문에 신념이 약한 분들은 쉬운 이직으로 이어질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스타트업에 처음 조인하는 분이라면 창업자와 마찬가지로, 과정에서 굴곡이 있더라도 버틸 이유가 꽤 명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일단, 내가 현 시점에 원하는 성장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의 Soul Searching을 끊임없이 하면서 업데이트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일에 부딪혀서 나의 강점, 약점, 스타일을 직접 느끼고요. 자문을 구해도 좋은데, 그것도 그들의 제한적 경험에 따른 생각일 뿐이라서, 결국 최종 판단은 본인이 해야 한다는 건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좋은 판단은 누구에게나 어렵죠. 그래서 저는 너무 정확한 판단을 하려고 선택을 미루거나 매사 계산적이 되는 것보다, 너무 모든 걸 성장과 연관 짓지 않도록 좀 편하게 마음을 가지길 권합니다. 대신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내가 원하는 성장과 그걸 위한 환경이 무엇인지를 를 정할 '더 현명한 판단력'을 쌓아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연이나 책이나 멘토에게서 쉬운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요. 강연 들을땐 아하 싶지만 그걸로 인생이 바뀐 사람은 드뭅니다. 


어떤 회사를 들어가서, 누구한테 배우면서, 저 사람처럼 하거나 이런 걸 배우면 성장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개개인별로 customize하긴 어렵습니다. 출중한 사부님 맘에 어쩌다 쏙 들어서 그 분이 거두어 평생 키워주기로 작심해서 고수로 거듭나는 경우도 현실세계에선 드뭅니다.(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호오오옥시 모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잘 하기 위한 성장“의 측면에서 제 경험 내에서 중요하다 생각되는 부분을 설명해 봅니다.


일반적으로 잃을 게 적고 체력이 좋은 20-30대 때, 주변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의 많은 또는 어려운 일에 자신을 몰아세워서 나의 뇌와 신체의 Capa를 폭발적으로 증폭시키는 기회를 가지면 좋습니다. 이를 통해 꼭 남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도 높은 기준을 세우고 몰아세우는 법을 배웁니다. 기본 배기량과 RPM(엔진회전수)의 한계를 크게 키워 놓으면 그 안에서 엔진을 혹사시켜도 부담이 덜하고, 당황하지 않고,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 찐 경험들이 몸에 축적되면, 상황에 맞추어 폭발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법, 일정 수준의 강도와 기간을 버티는 법, 이를 버텨낼 수 있는 정신력과 체력이 언제든 끌어 쓸 수 있게 준비됩니다. 국가대표 운동선수였던 사람이 동네에서 놀면 수월하게 ‘양민학살’ 할 수 있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이를 통해 진짜 연봉 값을 해야 하는 시니어의 시기에,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필요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건 어느 환경에서나 써먹을 수 있고 나만의 능력입니다. 어디를 가서 무슨 일을 해도 기본 이상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쌓는 겁니다. 이게 가장 큰 직업안정성입니다. 


좋은 회사, 좋은 상사/멘토, 좋은 동료는 이런 노력이 엄한 삽질이 되는 걸 줄이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저는 사업을 하면서, 맥킨지/베인 시절의 몇 가지 순간 만큼 힘들었던 적은 몇 번 없었습니다. 컨설턴트가 세계 최고로 힘든 직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 때는 더 어리고 미숙했기 때문에 똑같은 상황에서 더 힘이 들었겠죠. 어쨌거나 체감 힘듦은 그 때가 최고였습니다. 그래서 사업하면서 힘들다 싶은 때가 와도 "그 때에 비하면 괜찮은데?"가 가능했고, 사업이 힘들다, 사업하시는 분들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저는 늘, "직장인도 직장인 나름이에요. 사업하는거보다 빡센 직장인도 많거든요. 스트레스의 종류가 다를 뿐" 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런 "성장을 도와주는 빡센" 경험을 가지려면 적어도 이 기간 동안에는 다른 것들을 많이 포기하고 줄여야 가능해집니다. 하고 싶은거 다 하면서 성장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게 이 때문인데, 일단 같은 기간 내에 절대적인 시간의 양을 충분히 투자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예컨데 법정 근로시간 내에서만 딱 배우려고 하는 건 성장에 큰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익숙한 일상적 업무의 반복이 대부분인 근로시간만으로 남보다 빠르게 성장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업무는 당신의 성장을 위해 설계되어 있지 않습니다. 운동 선수로 치면 근무시간은 본 경기 뛰는거구요, 그 외의 시간에 "훈련"을 하는 겁니다. 훈련 없이 경기만 뛰어서 성장하려니 더디지요. 특히 운빨이라도 어쨌거나 나보다 더 좋은 학벌을 가지고 더 좋은 직장으로 첫 단추를 꿴 사람들이 더 좋은 코치들에게 배우면서 일주일에 100시간씩 쏟아붇고 있다면? 몇 년만 지나도 격차가 엄청납니다. 근데 이렇게 하라고 강요할 순 없지요. 각자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워라밸 지키면서 빨리 성장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장을 위한 고통을 선택할때, ROI를 심하게 따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더 노력해서 성장해봐야 오를 연봉의 폭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의욕이 안 생기고, 얼마 더 받을 수 있을지 확실해 지면 그 만큼만 노력하고 싶고요. 즉 보상이 확실하지 않으면 노력할 의지가 안 생기는 경우인데, 저는 받는 돈에 맞추어 노력하는 사람치고 본인이 기대하는 성장을 얻는 사람을 적어도 제 주변엔 본 적이 없다는 말을 감히 드리고 싶습니다. 성장하는 분들은 계산적이지 않고 무조건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지금의 고통이 회사를 위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거고, 이를 위해 희생할 걸 희생하고, 그 시간을 성장에 더 쏟고, 나의 신체와 정신을 이에 맞게 단련하고, 성과를 내서 많던 적던 인정과 신뢰를 받고, 자신감을 넘어 자존감을 구축하고, 설령 성장한대로 보상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앞으로 살아갈 내 삶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 이게 안되면 과정이 미저러블 합니다. 주변과 SNS에 불평하고 다른 걸로 해소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내가 판단해서 선택"해야 합니다. 좋은 멘토들은 가끔 내 선택들에서 내가 미처 생각 못해본 건 없는지 크로스체크하기 좋은 사람들이구요.


끝으로, 위와 같이 노력할 의지가 나에겐 없다고 낙심하거나, 사실 꼭 성장할 필요도 없습니다. 살던 대로 살아도 살아집니다. 대신 성장하지 않은 것의 결과를 받아들이면 됩니다. "성장하고 싶은데 고생하긴 싫어요" 또는 "성장에 꼭 필요한 고생만 하고 싶어요"는 아쉽지만 성립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그래서 성장은 회사가, 또는 누군가 알아서 시켜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선택과 판단력과 실행의지에 달렸고, 그 사람의 ‘그릇 크기’만큼 할 수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Co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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