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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Sep 30. 2021

독립, 해방, 자유

서른 번째 이야기








대학 시절 즈음부터 시작된 악몽으로 괴롭힘 당하던 그녀. 어린 시절 친 아버지의 극심한 학대로 인한 후유증이었다. 악몽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정체모를 누군가에게 쫓기고, 말을 하면 죽여버리겠다(협박), 정신병원 감금, 납치 등이었다. 주로 배경은 일제강점기나 북한이 배경이라고 했다. 개인의 자유가 철저하게 짓밟히는 환경이 배경이다. 실제로 그녀는 매번 꿈에서 말문이 막혀 단어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깨어났다. 땀이 흠뻑 젖어 깨기 일수였고, 누구도 듣지 않는 그 새벽에 꺼억 꺼억하며 게워내듯 자신의 공포와 슬픔을 토해내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고 한다. 그녀의 꿈속 메시지는 정확했다. 




얘기하면 죽여버릴 거야.



상담을 시작하고 그녀의 악몽은 더욱 활발해졌다. 그녀는 내게 물었다. "상담을 그만두어야 하나 봐요." 그녀의 악몽이 얼마나 무서운지 따라가는 나 조차도 잠을 설칠 정도였으니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건 당연했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그저 듣고 함께 겪어내는 것뿐이었다. 다만, 이것 하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억압이 심한 사람은 꿈을 꾸지 않는다. 고통이 깊을수록 억압한다. 



그렇다. 마음의 고통이 극심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무의식이 활성화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내 내담자인 그녀는 무의식이 꿈으로 보내는 협박 메시지를 이제는 들여다보고 마주할 만큼 힘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와 마주한 지 어느덧 9년. 9년으로 접어드는 최근 그녀는 하나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 중앙에서 누군가 "대한독립만세!"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 눈을 뿌리며 함께 외쳤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그와 그녀도 함께 웃었다. 

그런 그 둘을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 꿈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녀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기에 침묵하며 그 꿈의 이야기들을 곱씹고 있었다. 그녀 또한 그러했던 걸까. 우리 둘은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 대단하죠?"


"그럼요! 대단하죠.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냈죠."


"그러니까요, 이 땅도 온전한 독립을 못 이뤘는데! 전 그걸 해낸 거 같아요!"


"그런 마음이 들어요?"


"네. 그 어떤 두려움도 공포도 없었어요. 오히려 너무 편안하고 자유롭게 대한독립만세!!! 이렇게 마음껏 외쳤는걸요. 저도 제가 그렇게 말하면서 얼마나 놀랐다구요. 진짜 매일같이 절 협박하고 말하면 죽여버리겠다던 사람들이 이제는 안 나타나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가운데 제가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고 제 맘대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그렇게 편안하게, 아 자유롭게!! 했다는 게 너무 뿌듯해요."



"누구보다 오랜 시간 삶으로 버텨냈지요. 자유, 해방, 두려움 없이 사랑하기 등.. 아마 00씨가 저에게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붙잡고 씨름했던 주제들이죠? 하루 이틀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00씨가 버텨낸 시간들이니, 가질 수 있는 뿌듯한 마음 아닐까 싶어요."



그렇다. 그녀는 자신 스스로 옭아매는 온갖 공포와 협박으로부터 미련하리만치 꾸준하게 한 발 한 발 자유를 향해 나아왔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만의 독립을 향한 투쟁을 9년째 해오고 있었다. 과연 누가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자신의 어려움에 직면하고 맞설 수 있을까? 한 때, 그녀의 그 치열함에 경외심마저 들기도 했다. 




나의 진심이 그녀 마음에 닿은 걸까.

같은 것을 함께 공유한 걸까.

순간, 그녀는 눈물을 훔쳤고,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볼 수 있음에 어떤 감탄사로도 표현할 수 없을만큼 깊은 감정의 너울을 넘고 있었다. 

평생 자신의 고통과 씨름하던 중 나라는 사람을 만나 때로 나에게 목격자가 되어달라는 듯 자신의 고통을 쏟아놓았던 그녀. 

때로 너무도 생생하게 다가오는 그녀의 고통 덕에 나 또한 무너져 내렸던 수많은 나날들.

그녀 안에서 일어나는 그 수많은 협박과 공포의 힘 앞에 강인하게 맞서던 그녀.

때론 그런 그녀를 보며 독립군이 따로 있나? 지금 내 눈앞에 이렇게 살아있지 했던 나날들.

그 수많은 세월을 지나 그녀가 맞이하는 이 자유야 말로 온전히 누려야 할 그녀만의 것이었다. 그녀의 그 행복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이 뜻깊은 순간에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참 행복한 치료사다. 나의 마음과 달리 그녀는 자신의 행복감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걸까? 상담을 마치고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으로 인사처럼 건넨 한마디. 그 한마디의 여운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것만 같다. 





다 선생님 덕이예요. 그러니 선생님도 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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