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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해 Jul 15. 2021

안에서 밖으로, 다채로운 우리의 한때

정우 오디세이 (1) - [여섯 번째 토요일]과 <나에게서 당신에게>

정우는 인디음악 레이블인 '씨티알싸운드' 소속 싱어송라이터다. 2019년 9월에 첫 정규 앨범 [여섯 번째 토요일]을 냈고, 지금까지 각종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했으며, 이외에도 각종 공연으로 음악을 계속하고 있다. 이 글은 정규 1집 이후 어느덧 3년차에 접어든 정우의 음악적 행보를 짚어보려는 시도이다.




돌아가, 사랑을 주고받았던 그날의 밤


[여섯 번째 토요일]은 정우가 씨티알싸운드에 들어간 이후 발표한 첫 정식 앨범이다. 이 앨범은 그가 처음 곡을 만들고 부르기 시작할 때부터 그 시점까지의 한 부분이 담겨 있다. 그때까지의 곡들을 그러모아 낸 만큼, 얼핏 보기에는 앨범 자체의 커다란 유기성이나 흐름이 없는듯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섯 번째 토요일]에 오롯이 담긴 하나의 커다란 시기는 곧 그만큼의 계기를 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중요한 전환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거칠게 말해, 앨범의 전반적인 기조는 '과거의 연장'을 그린다. 수록곡의 가사는 다채롭고 저마다 그 결이 다르지만, 대부분 과거 어느 순간에 시선이 머물러 있거나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박제된 채로 지속되는 형태를 보인다. 여기서의 연장과 지속은 단순히 시선의 방향이나 이를 둘러싼 배경만을 뜻하지 않고, 나아가 어떤 상태를 유지하려는 정적인 태도와도 연결된다.


[여섯 번째 토요일]의 가사는 앨범 커버처럼 어떤 순간에 머무른 사생, 풍경화에 가깝다.


이를테면 선배의 시에 곡을 붙인 <꽃이 진다면>의 '나'는 이별 상황에 못박힌 채 '꽃이 질 즈음', '만개한 다음 날', '지나칠 즈음', '사라진 그 후에야' 상대를 잊고 떠나리라는 다짐을 반복한다. <이름>은 이상적인 풍경 아래 사랑하는 상대의 이름을 부르는 상황 또는 상상에 관한 상세한 서술이다. <숙취>는 그 소재에서도 알 수 있듯 채 떠나지 않은 취기(과거)에 관한 이야기다. 또, 영화 <아가씨>의 '숙희'에게서 영감을 받은 <숙희에게> 역시, 각자의 엉킨 서사를 간직한 채 '네가 모르는 일들도 많다면서'로 삼키는 인물들을 다룬다.


그런가 하면 <공중댄스>는 사랑했던 이와의 한때에 닻을 내린 채 '다 사라져가', '전부 없어져가', '다 부서져가', '모든 게 흩어져가'를 반복하며 가라앉는 기억을 그러모은다. 마지막으로 <외로움>에서 스스로의 보잘것지만 소중한 자신만의 외로움을 발견하는 일이나, <자장가>에서 지나간 '그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울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일까지. 전체적으로 [여섯 번째 토요일]의 가사는 앨범 커버처럼 어떤 순간에 머무른 사생, 풍경화에 가깝다. 




[온스테이지2.0] 정우, <나에게서 당신에게>


아, 나의 그리울 날들


대표곡 중 하나인 <나에게서 당신에게> 역시 일부분 이러한 기조에 속해 있다. 이 곡은 전체적으로 밝고 편안한 분위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글로켄슈필과 밴조 등 다양한 악기가 덧붙여진 멜로디와 컨트리 리듬 역시 이에 부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에 대해서는 '편안하고 밝다'는 감상과 함께 '떠나는 사람의 서글픔이 느껴진다'는 상반되는 감상이 종종 보인다.


가사의 시간성을 살펴보면 위의 아이러니가 더욱 돋보인다. '한 번만 더' 달에 데려다주거나 별을 따다 달라는 '나'의 말은 일견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실은 달에 갔다오고 별을 따는 듯했던 과거의 시간을 전제한다. 전체적으로 '나'의 태도는 해맑은 듯하면서도 더없이 초연한데, 주로 지금 여기에 박혀 있지 않고 '멀리멀리 떠나'감을 암시하며, 그 향방 역시 '구름의 강' 또는 '햇살의 바다'와 같은 초월적 공간을 그린다.


'한 번만 더'와 초월적 공간을 향해 '멀리멀리 떠나'가는 시선을 종합할 때, '나'의 미래는 구체적인 현재에서 이어지기보다는 과거 이상적인 순간의 연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 여기를 생략한 '나'의 내면에서는 아픈 것과 예쁜 것이 '모두 충분'하며, 나와 너 사이의 '애틋함' 역시 그저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상태에 그친다. 그런 만큼 '나의 그리울 날들' 역시 그리울 것을 알면서 기꺼이 '두고 가' 버리는 기억이다.


'너의 영원한 체온', '이 시간들은 영원하여'에서 드러나는 '영원'은 어떤가? 곧 마주하리라 믿는 이상적인 상황, 영원히 지속될 지고의 행복처럼 보이는 이 '영원'은 시간성에서 벗어나 있다. 시간을 벗어난 장소란 '남은 말'이 햇살과 바람을 통하지 않고는 닿지 못하는 세계인데, 그곳은 피안의 세계인 동시에 죽음 이후를 암시한다. 그래서 <나에게서 당신에게>는 행복하고 포근한(피안) 한편에 서글픈 이별의 감각(죽음)을 함께 품는다. 이런 맥락에서 곡 내적으로 볼 때, '나에게서 너에게로'라는 문장 또한 '이제 모두 충분'하여 '떠나'가는 데에서 그칠 뿐이다.


'구름의 강', '햇살의 바다'는 피안의 세계인 동시에 죽음 이후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서 당신에게>를 단순한 종결, 허공에 뜬 작별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끊길 듯 끊기지 않는 곡의 구성에 있다. 곡에는 두 번의 휴지가 있는데, 첫 번째 휴지는 짧은 프롤로그와 메인 퍼레이드를 나누는 듯이 들리므로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두 번째 휴지 이후, 짧고 밝은 포크송으로 끝날 줄 알았던 노래는 느릿한 반주와 함께 다시 살아나며 다시금 이목을 잡아끈다.


여기서 나오는 가사가 '나의 그리울 날들'과 '사랑스런 나의 친구'이다. 앞의 '영원한 체온으로 안아줘'라는 부탁은 '이 시간들은 영원하여'라는 선언으로 이어지고, 끝내 '나를 한 번만 더 달에 데려다 줘'가 다시금 천천히 불리며 노래는 문을 닫는다. 두 번째 휴지로부터 뭇 세션이 함께하는 이 마지막 부분을 통해 곡은 한껏 펼친 이야기를 다시금 접으며, 강줄기가 합류하듯 잡아끌었던 청자와 만난다.


이와 함께 '그리울 날들'을 헤아리는 '나'나 '사랑스런 친구'는 청자, 혹은 청자의 소중한 어떤 것으로 전이되며, 청자로 하여금 '나', 또는 정우가 가리키는 '구름의 강' 같은 미래를 헤아리게 한다. 분명 <나에게서 당신에게>에서 내적으로 드러나는 '나'와 '당신'은 이미 완결된 연결상태에 있으며, 그래서 얼마간 닫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곡은 단절과 재개 같은 음악적 완급조절을 통해 나머지 서사를 완결하고 바깥의 청자를 초대함으로써 다른 의미에서 '나에게서 당신에게'를 이루어낸다. 




앞서 알아본 것처럼 [여섯 번째 토요일]은 '과거의 연장'을 주된 정서로 삼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질문이 남는다. '과거의 연장'이 단순히 어떤 한계나 부족함을 나타내는가? 또, 앨범 전체를 '과거의 연장'이라는 틀로만 해석할 수 있는가? 우선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앞서 <나에게서 당신에게>에 드러나는 청자로의 도약 가능성이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으며, 이후 알아보겠지만 이러한 도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또한 '과거의 연장' 역시 그 자체로 마침표에 그치지 않으며 적극적인 윤리적 태도를 가지기도 한다. 돌이켜볼 만한 것을 잘 돌이켜보는 일은, 어줍잖게 오늘이나 내일에 눈길을 던지는 일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여섯 번째 토요일]의 나머지 곡을 통해 구체적인 대답을 이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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