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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Jun 29. 2022

꼭 한 번은 어린아이처럼 울기를..

서른한 번째 이야기

'해방, 추앙'이라는 단어를 던지며 자기만의 색깔을 고스란히 드러낸 박해영 작가. 또 한 번 나를 향해 훅을 던지고 있었다. 훅은 성공적이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박해영이라는 이름 석자를 확인시켜주었다. 드라마를 보던 중 나도 구씨처럼 '추앙'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게 만들었고, 곱씹게 만들었다.




16부작 내내, 평범하다 못해 지리멸렬하고 때론 한 없이 초라하고 쓸쓸한 일상에 발목을 잡힌 우리들에게 해방은 서로에 대한 추앙뿐이라는 메시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따금씩 도통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드라마인지, 다큐멘터리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리얼했고, 연기자들의 감정과 일상을 따라가듯 그렇게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특별히 박해영 작가의 전작인 나의 아저씨만큼 매 회차 폭풍눈물을 흘리고 감정을 추스르느라 한 없이 멍하니 있어야 하는 순간은 딱히 필요치 않았다. 이런 분위기로 흘러가겠구나 했던 드라마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내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아 연기자와 함께 오열하게 만들었다.




15회 차 말미, 오전 편의점 퇴근을 마친 창희는 자전거를 이끌고 집 근처 산으로 간다.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왔던 빚을 이제야 겨우 다 청산했고 자전거 두 바퀴가 거침없이 앞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마치, 창희의 인생이 과거에 청산해야 할 일은 이제 더는 없으며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음을 의미하듯 그렇게 세차게 내리막을 내려오던 중이었다. 그때였다. 창희는 선아와 헤어지던 순간을 떠올린다.




 기억은 어쩌면 창희가 스스로 불러냈다기보다,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에 가까웠다.  마디로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든 것이었다. 순간, 창희는 타고 가던 자전거를 내팽개치듯 던져버린다. 그리고 이내  자리에서 주저앉아 오열한다.  회마다 모든 감정을 말로 표현하던 창희였다. 그렇기에 15 만에 자신의 모든 감정을 게워내며 입술로 먼저 울어대던 창희의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같았다.




현아와 헤어지던 그 시점에 마주할 수 없어 억눌러 두었던, 말로 담아낼 수조차, 어떤 몸짓으로도 표현해 낼 수 없었던 그 감정은 이제 겨우 경제적인 빚을 모두 갚은 그 지점에 휘몰아쳤다. 그렇다. 감정은 그런 녀석이다. 특별한 일 없이 편안하다 여기는 그런 날을 선택해 예고편 없이 날아든다는 점에서 잔인하다. 상담을 공부하고 상담을 하고, 상담을 받기도 하면서 배운 것 중 가장 큰 유산은 이것이다.




'억눌리거나, 억눌러 버렸던 감정은 해소되지 않은 채 우리 마음속, 몸속에 숨어 지내다 반드시 언젠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세월이, 시간이 해결해 주는 감정이라면 그건 애초부터 상처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상담에서 말하는 상처는 한에 가깝다. 한은 우리말로 한풀이를 해야 끝이 난다. 그것이 상담이든 어떠한 형태로든 풀어헤쳐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놀라운 점은, 풀어헤쳐진 한은 더 이상 한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 한을 품었던 사람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며,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이전과 다른 마음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된다.




한이 풀리는 그 지점, 그 지점에서 우리 모두는 어린아이가 된다. 어린아이처럼 울고, 가슴을 치고, 세상을 향해 온갖 후회와 원망을 던져댄다. 그렇게 한바탕 울어내고 나면 큰 산의 1원짜리라고 여겼던 나 자신이 실은 그 산 자체였음을 깨닫는 창희로 변모한다. 한으로 가득했던 존재로서 볼 수 없던 더 커진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창희의 오열은 이러한 모든 의미를 다 담아내고 있다. 그가 현아와의 실연은 물론, 그곳에 묶여있던 본인의 감정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의미했다. 해방을 이룬 사람에게, 그다음 해방은 더욱 쉽다. 사실 한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는 온전한 해방은 그 주변인은 물론 사회까지 해방시킨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박해영 작가라는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의 세계관에 대해 곱씹게 되었다. 박해영 작가는 종교, 철학, 성찰 등으로 자신만의 해방의 길을 걸어본 뒤에 그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드라마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은 아닐까?




상담 10년, 나의 해방을 돌아본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아직 이루어가야 할 해방은 무엇인가? 당신의 삶 속에도 해방이 깃들길, 꼭 한 번은 어린아이처럼 무너져 엉엉 울어보길 간절함 담아 나의 신께 빈다.





https://youtu.be/kfDCA7PEDk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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