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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Apr 16. 2021

이탈리아 | 로마 1

낭만이 현실이 되는 곳, 이탈리아


2015년 5월


우리의 장거리 연애는 계속되었습니다. 물론 순탄하지만은 않은 연애였지요. 메시지 혹은 영상통화로 다투기도 하고, 긴 시간을 각자의 힘겨움에 대해 이해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했고, 너무 힘든 장거리 연애이지만 그래도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우리 끝까지 잘 해내자 하고 서로 격려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끝이 언제인지도 모른 채 말이지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버텨왔나 싶기도 합니다. 낮과 밤이 바뀐 타임존에서 살아가는 두 남녀가, 무엇을 믿고 서로를 그렇게 좋아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멋모르는 젊음 때문이었을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놓쳐서는 안 되는 인연이라고 믿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버티게 해 주었던 힘은 ‘다음’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 시기의 다음은 이탈리아에서 1주일의 휴가였습니다. 나무랄 데 없는 날씨, 맛난 음식들, 그리고 향긋한 와인까지... 낭만적인 휴일을 위해 우리 두 남녀는 기나긴 서로의 공백을 잘 참아냈고 드디어 2015년 5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재회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는 활기가 가득 찬 도시였습니다. 누가 현지인이고 누가 관광객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사람으로 가득 찬 거리에는 지도를 펼치고 길을 찾는 사람부터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는 장사꾼까지 다양한 사람으로 바글거렸고, 이탈리아어와 영어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다양한 언어들이 넘쳐나는 활기찬 현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활기찬 현장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을 꼭 잡은 우리 커플은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저 이 낭만적인 장면 속에서 러브스토리의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인 듯 그 순간을 즐겼습니다. 이름 모를 거리를 지나면서도 함께 걷는 이 길이 영화 속 장면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로마의 햇살은 정말 따사로웠습니다. 어디를 가든 우리 둘 만의 시간을 찾기는 어렵고 군중 속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양새였지만, 이렇게 함께 로마의 유적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습니다. 로마의 건축물들과 벽돌로 짜인 자동차 도로가 만들어내는 드르르륵 소리와 경적소리,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함성소리... 아마도 일상에서는 소음으로만 들릴 소리들이 즐거운 휴가지에서는 행복한 순간을 기억하게 해주는 추억의 소리입니다.



따로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지도를 보며 걷다 보니 베네치아 광장에 이르렀고, 광장 한편에 조국의 제단이라고 불리는 하얀 대리석 건물이 나왔습니다. 베네치아 광장은  1871년 이탈리아의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조국의 제단은 통일을 이끈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를 기리는 기념관이라고 합니다. 멀리서 봐도 웅장함이 느껴지는 건물인데, 예전 로마 여행을 왔을 때 이 건물이 주위와는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라고 여겨지기도 해서, 거대한 피아노 건반 혹은 볼품없는 웨딩 케이크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곳은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이 오가고 인증 사진을 찍는 곳이네요.



다음으로 눈길을 끈 곳은 캄피톨리오 언덕입니다. 언덕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왠지 모르게 널찍합니다. 아하, 말이나 마차를 타고서 언덕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계단 간격을 널찍하게 미켈란젤로가 설계 한 계단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오르기에는 뭔가 수월한 듯 불편한 이 계단을 올라 캄피톨리오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아래 사진과 같이 고대 로마의 흔적이 남아있는 포로로마노가 펼쳐집니다. 이곳을 지나쳐 걸어가며 우리는 한창이던 시절의 로마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고 상상도 해보고, 무너져 내려 기둥만 남은 이 모습도 이렇게 웅장한데 그 시대 온전한 건물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는 가이드가 따로 없는 우리만의 투어인지라, 역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듣고 배우는 시간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여행 책자에 나온 설명도 읽어보고, 역사시간에 배운 내용도 끄집어내 맞춰보면서 우리만의 추억도 만들어 갑니다. 이것도 우리의 역사가 될 한 부분이지요.



그렇게 포로로마노를 통과하면 그 한쪽에는 로마 하면 모든 사람들이 떠올리는 그곳, 콜로세움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여행 전에도 두 번 로마에 다녀간 적이 있었는데, 콜로세움 안까지 들어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바깥에서만 봐온 콜로세움의 내부는 멋있기도 하고 약간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아마 로마의 역사에 대해 조금 더 공부를 하고 갔다면 더 흥미로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마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로마제국에 대해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준비된 마음으로 찾아가 보고 싶네요.




사실 콜로세움에서는 관광 외에도 다른 액티비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가 준비한 조금은 늦은 생일 선물이었지요. 4월에 있었던 저의 생일 선물로 ‘5월의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던 건데요.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한 데이트 스냅이 바로 그 선물이었습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우리 커플이기에 함께하는 순간을 예쁜 사진으로 남기면 좋을 것 같아 종종 여행지에서 스냅사진을 찍곤 했는데요. 이렇게 낭만적인 로마라는 도시에서, 고대 유적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나 그이나 사진기 앞에서는 쑥스러움을 타는 편이라 많은 사진들이 어색한 미소로 가득합니다. 다행히 그중에도 장거리 커플의 애틋함이 잘 담긴 사진들이 있어, 훗날 청첩장에도 사용하게 된 사진 들이지요.



한 시간 남짓 촬영을 끝내고 이탈리아 사진작가님께 예쁜 사진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남기고, 다시 관광객 모드로 돌입합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습니다.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의 모습과 해 질 녘의 로마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합니다.



한낮의 더위가 조금 물러난지라 오히려 더 상쾌한 바람이 이마를 스쳐 지나갑니다. 길거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지만, 대낮에 바쁘게 관광하는 사람들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여유를 찾은 모습들입니다. 아마 다들 우리처럼 여기저기 관광을 끝내고 한숨 돌리는 타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여행지에서의 해 질 녘을 참 좋아합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는 일상에서는 즐길 수 없는 해 질 녘의 불그스름한 공기와 느껴질 듯 말 듯 한 서늘한 바람이 부는, 시간이 흘러 낮에서 저녁이 되는 순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지요. 어둑해지기 시작하면 이제 저녁 시간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몸은 조금 피곤해도 그 피로는 집에 돌아가서 풀면 되니 조금 뒤로 젖혀두기로 합니다.

 


로마에서 끼니는 말 그대로 ‘즉흥적으로’ 해결했던 것 같습니다. 남들이 가는 대기줄이 길게 늘어선 식당이 아닌, 골목을 오가다가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곳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리기를 싫어하기는 저나 그이나 마찬가지여서, 대기줄은 없지만 사람이 적당히 있는 식당이라면 우선 믿고 들어가서 주문을 하곤 했습니다. 다행히 한 번도 못 먹을 만큼 맛없는 곳은 없었으니,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번 저녁도 골목 어딘가에 있던 식당에서 와인과 곁들인 식사를 마치고 강을 따라 걷습니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걷다 보니 저 멀리 불이 환하게 밝혀진 성이 보입니다. 바로 로마의 야경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천사의 성입니다. 알고 찾아간 건 아닌데 마냥 손 잡고 걷다 보니 찾아낸 야경 명소네요.


늦은 시간이지만 이곳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낮 시간만큼이나 매력적인 로마의 밤을 즐기고 싶은 마음,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요.


이곳 천사의 성도 지어진 지 한참 된 고대 건물인데요, 무덤으로, 요새로, 무기고로, 성으로... 참 여러 용도로 사용되던 이곳의 역사가 한 2천 년은 된다고 합니다. 로마는 이렇게 긴 역사를 가지고도 어떻게 여전히 활기로 가득 찰 수 있는 걸까요? 아마도 그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천사의 성에서 잊지 못할 야경까지 즐기고 나니 이제야 하루 종일 걸어 다닌 발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이제 겨우 첫 번째 날인데 너무 무리한 것 같아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구멍가게에서 와인 한 병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갑니다. 이름 모를 싸구려 와인이지만, 로마에서의 첫 번째 날의 추억을 한 잔 가득 담아 호로록 마시며 또 낭만적일 내일 하루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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