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마트에서 일한다 (14)
선거일에 쉬면서 문득 작년을 생각했다. 작년 마트에서 일할 때, 쉬는 날이 아닌 공휴일에도 일을 해야 했다. 어린이날도 남편과 애들에게 영화 예매를 해 주고 나는 함께 하지 못했다(안 했다). 어리석게도 내가 그 위치에서 일하게 되니, 그제야 공휴일에 일하는 분들의 서비스에 감사하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나(엄마)는 아이들의 밥과 간식을 챙겨주고, 아이들의 사계절 옷이 적절하고 깨끗하게 옷장에 걸려 있도록 하고, 집안을 정리하는 등 아이를 위한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해야 했다. 아이의 학습이 너무 뒤처지지 않은지, 학교 생활을 잘 따라 하는지 교우관계를 살피고, 학원은 언제 어떻게 가는지 아이들의 동선을 짜고, 필요할 경우 픽업도 해야 했다.
근무를 끝내고 집에 오면 보통 오후 4시 반에서 5시가 되었고, 그 시간에 가전제품을 고치러 가거나, 차량 검사를 받으러 가기도 했다. 스케줄이 없는 날은 내 저녁을 챙겨 먹고 난 6시부터 영어멘토링을 하거나, 전자책 작업을 하거나 아이의 영재원 준비를 도와주었다. 그나마 친정엄마가 아이들 저녁을 챙겨주실 때가 많아서 내 시간을 조금씩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저녁 9시면 너무 피곤해서 잘 준비를 하니 아이들의 수학이나 영어 문제집 풀기를 도와주는 데는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했다. 토요일에 아이들 성당을 데려다주거나, 수영장 라이드를 해 주고는 카페에서 카페인을 퍼붓거나 집에 와서 낮잠을 보충하곤 했다. 주차장 차 안에서 몸을 구부리고 잠을 잘 때도 많았다.
체력 에너지가 아슬아슬했지만, 그래도 그 일들을 내가 다 하고 있다니 신기했다. 빡빡한 일정 중에도 매달 하루씩 연차가 나와서 친정엄마 모시고 아이들과 효도 가족여행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렇게 해보지 않았으면 내가 그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지 몰랐을 상황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허리에 피곤이 쌓여서 한 달 동안 요통을 앓았고, 기본 구내염과 함께 잇몸에 염증이 생겨서 밥을 못 씹어 먹기도 했다. 나와 아이들이 코로나와 독감이 걸렸을 때는 내 체력이 필요한 곳을 저글링 하듯 돌려 막기 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회사와 집안일 사이 발란스를 아슬아슬하게 맞추고 있는 상황에서도 나는 회사에서는 규정되지 않는 새로운 일들을 하며 성과를 내야 했다. 근무시간이나 업무가 다른 '너는 (회사) 조직과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작년에 이맘때 나는 뭐 했지? 돌아보면서 우와, 세월이 빠르네~라는 구태의연한 탄식과 함께 '우와, 나 정말 애썼는걸.' 웃으며 응원을 보내게 된다. 마트에서 일하기 잘했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 최소한 '나도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불안함은 조금 없어졌으니.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음과 사람에 대한 다양함을 알게 되었으니. 내 마음과 몸 모두 조금씩 씩씩함과 단단함이 생긴 것 같으니. 이제 엄마는 바깥에서 더 잘 일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