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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생물학자 천종식 Dec 16. 2018

<플라이 룸>

생물학에 대한 색다른 관점

다윈은 영국 정부의 연구비를 받아서 ‘진화론’을 연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생물학 연구에는 많은 연구비가 필요하고, 대부분의 기초 생물학 분야에 필요한 자금은 국민의 세금으로부터 나온다. 물론 정부가 일률적으로 나누어 주지 않는다. 치열한 경쟁이 따른다. 과학자는 우아한 세상에 산다고 생각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연구비를 받기 위해, 온갖 치장을 하고 심사위원 앞에서 발표하고, 운 좋게 붙으면 또 결과를 좋게 평가받기 위해 컬러풀한 보고서를 쓰고, 빅 스마일을 품은 채 프레젠테이션 한다. 국민의 피 같은 세금으로 연구를 하는 기초 과학자는 그가 속한 사회와 별개일 수 없다. 한 푼을 쓰더라도 이 돈을 국민이 왜 나에게 주었는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세금을 내는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묻는다. 내 피 같은 세금으로 도대체 뭘 하냐고? 모든 과학자가 이런 고민을 한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엔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캐나다 오타와 대학의 초파리 행동 유전학자 김우재 교수이다.


김우재 박사는 초파리를 가지고 동물의 행동을 연구한다. 쌀 한톨 만한 초파리가 생각보다 생각이 아주 깊은 동물이다. 말없는 곤충의 생각(신경)을 연구하는 김 박사는 나 같은 단세포 세균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최첨단과학을 하는 사람이다. 초파리가 유전적으로 아주 사람과 먼 것 같아도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 중 60%가 초파리에서 발견된다. 과학사적으로 초파리는 유전학과 발생학 분야의 기틀을 잡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모델 생물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유행한 메르스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사람은 메르스를 물리칠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하지만, 초파리를 연구하는 사람은 초파리를 통해 사람이 왜 사람인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또한 어떻게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지를 연구한다. 놀랍게도 초파리는 치매나 파킨슨병과 같은 뇌 질환도 가질 수 있어, 가장 어려운 뇌 연구에도 적용할 수 있다.


파킨슨병에 걸린 초파리 (왼쪽)은 정상 곤충에 비해 움직임이 제한적이다.


저자는 친절하게 초파리가 왜 현대 생명과학의 총아인지 설명을 해준다. 거기에 많은 초파리 연구자들의 이야기로 제대로 양념을 쳐서, 글을 따라가다 보면 현대 유전학과 행동 생태학이 흘러온 역사까지 덤으로 잘 알 수 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이지만 훌륭한 생물학자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생물학에 입문할 때 제대로 된 ‘생물학자 오리엔테이션’을 받지 못하고 진로를 결정했다. 김우재 교수의 <플라이 룸>은 단순히 초파리 연구에 대한 지식의 전달에 그치지 않는다. 과학과 사회의 관계, 과학계가 돌아가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전달하는 미래 과학자에 대한 ‘서바이벌 가이드’이다. 생명과학자가 되고 싶은 학생들에게 특히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물론 생명과학이 어떻게 능력이 제각기인 학자들이 서로 협력하며 어떻게 지금의 놀라운 생명과학이라는 바벨탑을 쌓아 올렸는지도. 물론 지금까지 공사의 진척도는 50% 밖에 안된다. 과학계라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공간에서 생물학자들이 실질적으로 어떤 고민을 하는지를 알고 싶은 분들에게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책이다.


 생명과학자가 되고 싶은 학생들에게 특히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사람을 직접 연구하기 어려워서 사용하는 모델 생물로는 초파리 외에도 생쥐를 최근 들어 많이 사용한다. 생쥐가 유전적으로 사람과 더 가까운 것은 맞지만, 같은 연구를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초파리와 비교하면 훨씬 크다. 하지만 많은 연구자가 초파리를 버리고, 생쥐를 이용한 연구로 이동한 것도 사실이다. 그곳에 좀 더 기름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초파리로 할 수 있는 연구는 무궁무진하다. 이제 남은 연구자가 별로 없을 뿐. 김우재 박사의 다음 도전이 바로 시민 누구나 초파리로 연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들었다. 실험과학을 배우고 싶은 시민은 누구나, 또한 우리나라의 초중고 학생들 누구나 초파리를 이용해서 누군가에게 노벨상을 받게 해 준 역사적인 유전학 실험을 재연해보고, 자기만의 가설을 세워 직접 동물 행동 유전학 실험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김우재 교수의 도전으로 꼭 그런 세상이 곧 오길 바란다.


앞으로 더 사회 깊숙이 뛰어들 김우재 박사의 첫 번째 책이지만, 그다음에 나올 책이 벌써 기대가 되는 휴일 저녁이다.




#타운랩 #초파리 #플라이룸 #김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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