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S NOTE] 플레이크는 최근 연희동에서 연남동으로 사무실을 옮기고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사무실을 옮기고 가장 처음으로 진행한 업무는 자우림 김윤아 님의 프로젝트입니다. 윤아님은 감사하게도 사무실에 직접 방문하셔서 팀 동료들에게 밝고 좋은 기운을 나눠주셨습니다. 작년 연말, 개인적인 솔직한 마음을 담아 아래와 같은 글을 썼었습니다. 사실 이 글을 발행할 계획은 없었지만, 언제나 큰 영감을 주시는 윤아 님의 라이브 공연과 앨범 발매를 기념하여 공유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밴드 자우림이 연말 공연을 합니다. 다소 음산한 분위기에 세 명의 왕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공연 제목은 MERRY SPOOKY X-MAS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매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마력이 있습니다. 저는 꽤 많은 경험과 경력을 가진 디자이너입니다. 우연한 계기로 자우림과 작업을 시작했고 오랜 시간 멤버들과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며 꾸준히 앨범, 로고, 공식 굿즈, 포스터와 같은 디자인 결과물을 만들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늘 한 명의 동료로 존중받는 느낌이 있었고 자유롭게 생각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통해 결과물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좋았습니다.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언제까지 내가 이 작업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애정이 많았기 때문에 ‘갑자기 다른 사람에게 작업을 맡긴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많이 허전하고 아쉬울까?’ 하지만 언제까지 이 작업을 잡고 있는 것 역시 욕심이라는 생각이 스스로 들기도 했습니다.
디자인 스튜디오를 창업하고 혼자 일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직원이 늘었고 회사의 규모가 커졌습니다. 인건비와 운영비를 고려하면 원래 받던 수준의 작업비를 받으며 프로젝트를 진행하긴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조금은 불편한 마음과 작업에 관한 애정이 공존했습니다. 그 시기부터 자연스럽게 다른 디자이너가 작업을 맡았습니다. 추측하기로는 자우림 역시 익숙함 보다는 새로움과 환기가 필요했을 것 같고, 그들의 성향상 왠지 편하게 프로젝트를 요청하기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롭게 디자인을 맡은 디자이너 역시 워낙 잘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맞다고 생각이 되었지만 ‘아직 더 할 수 있는데…’하는 마음에 서운함과 아쉬운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우림과 작업은 멀어져 갔습니다.
몇 달 전, 오랜만에 열린 자우림의 단독 콘서트에 초대를 해주셔서 찾아갔습니다. 특별히 도움을 드린 것은 없었기에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공연은 노래와 연주도 완벽했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스토리텔링, 멘트, 퍼포먼스 하나하나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경험과 연륜으로 꽉 찬 압도적인 무대였습니다.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날, 우리 팀이 브랜딩과 디자인을 맡고 있는 밴드 카디 보컬 김예지의 단독 콘서트가 있었습니다. 카디는 25년 내공의 자우림과 달리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의 신생 밴드입니다. 예지의 탄탄한 보컬과 연주는 좋았지만 상대적으로 바로 전날 봤던 자우림 무대에 비하면 자연스러운 무대 매너나 멘트, 관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는 없었습니다. 작은 무대, 많이 긴장하고 떨리는 모습의 밴드, 어설픈 멘트였지만 열정과 에너지, 가능성으로 가득 찬 가슴 설레는 공연이었습니다.
우리 팀 플레이크는 신생팀이지만 반면에 저는 경험이 많은 디자이너입니다. 그에 따르는 이질감과 혼란이 있었습니다. 나는 언제까지 좋아하는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이제 막 시작하는 스튜디오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베테랑 디자이너와 신입 디자이너, 오랜 전통과 경험을 가진 디자인 회사와 신생 디자인 업체는 어떻게 일을 해야 할까?
주니어와 시니어 사이엔 어떤 위계나 무게의 경중은 없습니다. 각자 자신의 맡은 자리와 역할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자우림의 콘서트를 보고 제가 느낀 감정은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었습니다. 잘 마무리하고 졸업을 하는 느낌. 그리고 언제까지 좋아하는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선배와 후배, 초심자와 숙련자… 선배는 경험과 노하우를 나눠주고 후배는 패기와 열정, 영감을 주는 존중과 존경이 담긴 상생의 관계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