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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미 Oct 28. 2019

목에 걸린 이건 뭘까요?

울고 싶은걸 참으면 생기는 일

아이는 잘 준비를 하기 위해 양치를 하고 있었고, 나는 여느 때처럼 아이의 칫솔질을 도와주고 있었다.


"엄마... 목에 뭐가 걸린 느낌이 나요. 목에 걸린 이건 뭘까요?"


칫솔질과 가글을 돕느라 온통 아이 입에 집중 탓에 미처 살피지 못했던 아이의 애매한 표정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목 뭐가 걸린 거 같다고?"


뭘까...? 비염 증상이 있긴 하지만 목감기 증상은 없었는데... 양치도 별 문제없었고... 목에 뭐가 걸린 거 같은 느낌은... 대체 뭐지...?  두뇌 풀가동하던 그때 탁 하고 무언가 떠올랐다.


"혹시 울고 싶은데 참은 거 아니야? 엄마는 울고 싶은 걸 참으면 목에 뭐가 걸린 느낌이 나더라고"

"흠.. 사실 조금 참고 있긴 했어요"

"울고 싶으면 울어도 괜찮아"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는 갑자기 '끅끅' 거리는 소리를 내며 울음 시동을 걸었고, 울음 시동이 끝나자마자 중간 단계 없이 바로 '으아앙' 소리를 내며 크게 울어버렸다. 나는 아이에게 울어도 괜찮다는 말을 하면서 세면대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기에, 아이가 울음 시동을 걸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아 버린 걸 미처 보지 못했다. 미리 봤었다면 그때 바로 안아줬을 텐데... 내가 아이를 안고 토닥였을 때는 이미 큰 울음이 터져 나온 후였다.


"괜찮아. 괜찮아. 울고 싶을 땐 마음껏 울어도 괜찮아. 엄마 앞에서는 울음을 참지 않아도 돼"


7살. 제법 길쭉해진 아이를 아기처럼 안아 들고 등을 어내리며 토닥여줬다. 실, 그때 나는 아이 울음의 이유를 단번에 알다. 당시의 아이 토 무서워서 온 몸의 신경을 속에 집중하던 때였다. 배가 고파도 걱정, 밥을 먹으면서도 걱정, 가 불러도 걱정. 속에 조금이라도 무언가 느껴질라치면 지금 이 느낌은 무엇이냐 혹시 또 토하는 건 아니냐를 묻곤 했었다. 여름휴가 때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을 먹으며 키에도 맞지 않는 앞 좌석 스크린을 이용해 게임을 하느라 멀미를 독하게 했었다. 비행 내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힘들어하다 결국 토했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무서웠는지 여름휴가를 다녀온 후에도 시도 때도 없이 할까봐 걱정하는 걱정병에 걸려 있었다. 


"엄마, 토하면 밥도 못 먹어요?"


저녁을 먹으면서 자기가 지금 밥을 잘 먹고 있으니 이건 토하지 않을 거라는 걸 의미하는지고,


"엄마. 토하면 이렇게 앉아서 공부도 못해요?"


한글 공부를 할 때는 자신이 지금 멀쩡히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으니 이것은 토하지 않을 거라는 하는지를 물었었다.


이런 종류의 질문에 나는 아이를 안심시키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을 하곤 했는데, 그날은 자꾸 토할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면 토할 수 있으니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해 보라고 말해줬었다.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토할 수 있다는 말에 조금 충격을 받은 것 같던 아이는 저녁 내내 '토하는 생각 그만해야지'라고 중얼거리며 스스로 생각을 떨쳐내려고 애썼고, 나는 그런 노력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는 쓰는데 잘 안되었는지, 아이의 마음에 '이러다 토하는 거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쌓여갔던 거 같다. 두려움을 애써 참고 참다 그만... 울고 싶었던 거다.


"울고 났더니 마음속에 어두운 생각들이 다 빠져나간 거 같아요. 편안한 마음이 됐어요 엄마"


안겨서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고, 울음소리가 사그라든 다음에도 흐느끼는 작은 떨림이 멈출 때까지 한참을 몸을 웅크리고 내 품에 안겨 있던 아이는 집안에 다시 찾아온 고요함 속에서 충분히 쉬고 나서야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아이의 목에 걸려 있던 울음이 왈칵 쏟아져 나올 때 두려움도 함께 쓸려 나온 듯했다. 그날 저녁 내내 아이와 나는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많은 애를 썼으나, 그 어떠한 것도 효과가 없었다. 난제의 두려움 울어 버리는 것으로 보기 좋게 해결되었다.


아이는 '울고 싶다'라고 하지 않았고,
'목에 뭐가 걸린 거 같다'라고 했다.


울고 싶은 마음이 가슴 깊이 차올라 눈코 입을 박차고 나오기 직전 재빠른 머리란 녀석이 울면 안 된다고 참으라고 울음을 꾹꾹 누르다 그만 목에 꽉 막혀 버리는 그런 순간. 폭발하려는 울음의 힘과 막으려는 머리의 힘이 동일 해지는 그런 순간. 나는 그걸 잘 알고 있다.


울음이 나올 만큼 속상하다는 건 '마음'의 일이고, 그걸 참겠다는 다짐 또한 '마음'의 일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 줄로만 알고 있던 마음이 주먹만 한 물체로 변해 목구멍을 꽉 막아 버리는 것으로 갑자기 그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 실체적 느낌이 너무 강해서 목은 더욱  꽉 막히고, 말소리는  좁은 구멍을 간신히 비집고 나오는 쉰 소리로 변해서 민망해지기도 한다. 그 순간 그렇게 목에 걸린 울음은 주문에 걸려 봉인된 동굴 입구와 같아서 그 안에 갇힌 것들이 쏟아져 나오기 위해서는 암호가 필요하다.


"괜찮아?"


"많이 힘들었구나"


"잘하고 있어!"


꼭 타인이 그 암호를 풀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 ... 괜찮지 않아"


"요즘...  힘든 일이 있었어"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목에 걸린 울음은 나를 이해하고 있는 이의 공감에 의해
또는 나의 솔직한 고백에 의해 무장해재 되어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고작 한마디의 말에 목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던 울음이 터지고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쏟아지는  눈물에는 마음이 담겨 있고, 마음을 장악하고 있던 감정은 그 마음과 함께 마구 흘러나간다.


"우와~ 어두운 마음이 빠져나간 거 느낄 수 있었어?"

"네"

"눈물에는 마음이 담겨서 그래."


나는 어두운 마음이 해결되었다는 아이의 다시 초롱해진 눈을 보니 안심이 되었고, 아이는  샤워했을 때의 개운함과 비슷한 개운한 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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